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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해협의 '계산된 게임'

대만해협에 또다시 격랑이 일고 있다. 7월11일 리덩후이(李登輝) 대만총통의 ‘양국론(兩國論)’발언에 발끈한 중국이 “전쟁 불사”를 외치며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 양국론은 ‘대만과 중국은 별개의 국가’라는 주장. 반면에 중국은 ‘대륙이 전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1개 중국’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이 반발하는 것은 리총통의 양국론이 대만의 분리독립 노선을 부추겨 1개 중국 정책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풍 4년 주기설’이 현실화하는 것인가. 95~96년 중국이 대만을 겨냥해 벌였던 육·해상 무력시위와 미사일 발사로 야기됐던 양안관계 긴장이 이번에도 재연되고 있다. 북풍 4년 주기설의 ‘북풍’은 중국의 무력위협을 뜻하고, ‘4년’은 대만의 총통선거 주기를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반복됐던 북한의 무력시위와 닮은꼴이다.

4년전의 북풍은 현재의 리총통이 대만 사상 최초의 직선제 총통선거를 앞두고 대만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외치면서 촉발됐다. 이번에도 내년 3월 실시될 총통선거 운동이 대만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선거 정국에만 들어서면 긴장이 고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만의 진로와 중국과 관계가 어김없이 총통선거의 화두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중국과 대만간의 특수관계와 대만의 국가 정체성 혼돈이라는 두가지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형식상 중국과 대만은 국제무대에서 대표성을 다투는 두개의 엄연한 정치적 실체다. 서로가 전중국을 대표하는 합법적 중앙정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장졔스(蔣介石) 전 총통이 이끄는 국민당이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에 패배해 1949년 대만으로 쫓겨 온 이후 계속돼 왔다.

그러나 현실적 역학관계를 보면 대만의 주장은 메아리없는 외침에 불과하다. 미국이 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의 국제적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대만이 유엔에서 탈퇴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수교국(대만을 국가로 인정해 주는 나라)이 27개국으로 줄어들 만큼 외교무대의 폭이 좁아졌다. 중국의 집요한 대만 고립정책 때문이다. 대만 집권 국민당내에서도 ‘대만이 전중국을 대표하는 중앙정부’라는 헌법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라는 의견까지 있다.

반면 중국에게 대만은 마지막 남은 ‘미해방 지역’이다. 19세기 식민지 침탈과정에서 열강으로 넘어간 지역은 대만(일본)과 홍콩(영국), 마카오(포르투갈) 등 세 곳. 이중 홍콩은 97년 7월1일 주권을 회복했고 마카오는 올해 12월1일 되찾게 된다. 따라서 중국에게 대만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식민지 해방전쟁의 마지막 대상이자, 중화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최종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

대만의 국가 정체성 혼돈은 이같은 상황의 필연적 산물이다. ‘대만은 과연 국가인가, 만약 국가라면 진로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하는 문제다. 최근 대만에는 ‘대만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자’고 주장하는 책이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저자는 대만사람이다. 이 책은 21세기 대만이 중국의 위협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통일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대만 총통선거에서 국가의 정체성 문제, 즉 중국과의 관계가 이슈로 부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여기에는 아래로부터 분출되고 있는 대만독립 열기가 한 몫을 했다. 대륙출신으로 ‘북진통일’지상주의자였던 장졔스 전 총통과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 부자가 사망하고 대만출신인 리 총통이 집권한 이후 독립 열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제 1야당 민진당이 급부상한 것도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대만 본성인(本省人·장졔스와 국민당 세력이 국공내전에서 쫓겨 이주해 오기 이전부터 살아온 대만 토박이)들의 독립열기를 자양분으로 하고 있다.

리총통의 양국론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집권 여당에서 기선을 잡아 대만이 독립국임을 재천명, 국민여망을 수렴하고 한편으로는 야당의 주장을 희석시키려 한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선거용 ‘북풍 유도론’이다. 북풍 유도론의 효과는 96년 총통선거에서도 한차례 실증된 바 있다. 중국의 무력위협이 안정을 원하는 다수의 부동층을 자극해 오히려 야당 후보 보다는 집권 국민당의 리 총리에게 표를 몰아 주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리 총통의 양국론 발언 이후 대만에 인접한 푸젠(福建)성과 광저우(廣州), 난징(南京) 주둔군의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대만해협에서도 해상 기동훈련을 벌일 태세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불포기”를 재확인하면서 대만의 독립을 부추기고 비호하는 외세에 엄중한 경고를 발했다. 95~96에 진행됐던 시나리오가 그대로 재현되는 셈이다.

중국이 양국론을 좌시할 수 없는 것은 정책상 당연하다. ‘중국의 완전 통일’은 마오쩌둥이 해방전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정당성의 기초였다. 이후 어떠한 지도자도 이 부분은 건드릴 수 없었고 건드리지도 않았다. 개혁개방으로 사회주의적 이념이 희석됨에 따라 대체 이념으로 부상한 민족주의도 중국 지도부의 융통성을 제약하는 요소다. 더구나 나토가 유고주재 중국 대사관을 오폭함에 따라 민족주의적 감정이 한껏 달아오른 상태라 중국 지도부는 대만의 양국론에 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우선 대만측이 소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만큼 ‘말꼬리 돌리기’를 통해 유화 국면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 총통은 7월20일 자신의 양국론 발언이“독립을 선언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성 발언을 했다. 중국의 반발을 무마해 예봉을 꺾자는 의도다.

둘째는 중국의 최대 목표인 경제발전에 대만이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중국 지도부의 현실적 판단이다. 지난 20년간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유입됐던 해외투자는 70% 이상이 홍콩과 대만, 동남아시아의 화교가 그 물주였다. 대만의 중국투자가 위축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중국이 섣불리 양안긴장을 극한까지 끌고 가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현재 대만의 대중국 실물투자는 공식적으로 2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지난 한해 교역량은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셋째,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이 비록 수적으로 거의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긴 하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중국은 최근 러시아에서 들여온 일부 최신예 전투기와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60년대의 노후 장비들이 대부분이다. 대만의 국방전략은 ‘중국이 전쟁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클 경우 전쟁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란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대만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중국의 미사일 공격. 대만이 미국의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 참여에 적극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양국론 발언 이후 중국이 보여온 군사·외교적 움직임은 ‘관리되고 계산된 긴장’이라는 냄새가 다분히 풍긴다. 통제 가능한 수위 이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도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1개 중국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국무부도 “대만독립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한편으로 중국을 안심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대만을 겨냥한 우회적인 메시지로 해석된다. 미국의 지원없는 대만독립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자숙하기를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실질적 최대 주주인 미국은 지역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양측에 특사를 파견한 것이 잘말해준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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