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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현의 아메리칸 드림

“텍사스에서 뉴저지까지 18시간 밴을 몰고가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과연 미현이가 미국땅에서도 통할수 있을까’하는 자신감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슈퍼땅콩’김미현과 한별텔레콤의 스폰서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하는 순간, 김미현의 아버지 김정길(53)씨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비로소 미소가 그려졌다. 낮선 미국땅에서 8개월간 처절할 만큼 힘들었던 중고 밴 생활을 잘 이겨낸 딸과 아내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이제 가족들의 맘 고생이 끝나는구나’하는 가장으로서의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기 때문이었다.

프로골퍼 김미현(22). 그는 운이 없었다.

김미현에게 골프는 가족의 생활수단

초등학교때 남자 아이들을 울려 ‘왈가닥’이라 불렸던 김미현은 초등학교 6학년인 12세때 처음 클럽을 잡았다. 당시 부산에서 종업원 70여명을 둔 중견 신발 제조·판매업을 하던 아버지 덕택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골프라는 고급스포츠에 일찍 눈이 떴다. 그러나 따스했던 봄날은 한 철로 끝났다. 부산진여고 2년때 사업이 잘못돼 식구들이 모두 거리로 나앉아야 할 형편에 처했다. 그때 김미현의 골프 철학이 바뀌었다. ‘더이상 골프는 취미요, 운동이 아니다. 골프는 우리 가족을 일으키기 위한 삶이자 생활 수단이다’라고.

그후 김미현은 1년 후배인 박세리(22)와 함께 국내 아마 골프 무대를 양분했다. 프로에는 박세리가 먼저 뛰어들었다. 김미현은 ‘그래도 대학은 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용인대에 진학했다가 2학년을 마친 후에 뒤늦게 합류했다. 별 차이가 없어 보였던 두사람의 운명은 스폰서 계약과 함께 크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박세리는 삼성(아스트라)이라는 든든한 후원사를 얻은 반면 한발 늦은 김미현은 국제상사(프로스펙스)와 계약을 했다. 그리고 박세리가 미국에서 아파트와 코치 비용, 체제비 등 풍족한 지원을 받으며 세계 무대를 두드릴 즈음, 김미현의 스폰서사인 국제상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김미현은 1년뒤인 98년 11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미국으로 갔다. ‘슈퍼땅콩’ 김미현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미현. 정작 본인은 그리 개의치 않았지만 작은 키(153㎝)는 분명 핸디캡이었다. ‘장기간의 미국투어에서 체력적으로 버티기가 힘들다’고 지레짐작, 스폰서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IMF 한파로 기업들도 선뜻 스폰서로 나서지 못하고 움츠러 들었다. 한때 현대와 거의 최종 합의에 도달했으나 갑자기 후원하려던 회장이 다른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무산되는 등 불운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김미현은 괴나리봇짐 하나만 등에 맨 채 미국 투어생활을 시작했다.

홀로서기 8개월만에 스폰서계약

미국 투어 생활은 쉴 틈없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녀야 하는 김미현 가족의 주 생활 공간은 2만3,000달러를 주고 산 중고 밴이 전부. 이동과 숙식이 주로 여기서 이뤄졌다. 대회중에는 모텔을 잡기도 했지만 경비를 아끼려고 방 1개짜리 객실을 빌려 세식구가 함께 지냈다. 초기에는 말이 통하질 않아 임시 매니저역을 자청한 강국영씨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강씨가 캘리포니아에서 운영중인 모텔 사업 때문에 떠난 4월 이후에는 아버지 김씨가 모든 것을 떠맡았다. 운전, 매니저에서 언론 홍보까지.

교민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곳곳에서 후원회를 결성하겠다고 연락이 왔고 가는 곳마다 김치와 쌀을 주며 물심양면의 지원을 했다.

김미현도 지난 6개월동안 ‘톱10’에 4차례나 진입하는 등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현재 ‘올해의 신인상’ 부문에서 539점을 획득, 일본의 후쿠시마 아키코(534점)를 제치고 다시 선두로 나섰다. 총상금 랭킹서는 19만9,727달러로 23위를 달리고 있다.

더구나 5일 한별텔레콤과 2년간 50만달러(약 6억원)에 스폰서십 계약을 해 이젠 정신적으로도 한결 안정된 상태에서 투어에 임할 수 있게 됐다. 김미현의 올시즌 목표는 그리 높지 않다. 상금랭킹 35위 이내에 들어 내년도 US여자오픈 자동출전권을 획득하는 것. 일각에서는 ‘이제 우승도 노려볼 수 있지 않느냐’고 부추기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하나 이뤄가자는 생각이다.

“김치 냄새가 난다고 모처럼 들어간 모텔에서 쫓겨날때 난감했습니다. 이제 그런 고생이 결실을 맺는가 봅니다”며 두눈을 붉히는 아버지 김씨. 미국땅에서 이들 모녀가 큰일을 낼 때가 머지 않았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송영웅·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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