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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노랫말에 '신파'는 없다

‘너와 함께 지내고 싶은 밤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지만…’(클레오의 <굿타임>)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여자애들이 남자친구와 같이 밤을 보내려 하다니. 그리고 남자친구와 같이 밤을 보내겠다는데 허락해줄 부모가 어디있다고.

‘내가 너와 보내려 하는 이 밤이 내겐 가장 소중한 시간인걸…나를 책임질 수 없다 해도 지금 너무 좋은 거야.’

경을 칠 소리만 늘어놓는다. 소녀그룹 클레오가 깜찍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노래 가사는 ‘쉰세대’들이 듣기에는 민망하기까지 하다.

신세대 노래에는 당연히 신세대의 감성이 담겨 있다. 노래에 나타난 그들의 사랑방식이 기성세대들이 이해하기는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적극성과 대담성이 이들의 사랑법. 이런 점은 노래가사에서도 그대로 담겨 있다.

‘너를 위해 내가 준비했던 내 모든 것들 이제 모두 바꿔야해 누가 뭐라해도 내겐 상관없어 그 주위의 잘난척 하는 그 많고 많은 걸림돌을 제쳐버리고 언젠가 내가 너를 꼭 얻고 말겠어(TOP의 <투혼>)’처럼 사랑을 얻기 위해 뭐든 하겠다는 적극성이 유별나다.

‘그녀 우리 누나보다 두살이나 많았지/ 한순간 나를 사로잡은 여인이 왜 하필 우리 큰 누나뻘인거야/ 하지만 그녀가 너무 좋아 부모님 왜 나를 늦게 낳으셨나/ 극복하고 싶어 그까짓 나이쯤’(O2R의 <찜>)처럼 적극적이고 또 상대도 다양하다. 연상의 여인은 신세대 노래에 흔히 등장하는 코드다.

‘애인의 언니였던 그댈 본 순간 숨이 멎었어… 이미 한 아이의 엄마인 그대였기에 서로 이별을 말하기로 해’(옵션 <정사>)처럼 유부녀여도 상관이 없다.

이밖에도 이 여자 저 여자,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는 사랑도 이들에겐 흔한 일인가보다.

‘찌든 일상 니 얼굴 쳐다보는 것도 지겨워/ 네게 전화했어 핑계를 댔어 몰래 여행 떠났어 늘씬한 비키니 아가씨 정말 멋져요. 근데 저 여자 낯익은 그 얼굴 집에 있을 그녀가 왠일일가요 낯선 남자와 걸어오네요…’(팬클럽 <한여름밤의 꿈>)

‘얼마나 더 그녀들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니…이건 들키면 나만 뺨 맞을거야/ 양다리가 너무나 힘들다고 나에게 물었니/ 그건 남자라면 어느 누구와도 한번 해볼만해/ 들키지마 오로지 죽음뿐야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거리에서 팔짱끼고 그녀와 걸어가다 또 다른 그녈 만나게 됐어/ 이제 나의 전성시대는 모두 끝장나고 말았어’(퀵의 <양다리 공포>)

쉽게 만났다 쉽게 헤어지는 일도 이들에겐 대수롭지 않다 ‘아까 술에 취해 앉아있는 나를 보고 오라한 여자애들 차안에서 친절하게 말을 건네 새로운 감정 느꼈다. 빠른 만남 후 몇번의 만남이 있었다. 이름은 그쯤에 알았고 아무런 감정없는 난 기분이 나빴다…그냥한번 연락해봤어. 새 남자친구와 놀러가는 중이래. 장난 삼아서 심심풀이로 널 만난거야’(레드플러스 <스피드 마인드>)

그나마 이 정도면 얌전한 편이다. ‘니네가 *같은지, 다 *같은게 *같은거지, 영화에서도 막 *새끼 *까’(조PD의 <브레이크 프리>)같은 욕설로 범벅이 된 노래도 있다. 이 곡은 지난 4월 공진협으로부터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받았다.

이런 경우도 있다. 김진표의 에 수록된 <추락>은 ‘반쯤 돈 술에 취한 내 몸을 더듬는 거친 손’ ‘변기 그 안에 까맣게 변한 아기’ 등 충격적인 가사로 돼 있다. 근친상간과 유아유기 내용 때문에 지난 5월 역시 공진협으로부터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았다.

기성세대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충격적인 내용이 버젓이 노래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솔직하고 대담한 가사에 대해 인상을 찌푸리는 어른들도 있겠지만 신세대들의 감성을 잘 표현한 것이라는 평도 많다.

신세대 가요가 지니는 긍정성은 거짓이 없다는 점이다. 상투적이지 않고 구어체로 받아들이기 쉬우며 서사적이어서 그들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읽게 한다는 것. 그동안 국내가요는 지나치게 타령조로 상투적 감상만 늘어놓아 식상케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님’이니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식의 가사가 노래에서 많이 사라진 것에 신세대들의 공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짧은 가사로 틀에 박힌 사랑놀음만 늘어놓던 가요가 그나마 지금처럼 서사적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에 랩을 앞세운 신세대 노래가 일정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젊은 시절 운동권 가요의 중심에 있었던 김민기씨는 “랩이 가요에 많이 쓰이면서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순기능은 서사적인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가요의 가사라는게 뻔한 것이어서 서사적인 내용이 담길 길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랩이 들어오면서 다양하고 구어체적인 표현들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음악이라는게 가사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리듬과 멜로디도

중요한데 랩음악으로 이 부분이 취약해진 느낌이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제 기성세대들은 신세대들의 노래 가사를 알아듣기조차 힘들게 됐다. 특히 랩은 무슨 단어의 연결인지 조차 이해할 수 없다. 랩은 기성세대들에겐 ‘가사를 알아들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랩이 나온 이후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음악의 골은 더 깊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신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들의 노래부터 배워야할 판이다.

이상목·일간스포츠 연예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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