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상읽기] 섹스. 폭력에 대한 위험한 생각

07/15(목) 14:31

97년 6월. 일본열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사건이 있었다. 고베(神戶)의 열네살난 한 중학교 3학년생이 열한살의 소년 하세 준(土師淳)군을 살해했다. 사람들을 경악해 한 것은 살인방법과 남긴 메모였다. 범인은 아이의 머리를 잘라 학교 정문앞에 버렸고, 현장에‘악마의 장미’‘자, 게임의 시작이다’‘사람을 죽이는게 유쾌하다. 살인이 좋아서 어쩔수 없어’‘경찰제군, 나를 멈춰 보구려’라는 글을 남겼다. 경찰수사결과 범인은 이전에도 열살난 소녀를 쇠파이프로 살해했고, 한명은 칼로 중상을 입힌 사실이 밝혀졌다. 뚜렷한 살해동기가 없었다. 범인은 “단지 사람을 죽이는 다양한 방법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또 하나의 끔찍한 살인사건. 미국에서의 일이다. 열여섯살의 소년 마리오 패딜라가 사촌 새무얼(14)과 함께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했다. 지난해 1월 둘은 마리오의 집에 들어가, 새무얼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지나 캐스틸로(당시 37세)를 붙들고, 마리오는 4종류의 칼과 드라이버를 45차례나 휘둘러 살해했다. 마리오는 어머니 살해에 앞서 동네의 가게에서 만난 친구에게 “오늘은 일을 저지르기에 완벽한 날이다. 어머니를 죽이러 간다”며 참여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범행동기 역시 애매하다.“어머니가 성가신 일을 시켜 짜증이 났다”“어린 동생의 돈 150달러를 가지려 했다”는 것이 전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두사건에 공통적으로 걸쳐있는 한 영화이다. 바로 96년작 ‘스크림’과 1년뒤 나온 속편‘스크림 2’. 공포영화의 달인이라는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게임처럼 즐기는 10대들 살인행각과 그에 따른 공포를 그린 작품. 이전의 온갖 공포영화의 방식을 비틀고 조롱하며 살인의 게임을 즐긴다. 죄의식이나 동기도 미약하다. 오직 살인의 유희만 있을 뿐. 앞의 두사건과 너무나 닮은 점이 있다. 실제 고베사건에서 범인이 이 영화를 보고 흉내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마리오의 경우는 더 확실하다. 법정심리에서 나타난 증언과 정황을 보면 영화가 법죄를 자극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마리오와 새무얼은 여러차례 영화를 보고는 주인공의 살인행각을 “완벽하다”고 했으며, “영화를 모방해 실제 사람을 죽이자”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영화의 주인공처럼 ‘죽음의 신’인 해골마스크와 검은 망토, 음성변조장치를 사고는 영화속의 살인을 모방한다는 뜻으로 “스크림을 저지른다”“스크림을 터뜨린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예비심리를 밑은 검사측 자료에 따르면 마리오는 어머니와 계부를 살해한 뒤 편지와 전화를 통해 자신들을 괴롭혀온 2명의 소녀를 죽일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주장과 증거가 나오자 법원은 ‘10대 청소년 범죄와 영화속의 폭력의 관계’라는 민감한 주제가 불러일으킬 파장을 줄이기 위해 모든 재판관련 자료와 증언등의 공개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렇다고 영화와 살인의 상관관게를 감출 수는 없게 됐다.

TV와 영화가 범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급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같은 내용이라도 개인의 정서나 지적수준, 가치관, 환경에 따라 같은 수용형태가 다르다. 때문에 찬반이 분분하고, 그것의 규제기준이나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화에서 섹스보다 폭력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심의 기준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보다 성도덕이 문란하고, 성에 관해 개방적이어서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성은 시대와 가치에 따라 그 모럴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폭력은 불변이다. 다리를 자르면 불구가 되고 총을 쏘면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영화속의 섹스보다는 폭력을 무서워하는 사회가 되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스크림’이 들어오자 사회적 잣대는 버린 채, 언론은 열광하지 않으면 공포영화를 모르는 사람처럼 열광했다. 등급외전용관 신설문제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폭력은 뒷전이고 성문제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성인전용관= 포르노상영관’이란 논리가 나왔다. 우리의 영화심의는 또 어떤가. 폭력에 관대하고 성에 엄격하다. ‘노랑머리’처럼 지저분한 싸구려 포르노를 의식있고, 예술의 자유를 상징하는 영화로 포장하게 만든다. 결국 성까지 타락시킨다.

이대현·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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