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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명계남과 채구석

개인에게도 정말 기막힌 아이러니가 있다. 그는 본의 아니게 ‘명배우’가 됐다. 안성기나 한석규가 아니다. 명계남(47)씨. 성이‘명(明)’씨이기 때문. 농삼아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부르고, 그는 그것을 ‘명(名)’으로 해석한다. 단역에서 시작해 약방의 감초처럼 조연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그가 안나오면 영화가 안된다”는 농담까지 만든 우리의 피에로.

그는 회사원으로 살다 40세가 넘어 연극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비슷한 길을 걷는 배우 문성근과 친하다. 함께 이스트필름을 설립해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를 제작했고, 늘 ‘삐딱한 자세’로 영화계의 올곧지 않은 일에 대들었다. 94년 박광수 감독의‘그섬에 가고 싶다’로 영화에 데뷔해, 역시 그의 영화‘이재수의 난’에서 고대하던 주연으로 발돋움한 중년의 배우.

그가 ‘새로운 천년의 여명’이 6개월 남은 6월의 마지막 날 병원침대에 누웠다. 서울 명동성당에서 벌인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8일간 단식투쟁으로 탈진한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단식은 끝내지만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문화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눈물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삭발한 머리가 더욱 푸르고, 거칠게 자란 수염의 결기가 비장미를 더하는 모습. 임권택 감독이 삭발을 하자 그 현장을 지켜보며 비감한 목소리로 영화인들의 눈시울 적시게 만든 영화인 행사에 사회자는 어느덧‘투사’가 돼 버렸다.

공교롭게도 할리우드 최첨단 테크놀로지인‘스타워즈, 에피소드1’과 100년전 제주에서 반외세에 저항하는 민란의 이야기‘이재수의 난’이 맞붙고, 두 영화가 스크린쿼터 문제와 연결되고, 그 흥행결과가 비참하게 나타난 지금. 사람들은 ‘이재수의 난’속의 명계남과 현실의 명계남을 비교한다. 영화에서 명계남은 채구석이다. 단발령으로 인한 민란이 제주까지 퍼져 면직당했다 다시 군수가 된 해가 1899. 꼭 100년전이다.

원작인 현기영의 소설‘변방에 우짖는 새’나 영화에서의 채구석은 개화한 지식인이었다. 박광수 감독은 “이재수가 단순하고 감정적인 인물이라면 채구석은 민족과 백성을 생각하는 고뇌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외세로 나라가 흔들리고, 주권이 짓밟히는 당시 포교란 이름으로 민페를 끼치는 천주교 세력을 비판한다. 그는 남의 첩을 가로챈 교인을 엄한 죄로 다스리고, 백성들 편에 서기위해 점점 유약해지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 애쓴다.

그는 목격했다. 한 변방에서 거침없이 밀려오는 외세를 몰아내거나 막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먼 바다에 떠 있는 함대가 생명을 위협하고, 조정은 이미 힘을 잃어 외세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나라. 비록 이재수를 설득해 제주성에서 봉기를 끝내게 했지만 그는 분명 민족자존주의자였고, 외세에 분노한 민당의 편이었다. 소설은 뒷날 그 사실을 입증해 준다. 그는 이재수 난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돼 처음 사형을 언도받는다. 그러나 교당과 민당 사이에 화해를 도모했다는 점이 참작돼 이듬해 8월에 풀려나 목숨은 부지했다.

7월1일 시민단체들이 극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미국영화 안보기 캠페인을 벌여도 ‘스타워즈’는 북새통이고, ‘이재수의 난’은 한산했다. 젊은이들은 영화인들의 외침에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삭발을 하고 거리에나와 악다구니를 써도 조정(정부)은 미국의 눈치만 본다. 100년전 채구석의 외침에 신부들이 콧방귀를 뀌듯, 지금 명계남의 삭발과 단식에도 꿈적하지 않는 우리정부 당국과 미국. 그래도 명계남은 “내 한몸 부서지더라도 한국영화를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명계남이 채구석을 만난 것은 운명인지 모른다. 그 운명속에서 명계남은 역사의 현재성과 가르침을 배웠다. 그릇된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로 잡을 것인가. 명계남과 채구석이 동시에 우리를 향해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대현·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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