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괴롭혀라. 곤란해서 쩔쩔매면 성공이다. 식은 땀을 흘리며 쥐구멍을 찾으면 더 좋다. 훔쳐보는 이들에게서 공범자의 음험한 웃음이 흘러나와야 한다.

요즘 TV들은 일반인이건 연예인이건 닥치는대로 이런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럼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악마적 즐거움을 주고 대신 높은 시청률을 보장받는다. 인간 내면의 은밀한 관음욕구를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쉽게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출연자들을 괴롭혀 시청자들로부터 박수세례를 받는 프로로는 MBC TV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몰래카메라’(몰카)를 원조로 KBS 2TV <일요일은 즐거워>를 비롯해 SBS TV <기쁜 우리 토요일> <머리가 좋아지는 TV> <기분좋은 밤> 등이 있다.

<기쁜 우리 토요일>의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는 원조‘몰카’와 가장 흡사한 형태. 특정 스타를 위해 모든 상황을 꾸며놓고 그 상황속에서 울고 웃고 흥분하는 스타의 모습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는다. 간혹‘혹시 사전에 짜고 하는것 아닌가’라는 의혹이 들기도 하지만 까맣게 속아 어쩔 줄 몰라하거나 간혹 울음까지 터뜨리는 스타들을 보면 ‘말짱 쇼’는 아닌 것 같다. 시청자들은 당황하는 스타들이 한편으로 안스럽기도 하지만 묘한 쾌감을 맛보게 된다.

한편‘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는 불우이웃사랑 등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이라는 비난을 비켜간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도와주기 위해 프로축구선수와 슈팅대결을 펼치며 눈물까지 흘렸던 최수종이 이 코너 출연이후 인기가 치솟자 방송가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면 <머리가 좋아지는 TV>는‘경계대상 1호 프로’로 떠올랐다.

<머리가…>는 연예인을 중심으로 유명인사를 학생으로 초대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수준의 다양한 문제를 풀어보는 퀴즈프로. 학과테스트는 물론 IQ테스트, 퍼즐게임 등 기발한 문제들이 등장한다. 까맣게 잊었던 생활의 지혜 또는 새로운 논리전개방법이나 상식들이 절묘한 퀴즈로 변해 답을 기다린다.

시청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하다 답이 나오면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라고 장단을 맞추며 똑똑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직접 수업에 참가하는 유명인 학생들의 심정은 다르다. 기껏해야 중학교 수준을 넘지않는 문제에도 속이 바짝바짝 타고 얼굴은 붉어진다. 게다가 문제를 못맞추면 다른 학생의 구박은 얼마나 심한지 시청자들 앞에서 바보가 되는 듯하다.

자연 섭외는 힘들다. 섭외담당 이시화씨는 “정말 힘들다. 문제가 어려운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에 맞춰 즐겁게 떠들다보면 쉽게 맞출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지레 겁을 먹는것 같다”고 말한다.

섭외가 힘들다고 해서 제작진 또한 쉽게 포기할수는 없다. 탤런트 김찬우를 섭외하기 위해 성영준 PD는 세번이나 목욕탕까지 따라갔으며 고승덕 변호사는 다른 프로 녹화가 끝나는 자정까지 기다려 출연을 성사시켰다.

일단 출연한 ‘학생’들은 대부분 만족해한다. 출연을 고사하던 개그맨 김한석은 예비군훈련까지 빠지며 4회 연속 출연했고 영화 <여고괴담>에서 전교 1등이었던 탤런트 박진희는 첫 회 출연에서 꼴찌를 하자 ‘우등생이 될때까지’ 계속 출연하겠다고 연속출연을 자청했다. 출연자들에게 ‘다시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첫 출연때 지진아였다가 4회 출연때 우등상을 수상한 개그맨 임하룡은 좋은 본보기다.

그러나 어찌됐든 수백만의 시청자들 앞에서 스스로의 지능지수나 학과습득도를 테스트당하는 유명인사들은 시종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기분좋은 밤>은‘악마의 유혹’ 코너로 매주 금요일 밤(오후 9시55분) 한 집안의 가장들을 밤늦게까지 잠 못들게 한다. 시험에 든 가장은 물론 이를 TV 수상기 앞에서 지켜보는 가장들은 마치 자신이 시험대상이 된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따라간다.

‘악마의 유혹’은 아내가 남편을 가벼운 시험에 들게 하는 코너. 가령 금주를 선언한 남편이 밖에서 약속을 지키는지,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다는 좌우명을 가진 남편이 실제 상황에서도 그러한지, 반응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코너다. 개그맨 신동엽은 가장의 뒤를 몰래 따라가며 적당한 우스갯소리로 지켜보는 가족들과 시청자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시험에 든 줄 알리 없는 가장들은 카메라가 따를다는 사실도 모른채 대부분 약속을 지키지만 꼭 그렇지 못해도 크게 흠될 것은 없다. 실직당한 친구의 ‘술한잔 하자’는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는 가장에게선 따뜻한 인간미를 엿보게 된다. 물론 해양수산부 사무관이면서 17평 아파트에 세들어 사는 정의파 가장이 버스속 성추행범을 따끔하게 혼내는 모습이나 갈길이 바쁜 와중에도 길거리에 쓰러진 부랑아를 보호소로 부축해 가는 장면을 지켜보는 가족과 시청자들은 감동하게 된다.

정환식PD는 “가장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몰래 지켜본다는 사실은 실제로 악마적인 유희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들의 고민과 이웃사랑의 마음을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측면이 더 강하다”고 주장한다. 한이불을 덮고 자면서도 남편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아내들의 자질구레한 시험의뢰가 방송 3주만에 50여건 넘게 접수되는게 이 프로가 가족사랑 확인의 장으로 자리잡아 가는 증거라고 강조한다.

반면 일방적으로 당사자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요일은 즐거워> ‘달려라 우리엄마’ 코너는 그 대표적인 경우. 아내가 남편에게 무턱대고 전화를 걸어 특정 내용의 멘트를 이끌어 내는 프로다. 이를 알리 없는 남편은 아내의 뜬금없는 대화에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남편의 엉뚱한 반응에 속상한 아내는 눈물을 흘리다 급기야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등 예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본의아니게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셈이다.

SBS TV 김혁 CP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일방적인 흠집내기나 단순한 훔쳐보기가 되지 않도록 이웃사랑 가족사랑등의 적절한 안전장치(명분)를 해 놓으려 한다. 그러면 오락프로로서의 소임과 함께 사회적 역할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창진·일간스포츠 연예부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