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가 새고 있다] 국민은 봉인가

08/05(목) 07:36

‘서민은 세금내는 영원한 봉인가’

대우그룹이 64조6,000억원에 달하는 금융부채를 못이겨 비틀거리면서 평소 신문이나 TV를 통해 대우그룹이 만든 전자제품이나 대우자동차 CF를 본 것말고는 대우와는 아무 관련없는 일반 서민들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대우그룹이 자체 구조조정에 실패하면서, 돈을 빌려준 채권단이 대우가 국내외에 벌여놓은 사업을 책임지고 정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또다시 국민들의 혈세가 투입되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7월27일 대우사태에 따라 국민들이 추가적인 부담을 할 수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국민부담 7조원에 달할 듯

이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은행들이 7월말부터 적용되는 ‘미래현금흐름’에 따른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적립할 경우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10%를 유지하지 못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위원장은 또 “은행의 대손충당금 부담이 무거워질 경우 우선 경상이익으로 흡수하고 증자나 해외 DR발행 등으로 감당하겠지만 이런 정도로도 안될 경우에는 공적자금을 투입, 정부가 증자에 나서거나 후순위채를 매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이위원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하나, 한미은행 등이 그동안 정상여신으로 분류했던 대우그룹에 대해 새로운 여신 분류기준을 적용,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분류했다”며 “이를 감안할 경우 새로운 여신분류기법의 적용에 따른 은행손실을 보전하겠다는 위원장의 발언은 대우사태에 따른 채권단의 손실을 공적자금으로 보전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우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얼마나 될까. 금융권에서는 대우가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 등 단기부채를 제외하고 은행, 보험, 종합금융회사 등에서 빌린 채권규모만을 감안하더라도 국민부담은 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대우그룹의 금융권 일반 여신은 5월말 현재 은행권(19조6,627억원)과 제2금융권(16조4,334억원)을 합쳐 36조961억원. 새로운 여신분류기준을 적용할 경우 ‘워크아웃 기업여신’에 대해 20%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금융기관이 대우사태로 부담해야 하는 충당금은 7조2,192억원에 달하게 된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뒷수습은 국민몫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일부 대우그룹 계열사의 매각작업이 지연되거나 자칫 부도라도 날 경우 국민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며 “금융기관이 대우사태에 따른 일부 피해를 분담한다고 하더라도 국민 부담은 7조원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컨대 김우중 회장이 호기있게 벌인 무모한 확장경영의 뒷수습을 위해 4,500만 전 국민이 1인당 15만5,500원씩을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국민이 급작스럽게 호주머니에서 15만5,500원을 털어야 하는 사태는 이번만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1월31일 한보, 기아사태로 휘청거리던 제일은행에 1조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시작한 정부의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일부로부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를 듣고는 있지만 안이하고 잘못된 상황판단으로 국민세금을 필요이상으로 투입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제일은행이다. 실제로 제일은행에 대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계속돼 국민부담을 가중시켰다.

정부가 처음 제일은행을 정상화시키겠다고 투입한 자금은 1조5,000억원. 예금보험공사가 현금으로 7,500억원을 출자했고 7,500억원 어치의 한국전력주식과 담배인삼공사주식이 현물로 출자됐다. 당시만 해도 정부와 제일은행은 “이제 제일은행은 명실상부한 ‘클린 뱅크(Clean Bank)’이며 국내 금융기관중 가장 우량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1개월을 넘지 못했다. 계속되는 거래기업의 부도와 뉴브리지와의 매각협상이 지연되면서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1년도 못돼 1조5,000억원의 자본금을 모두 까먹었다. 결국 정부는 1년을 허송세월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7월9일 제일은행을 살리기 위해 4조2,086억원의 국민세금을 추가로 출자, 제일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 규모가 당초보다 4배나 많은 6조8,315억원을 넘어서게 됐다. 정부가 제일은행에 쏟아부은 6조8,315억원은 자본이 3조5,000억원인 한빛은행을 두 개나 세울수 있으며 국민 1인당 15만1,800원씩 돌아가는 규모이다.

30~60조원 추가부담 예상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구조조정에 투입될 국민세금이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남주하 연구위원과 한국금융연구원 권재중 연구위원이 7월13일 ‘제1차 금융구조조정의 성과와 향후 정책방향’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앞으로도 27조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형편이다.

두 연구위원은 “현재의 경제여건이 유지된다면 600여 상장사와 5,000여 주요 비상장 기업의 부채중 24%가 회수되지 않을 것이며 이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27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또 “정부가 올 상반기까지 부실채권 매입과 증자지원에 64조원을 투입키로 한 것은 금융권의 부실자산 규모를 과소 추정한 것”이라면서 “올해안에 기업과의 거래에서 추가로 발생할 부실자산도 고려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부 외국기관들은 더욱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금융구조조정에 추가로 소요될 자금을 47조2,000억원으로 추정하는가 하면 세계은행은 30조~60조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흔들리는 국가경제를 위해서는 국민이 희생을 해야 한다”며 세금을 걷어가는 정부의 논리에 세계적으로도 말 잘듣기로 소문난 한국 국민들이 언제까지 동의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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