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가 새고 있다] 주인없는 돈, 인심이나 '팍팍?'

08/05(목) 07:37

“국민의 땀과 피가 새어나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 구조조정과 공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전 국민이 쏟아부은 64조원. 99년이후 주식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금리와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외견상으로는 64조원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대의명분에 따라 국민세금으로 목숨을 건진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는 은행, 보험, 종합금융회사 등 금융기관의 이면에는 여전히 ‘모랄 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가 판을 치고 있다.

인수은행 비협조로 ‘부실기업’ 전락

지난 4월 예금보험공사는 98년 6월 퇴출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떠안았던 국민, 신한, 하나, 주택, 한미은행 등 5개 은행으로부터 ‘풋백 옵션(Putback Option·퇴출은행을 인수한뒤 추가로 발생한 부실채권에 대해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보전해주는 제도)’신청을 받은뒤 크게 놀랐다.

퇴출은행의 자산을 받아간 5개 인수은행이 ‘풋백 옵션’을 행사하면 퇴출은행과 거래하던 업체가 부도가 나더라도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 고의적으로 부실화시킨 ‘혐의’가 짙은 대출이 2,000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수은행들이 ‘성실하게 관리했지만 부실화됐다’면서 정부에 추가지원을 요청한 돈(9,130억원)의 21%에 달하는 규모였다.

실제로 동화, 경기, 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이 전격적으로 퇴출된뒤 이들 은행과 거래하던 기업중 상당수는 인수은행들의 비협조로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대출금 만기연장을 제대로 해주지 않거나, 이자가 6개월 이상 밀리지 않았는데도 강제로 회수조치에 들어가거나, 적금이나 예금으로 상계가 가능한데도 무조건 부실여신으로 분류하는 등 충분히 회생가능한 기업에게 ‘부실기업’의 낙인을 찍었던 것이다.

당시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인수은행들의 무리한 중도상환 요구에 대해 “기업이나 개인은 대출만기시 대출금액의 10~20%를 중도 상환하고 나머지를 연장하는 것이 관례”라며 “인수은행들이 30~40%의 과도한 중도상환을 요구, 이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살려놨더니 자기들끼리 돈잔치

공적자금을 수혈받아 살아남은 은행들이 ‘우리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퇴직 은행원에게 대출금리를 깎아주는 등 필요이상의 특혜를 주고 있는 것도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현상중 하나이다.

실제로 부실은행을 합병하면서 5조3,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모은행은 퇴직직원에게 100억원에 가까운 은행돈을 특혜대출하는 제도를 운영중이다. 이 은행은 지난 3월 금융감독위원회와의 경영개선약정에 따라 퇴직시킨 279명의 부·과장급 간부직원이 요구할 경우 1인당 3,000만원 한도내에서 3년동안 프라임레이트(우대금리·연 9.75%)로 돈을 빌려주는 제도를 시행중이다. 프라임레이트는 초우량 고객(VIP 고객)에게만 적용되는 금리. 대부분의 일반 고객들은 신용기준이 강화되면서 은행 돈을 빌려쓰기고 어려울뿐만 아니라 돈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프라임레이트에 3~4%포인트 가량이 덧붙여진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이 은행관계자는 “퇴직직원들이 재직시절 연 1%의 초저금리로 빌린 주택자금을 상환하는데 필요한 돈을 지원하기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히고 있으나 “단지 은행원이었다는 것만으로 금리를 깎아주는 것은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은행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은행은 직원들에게 98년과 같은 수준의 급여수준을 지급키로 하면서도 임원들의 연봉은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50%나 높게 책정한 것도 또다른 ‘도덕적 해이’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제2금융권 정도 더 심해

그야말로 ‘혈세가 줄줄 새는’현상은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제2금융권과 공기업쪽으로 옮겨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진다.

7월16일 창원지검 특수부는 전국 1,600여개에 달하는 신용협동조합의 최고위층 인사인 황창규 신협중앙회장을 전격 구속했다. 황 전회장이 신협중앙회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184억원을 동생인 원규씨가 운영하는 기계부품 제조업체인 일우산업에 불법대출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고객 돈을 자기 돈인 것처럼 유용한 사례는 황전회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동안 금융감독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던 제2금융권에서는 190여개의 신협과 신용금고가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 퇴출되면서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됐다. 그러나 경영진들이 제3자명의 불법대출 등으로 빼돌린 고객돈은 거의 환수되지 않고 있다. 쉽게 말해 세금으로 ‘악덕 경영주’의 배를 채워주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chcho@hk.co.kr

소박스-외국의 공적자금 투입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장의 근거로 미국의 저축대부조합(S&L) 사례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미국정부가 S&L을 처리하면서 부실 경영주들을 얼마나 철저하고 혹독하게 처벌했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무리한 영업확장을 하던 저축대부조합(S&L)은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무더기(747개) 부도사태를 맞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82년 저축대부조합의 85%가 적자에 허덕였으며 그중 3분의 2는 사실상 지급불능 사태에 빠졌다.

진화에 나선 미국정부는 1,800억달러의 재정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막대한 국민세금을 쏟아넣는 조건으로 미국 정부는 경영진의 책임을 철저하게 묻는 작업도 병행했다. FBI를 투입, 부실 경영진 1,000여명을 각종 죄목으로 감옥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도 부실 금융기관 경영진들에 대한 책임추궁은 가혹하다. 대부분의 경영진들이 소액주주 소송에서 시달리다 못해 퇴직금을 토해내는 일이 부지기수이며 일부는 자살까지 하고 있다. 97년 도산한 야마이치 증권의 사장이 직원들과 국민들에게 눈물을 흘린 것을 이같은 풍토때문이다.

국민의 혈세를 퍼붓으면서도 부실 경영진들이 빼돌린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처벌조차 못하는 우리 실정과는 크게 대비된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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