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소리없는 군비경쟁] 일본,군국주의 망령

08/05(목) 11:15

일본의 도쿄신문은 7월26일자에서 일본 방위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의미심장한 기사 한 건을 실었다. 일본 자위대가 지난해 11월 태평양 이오지마(硫黃島·유황도)에서 상륙훈련을 실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이 상륙훈련을 실시한 것은 2차대전 이후 처음이다. 상륙작전은 육해공 3군이 통합 운용돼 적의 배후를 찌르는 고도의 공격형 작전이다. 일본은 2차대전 패배 이후 전쟁행위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에 따라 형식적으로는 군대가 아닌 자위대가 국방을 담당하고 있다. 자위대의 역할은 선제공격이 아니라 일본이 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을 때 방위만 하는 ‘전수(專守)방위’에 국한돼 있다. 일본이 그동안 상륙훈련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투기·헬기 등 동원한 연대규모훈련

그러면 일본은 무슨 목적으로 지난해 상륙(일본 표현으로는 揚陸·양륙)훈련을 실시했을까. 도쿄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훈련은 당초 가상적국이 점령한 서해상(한국쪽에서는 동남해상)의 한 섬을 탈환하는 시나리오에 기초해 계획됐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측이 반발할 것을 고려해 장소를 정반대쪽인 이오지마로 정하고 동원병력도 연대규모로 줄여 훈련했다고 한다. 훈련내용은 대잠수함 작전, 전투기와 헬기를 동원한 지상공격, 수송함을 이용한 부분적 상륙작전 등으로 구성됐다. 상륙훈련의 3박자가 고루 갖춰진 것이다.

‘동해상의 한 섬’은 어디일까. 일감에 떠오르는 것이 독도다.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자국영토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도는 섬 크기를 고려할 때 대규모 병력이 주둔·방어할 만 한 장소는 아니다. 따라서 일본이 연대급 병력을 동원해 탈환 상륙작전을 벌일 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독도 다음으로 가상할 수 있는 장소는 동중국해상(일본 규슈 서남방)에 위치한 센카쿠 열도다. 중국명 띠아오위타이(釣魚臺)인 센카쿠 열도는 현재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중국이 자국령이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최근 중국 경비정이 빈번히 센카쿠 열도 인근 영해를 침범해 일본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한 퇴역 자위대 고위간부는 “센카쿠 열도 등의 방위를 고려하면 육해공 자위대가 기능적으로 결합하는 상륙훈련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상륙훈련의 시나리오가 중국이 센카쿠 열도를 기습점령했을 경우 자위대가 이를 탈환하는 과정을 상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공격개념의 변화된 군사전략

그러나 지난해 상륙훈련은 대상지가 독도냐 센카쿠 열도냐의 문제를 떠나 일본 군사전략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같은 견해는 7월27일 발표된 일본 ‘99년 방위백서’의 주장과 오버랩시킬 때 설득력을 더한다. 방위백서의 내용은 ‘북한의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자위대 군사력 증강의 정당성을 역설’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백서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동아시아 안보의 중대한 불안정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 핵개발과 생화학 무기 보유 및 생산능력을 일본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백서는 이같은 위협요소에 대한 대비책으로 정찰위성 도입과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 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백서는 나아가 유사법제 정비와 자위대의 무력사용 확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사법제는 ‘외국으로부터 일본영토가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 자위대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출동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법적 근거다. 현재 자민당과 방위청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중인 유사법제는 일본 주변 지역의 유사시 대응을 규정한 가이드라인 관련법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유사법제는 자위대가 출동할 경우 불가피하게 수반될 사유재산 사용 등에 대한 법적인 토대를 마련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백서의 주장에 대해 일본 언론의 분위기는 일단 비판적이다. 아사히 신문은 “북한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방위력 증강을 위한)오랜 현안을 일거에 해결하려는 방위청의 의도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나아가 “자위대의 군사적 활동을 위한 새로운 일보를 내딛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심상찮은 보수화·우경화 기류

물론 방위백서가 일본의 총체적 노선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체로 군부는 위협요소를 강조함으로써 군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경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보수화, 우경화 기류는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징적인 사건이 과거 일본 침략주의를 상징했던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올해 6월 국회에서 국기, 국가로 정식 채택돼 법제화한 것이다. 강력한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법제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인의 의식구조 변화가 깔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에 따른 국제적 위상 추락과 북한 미사일 위협 등으로 인해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강한 일본’에 대한 향수가 서서히 반전의식을 대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흐름은 90년대 초 보수파의 대표적 정객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보통국가론’의 기치를 내걸면서 이미 불을 지폈다. 보통국가론은 일본이 몸집만 크고 두뇌는 작은 탓에 결국 절멸해 버린 공룡을 닮은 기형국가라고 주장한다. 경제력(몸집)에 걸맞는 정치구조(두뇌)를 갖춰 국제적 공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일본이 보통국가가 된다면 그후에도 계속 보통국가로만 만족할까. ‘국제적 공헌’이 혹시 과거 일본이 내세웠던 ‘대동아 공영권’의 개정판으로 변질되지는 않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본이 이미 보통 이상의 군사력을 보유한데 이어 슈퍼파워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군비와 군사력은 현재 미국에 이어 서방세계 제 2위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미일 안보동맹과 미국의 안보책임 분담 정책에 힘입어 어느새 조용히 군사대국으로 성장해 버린 것이다.

서태평양 지역의 가장 강력한 해군력

일본이 1,000해리 해상수송로 방위를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해군전략 전문가 피터 울리 교수(페어레이 디킨슨 대학)의 이야기.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미 1,000해리 해상방어를 넘어서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 해군의 쇠퇴에 따라 일본은 서태평양 지역의 가장 중요한 해군 국가가 됐다.”

일본 해군력은 냉전시절 미국이 러시아 극동함대를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화한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탈냉전기에도 일본이 해군력 증강을 계속해 온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세계 최첨단을 자랑하는 4척의 이지스함으로 구성된 88함대를 비롯해 97년에는 수직 이착륙기 탑재가 가능한 1만톤급 상륙지원함을 진수시켰다.

공군력 증강도 주목할 만 하다. 방위청은 내년 3월부터 실전배치될 F2 전투기에 공중급유용 급유구를 장착해 항속거리를 늘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 신문은 7월3일 “F2 전투기에 급유구를 장착할 경우, 전투기의 행동반경이 비약적으로 늘어나 주변 각국을 대상으로 한 작전이 충분히 가능해 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총 130대가 배치될 F2 전투기의 통상 행동반경은 800㎞. 공중급유를 받게 되면 이론상 행동반경은 무한히 늘어나게 된다. 항공모함없이도 원양 공중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팽창일로를 걷고 있는 일본 군사력은 한국으로서는 맞대응 자체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역 헤게모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중국이 기회있을 때마다 일본의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 참여와 군비증강을 문제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물음이 21세기 동북아 정세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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