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황제를 키운다] '생각'하는 자녀를 만들자

08/10(화) 14:47

이기숙·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

요즘 아이들은 똑똑하고 약아져서 그런지 점점 말을 안 듣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정말 아이 키우기가 힘들고 특히 자녀와 대화하기는 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방학이 되어 자녀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져도 부모로써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유아들은 더욱 더 많은 학원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뛰거나, 비디오 내지는 TV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부모와는 상투적인 의미 없는 대화만을 주고받는다.

교육의 시작은 당연히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아직 어리니까 이다음에 크면 다 배우게 되겠지’, ‘학교에 가서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면 돼’하는 생각으로 아이의 모든 잘못을 받아들이거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가정에서의 과잉보호에 문제점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음식점이나 결혼식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서 떼를 쓰고 우는 아이들, 밥을 먹이기 위해 밥그릇을 들고 다니며 아이를 달래야 하는 엄마, 남의 집에 가서 난장판을 만드는 아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녀에게 규율을 강조하게 되면 그 규범과 습관은 한낱 도덕 시험에나 나오는 지식에 불과하게 되고, 결코 자녀의 일상생활에 녹아들지 않는다. 뭐든지 부모가 해주고 아이에게 문제 해결을 해 볼 기회를 주지 않으며 언제나 변호하고 거들어 주는 과잉보호의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은 절제가 없고 맹목적인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유아기 교육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거창한 개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 습관의 형성과 남을 돕고, 협동하고, 나눌 줄 아는 친사회적 행동에서부터 이루어진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부모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고 말을 할 나이가 되면 이른바 ‘공부’라는 것을 시킨다는 점이다. ‘매일 놀기만 하면 어떡하니’, ‘놀지 말고 공부해’라는 말을 부모들은 거의 습관처럼 해대고 있다. 그래서 영재학원이니 천재학원이니 하는 곳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 어린아이들은 일찌감치 학원 가방을 둘러메고 한글을 일찍 깨우치는 학습지, 영재를 만들어 준다는 산수교육 학습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교재들을 마주하게 된다. 도대체 한글을 깨우치고 산수를 일찍 배우면 천재가 되고 영재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훈련만 하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일찍부터 산수와 글쓰기를 강요받아온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 교육의 효과에 대해 8년간 추적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 그 아이들이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었을 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학이나 국어에서 월등히 뛰어나지 않았으며 전체 학업 성적도 그다지 우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창의성, 정서적 발달에 있어 놀이 중심의 유치원에 다녔던 유아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아이재능에 대해 성급한 부모들

우리는 서둘러 아이의 재능을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시켜본다. 그러나 아이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렇게 많이 시키면 시킬수록 아이의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그림그리기, 피아노치기를 두려워한다. 아이들의 재능은 부모가 서둘지 않을 때 발견될 수 있다. 서둘러 아이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아이가 좋아서 몰두할 수 있도록 부모가 좀 내버려두는 것이 바로 아이의 재능을 제대로 찾아내고 길러 줄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의 자녀교육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이 강조되었으면 한다.

우선 가정은 자녀들의 기본적인 습관을 길러 주고 훈육이 이루어지는 일차적인 장소이며 그 담당자는 교사가 아닌 부모라는 인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부모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대답해 줌으로써 자녀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곧잘 일방적인 지시를 내린다. ‘형하고 싸우면 안 된다’, ‘왜 엄마 말을 안 듣니’ 등등. 뭐는 하고 뭐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긴 하되 부딪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게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자녀들에게 ‘말(잔소리)’은 좀 빼고 ‘생각’을 넣어 주자,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을 많이 하게 하고, 정답을 금방 말해 주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여러 가지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다.

끝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 문화를 찾아주자. 우리주변의 모습을 돌아 볼 때 이미 그러한 놀이 문화는 간 곳이 없고, 더구나 이제는 동네의 골목대장이나 또래 집단이 어울려 노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한국 성인들은 모여도 도무지 놀 줄을 모른다. 기껏해야 돌아가면서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노래를 시키거나, 고스톱 판을 벌리는 것이 고작이다. 어린이들은 놀면서 자신이 사는 주변 세계와 사물에 대해 배우고, 친구들과 사귀며 노는 가운데 신체가 발달해 가고 정서적 안정도 유지할 수 있다. 그야말로 공부 잘 할 수 있는 기초를 닦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과 잘 어울리며, 놀 줄 아는 행복한 성인이 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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