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황제를 키운다] 일본 "애들이 말을 안들어요"

08/10(화) 14:51

도쿄(東京)에서 지하철을 타면 빈자리를 두고도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흔히 대할 수 있는 풍경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빈자리가 어중간하다. 옆사람이 자리를 옮겨주지 않고서는 털썩 앉기 어려운 공간이다. 말이나 몸짓으로 자리를 좁혀 달라고 하기 십상이지만 대부분 멀찌감치 떨어져 아예 그런 자리를 외면한다. ‘조금 참으면 될 것을 굳이 남에게 폐를 끼칠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일본인들은 남을 귀찮게 하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 즉 ‘메이와쿠(迷惑)’를 싫어한다. 일본인의 대표적 습관의 하나로 뿌리가 오랜 전통이다.

남들이 있는 곳에서 아이들이 큰소리로 떠들거나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마구 돌아 다니는 것을 부모가 철저히 단속하는 것도 우선은 그런 전통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메이와쿠’를 피하도록 교육받은 아이들은 그런 행동이 몸에 밴다.

이런 전통이 고도성장 이후의 선진의식과 맞물린 것이 일본 특유의 질서의식이다. 보행자나 운전자나 신호를 정확히 지키고 공연장이건 식당에서건 으레 길게 줄을 선다.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서 점심시간에 30분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줄을 서는 것은 일본인의 일상생활에서 뺄 수 없는 요소가 돼 있다.

일본인 특유의 몸에 밴 질서

이런 습관은 어린 시절에 얻어진다. 유아원·유치원의 교육과정은 거의 대부분이 놀이로 채워지지만 인사와 질서는 예외없이 가장 먼저 가르친다. 매일 아침 원장이 문앞에서 아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다. 가정에서도 ‘엄마’ ‘아빠’ 다음으로 가르치는 말은 ‘안녕하세요’이다. 그 다음이 ‘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이다.

그 다음으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질서이다. 일본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우리처럼 교사의 ‘하낫, 둘’ 소리에 따라 ‘셋 넷’을 외치지는 않는다. ‘앞으로 나란히’도 없다. 그러나 하루 한번씩 ‘야외 학습’을 위해 적당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공원으로 가는 아이들을 보면 길을 건널 때는 정확히 모여서 건넌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웃에 사는 고학년과 한 조를 이루어 학교에 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훈련을 한다. 건널목에는 학부모들이 돌아 가며 당번으로 나와 길 건너는 지도를 한다. 두어달이 지나면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학교에 가고 집으로 돌아 온다.

이렇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족과 주위로부터 ‘관리’를 받는 아이들이니 좀체로 공공장소에서 말썽을 부리는 일이 드물다.

아이들 못지않게 ‘철없는 부모들’

그러나 이런 낯익은 일본의 풍경도 조금도 변하고 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되기까지 이르렀다. 더욱이 학교에서의 아이들의 태도는 날이 다르게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초등학교의 ‘학급붕괴’ 현상이다.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수업시간에 마구 돌아다니거나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늘어나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지난달 도쿄 교육위원회가 공립초등학교 전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첫 조사 결과 전체의 2.4%인 416 학급이 ‘학급붕괴’를 겪고 있는 것으롤 나타났다. ‘수업이 시작돼도 제자리에 앉지 않고 논다’ ‘체육관이나 운동장에 제때에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거나 울음을 터뜨린다’, 심지어 ‘교사를 작은 주먹으로 때리며 떼를 쓴다’는 응답까지 있었다.

이런 현상은 초등학교 교사들을 괴롭히고 있다. 일본교직원 노동조합이 4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세명중 한명의 교사가 담임을 그만두고 싶다고 응답했다. ‘너무 바쁘다’는 이유도 있었다. 한달치 급식 식단을 미리 알려주고 , 다음날 준비물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을 일일이 알리기 위한 유인물을 학급별로 만들어야 하는 등 담임의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들과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가 가장 큰 이유였다.

교사들은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이끌 만한 적절한 수단이 없다고 토로한다. 체벌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호된 꾸지람조차도 학부모의 반발을 산다. 영악한 아이들은 교사의 ‘나약함’을 모두 알고 있지만 중·고등학교처럼 교칙을 들이 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의바른 일본애들’은 옛말

결국 마지막 책임의 가정의 몫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때 시작되는 ‘이지메’(집단괴롭힘)나 중·고등학교의 폭력 문제도 그렇지만 초등학교의 ‘학급 붕괴’에 대해 일본은 ‘가정과 사회의 책임’이라고 잠정결론을 내렸다. 문부성장관의 자문기관인 교육심의회는 특히 ‘가정교육의 부재’를 가장 커다란 문제로 들고 있다.

아이들 못지않게 철없는 부모들이 늘어 나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문부성이 만든 ‘가정교육수첩’이 가정에 배포된다.

‘세수를 했다’‘대변을 보았다’‘아침밥을 먹었다’는 등 20개 항목에 대해 날마다 점검하도록 한 것이어서 대개는 ‘가정에서 이 정도를 챙기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일부 젊은 학부모는 “가정교육이나 꾸지람은 거대한 미로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더러는 “집에서 오락기에만 매달리는 데 무슨 수가 없느냐”고 거꾸로 담임교사에게 상담해 오기까지 한다.

아이를 방에 가두거나 밥을 주지 않는 등 ‘아동학대’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동전의 양면이다. 아이를 굶겨 죽이는 극단적인 예도 연간 수십건에 이르고 있다.

워낙 말 잘듣는 어른들이 많은 나라에서 이제 막 나타난 말 안듣는 아이들의 문제는 커다란 충격인 동시에 해결책을 찾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황영식·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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