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한반도 여름은 '태풍의 계절'

08/10(화) 15:12

올 여름 한반도가 ‘태풍 전시장’으로 바뀔 전망이다. 제7호 태풍 ‘올가’(OLGA)가 강풍과 폭우를 몰고 한반도를 강타한데 이어 이달중 1, 2개의 태풍이 더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우려했던 제8호 태풍 ‘폴’(PAUL)과 9호 태풍 ‘레이철’이 소멸했지만 태풍이 빈번하게 형성돼 기상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해마다 태풍은 북위 5∼20도, 동경 110∼180도 사이에서 28개정도가 발생하는데 이중 3개 가량이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월별로는 8월에 가장 많은 평균 5.7개가 발생했고, 7월(4.0개), 9월(5.0개) 10월(4.1개) 순으로 7~10월에 집중돼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8월에 평균 1.2개로 가장 많았고 7월(0.9개), 9월(0.6개), 10월(0.1개) 순이다. 지난해에는 9월과 10월에 각각 1개의 태풍이 찾아왔다.

태풍의 발원지는 북태평양 서부로 이중 필리핀 동쪽 해상이나 일본 오키나와섬 남쪽 해상에서 발생해 한반도로 북상하는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 필리핀 서쪽 해상이나 동경 140도 이상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한반도에 찾아올 가능성이 극히 적다. 올들어 발생한 8개중 제1호 ‘케이트’, 제2호 ‘리오’와 제3호 ‘매기’, 그리고 이름이 붙여지기도 전에 사라진 제4호와 제6호는 발생지점의 태생적 한계나 편동풍으로 인해 중국 대륙에 부딪혀 약화된 채 끝났다. 결국 한반도를 찾아올 가능성이 있었던 제5호 ‘닐’과 제7호 ‘올가’는 어김없이 우리나라를 통과한 셈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올해 북태평양 고기압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면서 한반도가 그 가장자리에 놓이게 된 것이 빈번한 태풍 내습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은 북상하다가 강력한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과 부딪치면 이를 뚫지 못하고 가장자리를 타고 우회하게 되는데 한반도가 바로 태풍의 주 통로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기상 전문가들은 “저기압은 고기압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일본 오키나와섬 남동해상에서 발생해 북태평양 고기압에 밀려 거의 같은 경로를 타고 한반도 서해안으로 내습한 제5호 태풍 ‘닐’과 제7호 ‘올가’, 제8호 ‘폴’은 유난히 북쪽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태풍이 한반도까지 다가오는 이동거리에 짧았다는 점이다. 이는 보통 태풍이 북위 5∼10도 부근에서 남동기류와 북동기류가 만나 발생하는데 올해는 동서기류가 북위 15∼23도에서 만나고 있기 때문에 발생위치가 평년보다 높은 편에 속한다. 이동거리가 짧은 태풍은 해상에서 충분한 수증기를 공급받지 못해 세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편동풍 등 다른 원인들에 의해 진로를 수정할 가능성이 적어 북쪽으로 직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상청은 올여름 적도부근에 거대한 수증기 덩어리가 형성돼 있어 태풍의 발생빈도가 여느 해보다 높고, 북태평양 고기압이 팽창하기 전에 태풍이 한반도를 향할 가능성도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시아의 비정상적인 기압배치로 인해 한반도가 태풍의 취약지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태풍이 수시로 한반도를 내습하고, 중부지방에는 때때로 거대한 수렴대(구름덩어리)가 형성되면서 예상치 못한 폭우가 쏟아져 장마패턴이 바뀌고 있다. 올해도 기상청이 지난달 20일 장마전선이 물러났다고 발표하기가 무섭게 서울 경기 강원 등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지난해에도 7월29일 장마종료를 선언했으나 이틀뒤인 7월31일 지리산을 시작으로 8월초까지 전국에 엄청난 폭우가 뿌려졌다. 장마후의 국지적인 집중호우와 잦은 태풍의 내습은 우리나라의 통상적인 여름철 기상현상과는 크게 다른 것이어서 그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름철 폭우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과 차가운 오오츠크해 고기압이 만나 형성하는 장마전선이 주요인이고 열대성 저기압(태풍)도 수시로 폭우를 몰

고 온다. 여기에 전선의 형태를 띠지않는 수렴대(구름덩어리)와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약화에 따른 대기불안정, 지형효과로 인한 국지성 집중호우도 있

다. 그런데 기상청의 관측에 따르면 최근 몇년간 장마가 끝난뒤에 오히려 더 큰 비가 내린다는 사실이다. 장마기간중 강수량은 80년대까지 연평균 강수량의 30% 정도를 차지했다. 그러나 90년대들어 이 비율이 26%로 낮아졌다. 반면 장마후의 강수량은 22%에서 31%로 크게 증가했다.

이처럼 비정상적 장마패턴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기상청은 이러한 이상기상현상을 한반도 주변의 기후변화로 설명하고 있다. 최근 1년반동안 이상조짐을 보여온 한반도 주변의 해수온도 분포가 여름철에 발달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의 비정상적 발달을 초래해 기상이변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 박정규 장기예보관은 “2년전과 비교해 남쪽해상 수온대가 2~3도 높아졌고, 북쪽해상은 오히려 2도 정도 낮아졌다”면서 “이런 고수온대와 냉수온대가 1년반이상 지속되면서 이것이 여름철에 발달하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비정상적 발달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이태용(천문대기학과)교수도 “위성사진에 나타난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에 과거처럼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해수면 온도상승과 이에 따른 비정상적인 장마패턴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엘니뇨현상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단지 지구온난화가 한 배경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을 뿐이다. 박정규 예보관은 “엘니뇨가 나타나면 날짜변경선을 중심으로 서쪽의 해수면 온도가 낮아져 우리나라의 해수온도도 비정상적으로 낮아져야 하나 우리나라는 반대로 고수온 현상을 보여 엘니뇨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다”면서 “지구온난화가 요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 현상은 말 그대로 지구가 더워지는 것. 이산화탄소가 지표에서 대기로 다시 반사되는 적외선을 흡수, 온실의 유리지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돼 지구표면의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이다. 이처럼 지구가 더워지면서 대기하층이 따뜻해지고 수증기를 많이 함유하게 된 상태로 위로 올라가 찬공기와 만나면 장마철이 아니어도 집중호우를 자주 뿌리게 된다는 것이다.

장마가 물러났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끝나기 무섭게 폭우가 쏟아지자 기상청은 여름철이면 항의전화로 몸살을 앓는다. 슈퍼컴퓨터가 ‘깡통’이 아니냐는 비아냥에, ‘기상청은 여전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는 비난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제7호 태풍 ‘올가’가 예상보다 적은 비를 뿌리고 한반도를 빠져 나가자 기상청이 예보한 강우량이 ‘면피성 부풀리기’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기상청은 ‘올가’로 인한 예상강우량을 지난 2일 오전 80~200㎜(최고 300㎜이상)로 발표했다가 당일 오후 5시 100~300㎜, 최고 500㎜이상으로 수정했다. 기상청은 중부지방에 드리워진 거대한 구름덩어리(수렴대)가 태풍과 만나 ‘+ α’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이같은 전망을 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올가’와 구름덩어리는 합류하지 못하고 일부는 북한쪽으로 밀려나고, 나머지는 에너지가 떨어지면서 태풍이 영향권에서 별 효력을 내지 못하자 뒷말이 무성했다. 지난해 7월31일 밤 지리산에 최고 320㎜의 집중호우가 퍼붓기 전에도 당일 오전 예보에서 기상청은 “중부지방은 30~80㎜, 남부는 10~50㎜의 비가 오겠다”고 예보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기상예측결과는 감사대상이기 때문에 예보관들이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슈퍼컴퓨터는 지난 7월31일부터 8월2일까지 예상강우량을 220㎜ 로 예측한 것으로 드러나 이같은 정황을 뒷받침했다.

슈퍼컴퓨터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수준이 너무 높은 것도 기상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산이 들어서 지형에 복잡한 곳에는 아무리 슈퍼컴퓨터라도 이를 정확히 반영하기 어렵고, 슈퍼컴퓨터를 수십대나 가동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국지성 집중호우는 심할 경우 30분전에야 알아맞힌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지리산과 강화도에 내린 폭우로 곤경한 기상청은 상황이 끝난뒤 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보유한 슈퍼컴퓨터에 자료를 입력, 재분석해 본 결과 강화지방의 예상강우량은 50㎜ 이하였다. 그런데도 지난해 8월5일부터 4일간 강화도에는 747.5㎜의 폭우가 쏟아졌던 것이다. 슈퍼컴퓨터가 도입되기전 상황으로 당시 기상청은 강화도의 강우량을 100㎜로 예보했었다.

기상청은 지리산 폭우를 계기로 지난 6월 일본 NEC로부터 1,300만달러(160억

원)에 슈퍼컴퓨터를 도입, 현재 가동중이지만 우리나라 지형에 맞는 예측프로그램을 개발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재 1~2시간 전에야 알 수 있는 집중호우를 6~12시간전에 미리 알 수 있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를 새로 개발해야 하는데 이는 2001년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전지구적인 이상기후로 폭우와 폭염같은 재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방재 기상시스템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기상에 투자하는 예산규모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가 형편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미국기상학회지(AMS Bulletin)가 지난해 각국의 국민 1인당 기상관련 예산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1만991원으로 단연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뉴질랜드(8,172원), 덴마크(7,500원), 핀란드(7,283원), 영국(6,889원), 일본(6,105원) 순이다. 각국 평균은 6,657원이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97년 총예산(12조6,250억원) 가운데 기상예산은 512억5,000만원으로 0.04%에 불과하다. 국민 1인당으로 따지면 1,094원으로 바닥수준이다. 대만도 10년전에 이미 2대의 슈퍼컴퓨터를 도입했다. 어설픈 기상예보로 인한 엄청난 재산및 인명피해를 감안하면 기상청의 오보를 지적하기에 앞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정화·사회부 기자 jeong2@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