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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세상이 다가온다] 일본 미래 '로봇산업'에 걸었다

지난해 전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아 일본에서는 이른바 ‘모노즈쿠리(物作リ·물건 만들기) 논쟁’이 불붙었다. 금융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장기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강한 부러움을 표하면서 ‘모노즈쿠리’에 의존해 온 일본 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런 와중에서 “인간이 도구를 만드는 동물인 한 모노즈쿠리는 인간의 숙명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모노즈쿠리는 살아 남는다”는 반론도 끊이지 않았다.

반론 가운데는 이런 주장도 있었다. “세계최강 수준인 일본의 모노즈쿠리 능력이 앞으로 고도의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에서 완성 단계에 이르러 일본 경제를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올릴 것이다.”

로봇산업이 일본 경제에 얼마만큼 효자 역할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에 대한 일본의 기대는 대단하다. 산·관·학 공동연구·개발이 한창이고 대학과 기업은 나름대로의 미래를 걸고 로봇 개발 경쟁에 나서고 있다.

게이단렌(經團連)이 6월말 제안한 ‘미래 전략산업’에는 생활지원용 로봇 개발이 9대 과제에 포함됐다. 전략과제로 선정됐다는 것이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9대 과제 가운데 인터넷 관련 산업, 유전자 정보 해독, 폐기물 처리산업 등은 구미에 뒤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방어적 과제일 뿐이다.

그러나 로봇산업은 고속도로 자동주행 시스템, 연료전지·축전지 기술 등과 함께 일본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장래가 밝다. 특히 만화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이른바 ‘인간형 로봇(휴먼 로봇)’분야에서는 일본의 독자 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와 함께 일본 제조업을 상징해 온 소니는 6월1일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 5,000대를 발매했다. 인터넷을 통해 일본 국내 3,000대, 해외 2,000대를 발매한 결과 대당 25만엔이라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20분만에 동이 나 버렸다.

‘아이보’의 어떤 매력이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무엇보다 만화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로 펼쳐 진 때문이다. ‘아이보’는 네발로 걸어 다니고, 공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주인을 보면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짖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성깔을 부릴 줄도 안다. 동물 새끼나 유아처럼 학습능력이 있는 데다 성격도 환경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성된다. 먹이를 주듯 충전만 해주면 병에 걸리거나 생명이 다해 주인에게 고통을 주지도 않는다. 위생상 문제가 없어 노인이나 아이들의 벗으로 적합하고 좁은 아파트생활에도 안성맞춤이다.

‘아이보’는 궁극적인 휴먼 로봇과는 거리가 있지만 상업용 로봇 가운데 가장 근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휴먼 로봇 개발에 필요한 모든 분야의 기술을 집약했다는 점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보’ 발매 20여일 후인 6월24일 문부성 산하 과학기술진흥사업단 연구팀은 사람처럼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는 휴먼 로봇을 공개했다. 인간의 행동을 보고 따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데다 눈알은 물론 목과 허리, 팔, 다리 등 30개의 관절을 인간처럼 움직일 수 있다. 아직 버팀대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결점이 남았지만 전신을 인간처럼 움직이는 로봇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기록됐다.

키 180㎝, 몸무게 80㎏의 체격이 인간과 거의 다를 바 없고 관절이 유압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처럼 부드럽게 움직인다. 카메라로 만들어 진 눈알은 몸전체의 흔들림과 관계없이 주위를 안정되게 살핀다. 인간의 행동을 학습, 북을 두드리고 테니스공을 라켓으로 치는 등 갖가지 행동을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원래 뇌의 작용을 해명하기 위해 이 로봇을 제작했으나 앞으로 고령자를 정성껏 간호할 수 있는 ‘간호로봇’ 등 산업용으로의 응용을 고려하고 있다.

일본의 인간형 로봇 개발에서 뭐니뭐니해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난해 8월에 시작된 산·관·학 공동연구개발이다. 재단법인 제조과학기술센터와 와세다(早稻田)대학, 후지쓰(富士通) 등 9개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했으며 50억엔의 연구비를 투입하고 있다.

토대가 된 인간형 로봇은 올해 닛산(日産)을 제치고 도요타에 이은 일본 제2의 자동차메이커로 부상한 혼다(本田)기연이 10년의 연구·개발 끝에 97년에 선보인 완전 자립형 로봇‘P3’. 하얀 몸통에 장갑을 끼고 등에는 상자 모양의 배낭을 진 키 160㎝의 ‘P3’는 무선 지시에 따라 두발을 움직여 걸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현재는 어느 정도의 높이 차이나 경사는 간단히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개량됐다.

공동연구팀은 2002년까지 5년간의 기간중 처음 2년간은 ‘P3’에게 물건을 잡거나 들 수 있고 달걀을 깨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조절할 수 있는 고성능 ‘손’을 만들어 주는 데 매달린다. 나머지 3년간은 이런 ‘P3’를 구체적으로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검증한다.

휴먼 로봇이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공동연구팀에서 원격조정장치 개발을 맡고 있는 도쿄(東京)대학 다테 스스무교수는 넓은 활용도를 우선 들었다. “현재 다양한 산업용 로봇이 있지만 어느 것이나 역할이 한정돼 있다. 모내기 전용 로봇은 모내기 이외에는 쓸모가 없다. 그러나 휴먼 로봇이라면 이앙기 운전이나 풀을 베고 수확하는 데도 쓸 수 있다. 경찰관의 순찰을 대신할 수 있고 흉악범 체포에도 활용할 수 있다. 재해시에는 원격조정으로 위험한 장소에 들여 보내 인명을 구하는 데도 쓸 수 있다.”

영화 로보캅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가 아니다. 도쿄 다카나와(高輪)소방서에는 재해구조용 로봇이 이미 배치돼 있다. 모양은 사람보다는 특장차에 가깝지만 행동원리는 휴먼 로봇과 똑같다. 원격조종에 의해 6㎙까지 팔을 늘려 불길속에서 발을 구르는 사람을 들어 내 구출한다. 적외선 카메라와 초음파센서를 내장, 연기로 가득찬 화재 현장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일단 인간형 행동과 동작이 가능해진 지금 일본이 보다 완벽한 휴먼 로봇 개발을 위해 힘을 쏟고 있는 분야가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원격조종장치이다. 다테교수가 마쓰시타(松下)전기 등과 공동으로 개발중인 ‘원격조종플랫폼’은 로봇이 보고 있는 영상이 무선이나 광케이블을 통해 조종자의 안경식 표시장치(HMD)나 반구형 스크린에 나타난다. 떨어진 장소에서 정밀작업을 하기 위한 ‘텔레 이그지스턴스(Tele-Existence)’ 기술을 응용한 것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교환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언젠가는 스스로의 몸을 움직이듯 로봇을 조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단 실현되면 기술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점에서 로봇산업은 기계공학의 집약체인 자동차산업과 흔히 비교된다. 자동차산업이 20세기 후반 전자산업과 함께 일본의 제조업을 떠받쳐 왔다면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의 한데 모은 로봇산업이 21세기 일본 경제를 떠받치리라는 것은 결코 허망한 기대가 아니다.

황영식·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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