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이대로 좋은가] 사면남발, "법앞에 평등없다"

08/05(목) 09:09

사면(赦免), 국민화합을 위한 배려인가, 범죄행위에 대한 면죄부인가.

최근 김영삼 전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의 특별 사면 문제로 시민단체와 여론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사면권 남용에 대한 제도적 장치 보완의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사면은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은 통상적으로 국난 극복을 위한 국민적 대화합이 필요하거나 불합리한 법률과 가혹한 형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을 경우 사면권을 행사한다. 사면에는 일괄적으로 형집행을 면제하거나 형선고 효력을 없애주는 일반사면과 범죄자별로 대상을 일일이 정해 형의 효력을 소멸시키는 특별사면 두종류가 있다. 통상적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일반사면은 일상적인 형사사범에, 법무부장관의 상신으로 국무회의 의결만 거치면 되는 특별사면은 권력형 정치·경제 비리 사범에 연루된 인사들이 주 대상이 되어왔다.

지금까지 국내 사면은 주로 대통령 취임때나 3·1절이나 광복절 등 국가적인 경사가 있을 때 주로 실시됐다. 특히 정치적 색채가 짙은 특별사면의 경우 80년대까지는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양심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정치권력과 얽힌 대형 경제 비리 사범쪽으로 사면 대상이 바뀌어 버렸다.

대표적인 권력형 경제 비리 사범의 사면은 82년 5월 이철희·장영자 부부 거액 사기사건이 첫머리를 장식한다. 당시 15년 형을 받았던 이철희씨는 91년 5공 비리로 구속됐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와 함께 뚜렷한 이유없이 가석방되면서 권력형 비리범들의 잇단 사면에 길을 터주었다.

96년 8월 문민정부 들어서는 박철언·이건개 전의원과 엄삼탁 전병무청장, 장덕진 희전호텔사장 등 슬롯머신사건 연루자와 이종구·이상훈 전국방장관, 김종호·김철우 전해군참모총장 등 율곡사업 및 군인사비리 관련자들, 김종인 전청와대경제수석, 이용만 전재무장관, 안영모 전동화은행장 등 동화은행 비자금사건 관련자들이 대거 특별사면·복권됐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임기 말년인 97년 12월 자신이 수사를 지시했던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과 장세동 최세창 정호용 허삼수 허화평 안현태 이현우 이원조 등 12·12 및 5·18사건과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실형이 선고됐던 5, 6공 인사들을 대거 특별 사면·복권시키는 조치를 내렸다.

이외에도 95년 8월11일 수서비리 사건의 이원배·이태섭·김동주 전의원과 장병조 전청와대비서관, 한보특혜비리 사건의 홍인길·정재철·권노갑 의원과 우찬목 전조흥은행장 등 각종 대형비리 사범들이 거의 대부분 사면돼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 사면 수혜자들은 대개 형 확정판결을 받은지 수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정치적인 고려와 특혜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권력형 비리사범에 대한 사면은 국민의 정부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사면수혜자들의 죄목을 살펴보면 직위를 이용한 거액 뇌물 수뢰죄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상해·절도죄의 실형율은 평균 35%, 사기·공갈죄의 경우 43%에 달하는 반면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이 독식(?)하고 있는 특가법상의 가중수뢰죄의 경우 실형율이 23.1%로 다른 범죄보다 현저하게 낮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 특권층에게 사면이라는 또 다른 특혜를 주는 것은 권력형 비리 사범에 대한 처벌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는 얘기다. 이것은 솔선수범해야 할 국가 지도층 사이에서 ‘눈감고 한 건 올린뒤 사면받자’는 식의 나쁜 풍조를 만들어 낼 위험도 크다.

결국 사면권 남용은 검찰과 법원의 존립 자체를 정면 부정해 사법정의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또 우리사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탕주의’와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사회 병리 현상을 일으키는 폐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사면의 유형을 살펴보면 정치권의 타협에 의한 ‘주고받기식’, 자기 세력을 빼내기 위한 ‘끼워넣기식’, 야당 분열을 노린 ‘물흐리기식’, 선거등 을 위한 ‘베풀기식’등 다양한 형태로 남용돼 왔다.

광복절을 앞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김현철씨 사면여부도 현정부에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고 있는 ‘YS 달래기’를 염두에 둔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른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이석연 변호사는 “사면 대상자는 양심수가 아닐 경우 확정 형기의 3분의2 이상을 채운 상태에서 반성의 태도가 뚜렷하고 국민화합을 이룰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야 한다. 그러나 김현철씨의 경우 형기도 채 4분의 1도 못 채운데다 수십억원의 조세를 포탈하고도 사죄와 반성의 태도를 보인 적이 없어 사면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사면권의 범위를 넘어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상당 부분 사법부의 법집행상 형평성과 공정성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모순 관계에 있다. 이로인해 사법부내에서는 벌써부터 사면에 대한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게 일었다.

이번 광복절사면에서도 국민회의가 요청한 미결수 180명에 대한 검찰의 공소취하 요청에 대해 법무부가 ‘공소취하는 일반사면에만 해당된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명, 논란을 빚고 있다. 정치권이 정확한 법적 지식도 없이 정치적 생색내기로 사면을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한양대법대 오영근(형사소송법)교수는 “지금까지 사면권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에 따라 남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며 “따라서 사면권도 권력 분립의 원리에 비추어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선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교수는 “특히 사면권자의 자의대로 이뤄지는 특별사면도 국회 동의를 얻도록 제한하거나 사면에 대한 사법심사제도 같은 절차상의 통제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IMF를 계기로 빈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가뜩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서민들에게 권력형 비리범들에 대한 사면 남발이 어떻게 다가올지 정치권은 아직 느끼지 못하는 것같다.

송영웅·주간한국부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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