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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화교들] 화교들은 왜 이땅을 떠나야만 했나

8월24일은 한·중수교 7주년. 7년전 이날은 한·대만 단교일이다. 하지만 이날은 100여년의 한국 화교 역사상 뜻깊고 희망찬 날이기도 하다. 거대한 중국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화교들이 한국사회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화교 자체가 아니라 거대 중국권에 접근할 수 있는 연결창구로 화교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억 인구의 중국은 한국이 21세기 도약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할 수 밖에 없는 지정학, 지경학적 위치에 있다. 88년 개혁·개방 이후 연평균 10%의 경제성장을 이룩해 온 중국시장은 무한한 잠재력 그 자체다. 중국 성인들이 1년에 맥주를 두잔씩 더 마시면 아일랜드가 1년 생산한 곡물이 없어져 버린다. 중국인들이 일본인 만큼 해산물을 먹을 경우 전세계 1년치 어획고를 바닥내 버린다. 중국인들이 2015년 한국인 처럼 육류를 섭취하면(육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곡물을 사용해야 한다) 세계 곡물시장은 공급자 위주로 돌아서고 곡물가는 폭등하게 된다. 한국에는 화교가 사실상 없다. 한국과 중국권을 연결할 가교가 없는 것이다. 21세기 만개할 아시아·태평양 시대 참여에 우리는 벌써 한 발 뒤져 있는 셈이다.

“화교 세력이 너무 커지면 사회 불안정을 초래한다.”

인도네시아의 한 고위 관리가 공개석상에서 내뱉은 불평이다. 국부의 75%를 점하고 있는 소수 중국계(인구의 5%)와 다수 회교도 사이의 고질적인 갈등이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도’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한국사회에서는 화교가 한쪽 구석으로 완벽하게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이 없어 오히려 걱정이다. 21세기를 향해 이미 용트림하고 있는 ‘대 중화(中華) 경제권’참여에 결정적 고리 역할을 해 줄 화교세력이 이 땅에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인천 선린동. 중구청에서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나있는 골목안으로 중국집 몇개가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어쩌다 붉은 바탕에 황색 글자로 쓴 복(福)자를 거꾸로 붙여 놓은 대문도 눈에 띈다. 화교가 사는 집이다. 쇠락한 중국풍 2층 건물도 볼 수 있다. 괜찮은 중국 음식점이었던 모양인데 창문은 깨지고 건물색은 바랠대로 바랜 걸로 보아 이미 오래전에 방치된 것 같다. 한때 수천명의 화교가 밀집해 살던 한국의 대표적 차이나타운 선린동의 오늘날 모습이다. 번듯한 화교학교와 화교협회 건물만이 그래도 옛날의 차이나타운 모습을 상상하게 해 줄 뿐이다.

상복전(常福傳·50)씨. 이곳에서 중국집 ‘상원(常源)’을 운영하고 있는 화교 3세다. 역시 화교인 부인과 함께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만든다. 10평이 채 안돼 보이는 홀에서 주문받고 음식을 내놓는 일은 한국인 아줌마의 몫이다. 계산대에는 상씨의 딸 종민(宗民)양이 앉아 있다. 대만 창화(彰化)사범대학 2학년에 재학중인 종민양은 여름방학에는 귀국해 집안일을 돕는다.

상씨가 여기서 중국집을 시작한 것은 5년전.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한 끝에 서울에서 중국집을 하다 여기에 정착했다. 할아버지 때 산둥(山東)에서 건너왔고 자신은 한국에서 태어났다. 상씨의 이야기. “70년대 까지만 해도 여기에는 화교가 붐볐고 중국집도 많았는데 요즘은 겨우 너댓개 남았어요. 80년대 들어 화교들이 중국으로 돌아가거나 미국, 일본으로 이민을 떠나는 바람에 지금은 손님도 대부분 한국사람이에요.”

상씨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한국에서 터전을 닦느라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화교들이 다들 그랬듯이 농사와 채소장사, 음식점을 했었죠. 하지만 한국서 벌어 먹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답니다. 요즘은 여러가지 직업을 갖는 화교들이 많아 다소 나아졌다고 하데요.”

딸 종민양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이곳 화교학교에서 다니고 대학도 대만으로 간 탓에 한국친구가 거의 없다. 대학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와 살 생각이다. “대만에서는 직업 구하기도 쉽지 않아요. 대만 남자와 결혼하면 문제는 없겠지만 태어나서 살아온 한국이 좋아요.”

이곳의 한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화교 3세 손(孫·35)모씨는 차이나타운이 쇠퇴한 이유를 묻자 입에 거품을 물며 이야기했다. “화교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해요. 신용카드 하나 만들려고 해도 한국인 보증이 필요하고. 은행에서 돈 빌리기는 하늘에서 별따기예요. 은행이 신용사업하는 곳인데도 화교라는 이유로 신용과 담보능력이 있는데도 안빌려 주는 건 이해를 못하겠어요.”

차이나타운 선린동에서 화교는 말 그대로 소수다. 길바닥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는 아줌마 3명에게 “화교냐”고 말을 걸자 웃으며 “이곳에 있으면 화교인 줄 알고 ‘한국말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대답을 대신했다. 화교들과 갈등은 없느냐고 묻자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자기들(화교) 벌어 자기들 살고, 우리 벌어 우리 사는데 갈등은 무슨 갈등이냐.”

인천에 살고 있는 화교는 약 3,300여명. 이중 3,044명이 산둥출신이거나 그 후예다. 인천 화교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직종은 점원으로 256명. 음식점(157명), 상업(60), 노동자(34), 교사(31), 농업(23), 운수업(5), 한의원(5), 의사(2) 순이다.

한국화교의 전반적인 직업도 인천의 경우와 대동소이하다. 한마디로 홍콩이나 동남아 각국의 화교와 비교할 때 한국화교는 질적으로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에는 동남아 각국의 화교자본이나 중국과 한국을 연결해 줄 힘있는 화교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IMF 극복을 위해 외자유치를 벌이던 올해 4월, 정부 지원에 힘입어 ‘한국화교 경제인 연합회’가 결성됐다. 지방자치단체등이 앞다퉈 동남아 지역의 화교자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 건도 성사되지 못했다.

한중문화예술교류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국백령(鞠柏領·62)씨의 이야기. “한국화교도 돈만 있으면 중국 실력자와 친분을 맺을 수 있고, 중국에서 한국기업을 위해 로비를 할 수 있다. 세계화교협회와 연계해 동남아 화교자본을 유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화교는 돈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정부의 규제가 너무 심해 화교자본의 씨를 말려 버렸기 때문이다.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떠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여기서 살 사람들인데 내국인 대우를 해줘야 한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이 몰락했듯이 화교들의 주요 거주지였던 서울과 부산, 대구의 화교촌도 거의 사라졌다. 한국은 세계에서 차이나타운이 없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자,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중국인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세계적으로 차이나타운은 중국계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연결고리이자 관광객들의 주요 소비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지 못한 탓에 한국이 입는 잠재적인 경제손실이 클 것은 당연한 이치다. 중국만 따졌을 때 경제적으로 해외관광 능력이 있는 인구는 현재 6,0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계 관광객은 40여만명에 불과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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