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와의 전쟁] 부정부패 척결 "이번엔 다를까"

08/24(화) 18:00

김대중대통령이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한국사회의 밑바닥부터 갉아먹어온 부정부패박멸작업이 시작됐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처럼 집권 2년째를 맞은 국민의 정부가 본격적인 부패뿌리뽑기에 나선 것이다.

8월 17일 임채정 국민회의 정책위원장과 차수명 자민련 정책위원장, 정해주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 등 당정이 발표한 부패방지종합대책은 그동안 시민단체나 언론 학계 등에서 제시한 정책들을 총망라해 가히 부정부패방지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비리 사전차단, 사후처벌도 ‘살벌’

이번 종합대책은 크게 법·제도적인 부정방지대책과 민간부문의 부패방지활동 참여보장으로 요약된다. 법·제도적으로는 자금세탁방지법과 부패방지법제정, 공직자 재산등록강화, 부패공무원의 취업제한조치 등 비리를 사전에 차단할 대책뿐만 아니라 사후처벌도 ‘살벌한’수준으로 높였다. 또 뇌물공여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공무원의 처우개선방안까지 마련돼 부패유인요인을 원천봉쇄했다. 이와 함께 민간주도의 반부패특별위원회 설립과 시민감사관제·시민감사청구제·내부고발자 보호및 보상제 등을 신설해 외부감시체계를 대폭 강화, 그동안 역대정권이 반복해온 엄포성 서정쇄신구호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과시했다.

부패방지종합대책을 발표한 국민회의 임채정 정책위장 등도 “그동안 역대정권에서 부패방지대책은 수없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시스템적으로 접근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학계와 시민단체들도 이번 대책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참여연대는 반부패특별위원회의 위상격하 등에 불만을 표시했으나 “부패공직자 공직임용을 제한하는 등 로비공화국의 핵심원인이 되는 전관예우에 따른 정경유착의 고리에 메스를 가하고 있고 반부패시민행동의 제도적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부패척결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논평했다.

대대적 사정작업 예상

정부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부패방지를 위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한만큼 조만간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국민들의 피부에 닿게 인식시키기 위해 검찰과 경찰 등의 대대적인 사정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하고 옷로비사건과 조폐공사파업유도 국정조사가 끝나고 현 한승헌 감사원장의 후임이 결정되는 9월중에 ‘올가’급 사정태풍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IMF를 거치면서 수적으로 급증했을 뿐만 아니라 대형화·노골화되는 추세여서 정부로서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김대통령은 비리혐의로 구속된 주사급 공무원의 숨겨놓은 재산이 수백억대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오자 부정부패를 뿌리부터 뽑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각종 비리혐의로 사법처리된 공직자수는 72년 1,881명에서 81년 1,072명, 91년 933명으로 줄어들다가 96년 3,986명, 97년 3,153명, 98명 3,722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직급도 고위공직자에서 중하위직으로 확산돼 구조화하고 있고 범죄액수도 대형화하고 있는 추세여서 IMF이후 빈부격차의 심화현상과 함께 자칫 정권의 밑바닥부터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또 최근 국제투명성협회가 발표한 세계 85개국의 청렴지수 순위중 우리나라가 43위로 랭크돼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자 정부로서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과 학계 등에서는 정부가 체계적이고 야심적인 부패방지대책을 마련했지만 실천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만큼 그동안 역대정권의 수없는 엄포와 대책이 일회성 정치쇼로 전락한 사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부패방지 종합대책이 발표된 이후 PC통신에도 이와 관련한 반응이 거의 없는 것도 이같은 입장유보심리를 반증하고

특히 이번 대책의 핵심이랄 수 있는 반부패특별위원회의 위상이 검찰과 감사원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대통령 자문기구로 격하되자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정부의 실천의지에 의구심을 보이고

당초 한국행정학회와 시민단체, 학계 등에서는 싱가포르의 홍콩의 염정공서(ICAC)나 싱가포르의 부패행위방지국(CPIC)처럼 통합사정기관으로 제시됐으나 법무부와 감사원의 거센 반발에 밀려 집행기능이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림대 김인영교수(정외과)는 “이번 발표는 기존보다 진일보했지만 반부패특위를 대통령자문기구로 격하시킨 것은 문제”라며“결국 법무부가 기득권을 전혀 놓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부실천의지에 의구심 보내기도

일부에서는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요구로 국회에 상정된 부패방지법이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등 쟁점조항이 모두 빠졌고 대통령이 수차례 통과를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의 암묵적인 방기속에 2년여 국회에서 방치되고 있는 사실을 들면서 신뢰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계나 시민단체가 무엇보다 허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한국부패의 원천이랄 수 있는 정치개혁비전이 제외됐다는 점이다.

당정이 부패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날 김종필 국무총리가 자민련의원들에게 500만원씩 격려금을 준 사실이 들통나면서 여론의 심한 비난을 받았다.

경실련 고계현 시민입법국장은 “김총리의 행태에서도 드러났듯 우리 부패구족의 핵심은 정치인”이라며 “정치자금을 비롯해 고비용·저효율의 정치제도에 대한 철저한 개혁이 빠진채 공무원과 재벌만 손을 댄다면 실효성은 반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치자금법 개정안과 선거법 개정안 등 정치개혁법안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국회의원들의 보이지 않는 저항으로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김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참신한 외부인물영입을 통한 신당창당 등 정치권의 새판짜기에 들어갔지만 공천제를 고리로 한 보스중심의 당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정치개혁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당·정이 발표한 부패방지종합대책의 성패는 정부의 강력하고 철저한 실천과 이에 걸맞는 정치개혁의 추진 여부에 달려있다는 평가다.

한국의 부패실상을 둘러보고 이달초 출국한 국제투명성협회 피터룩 이사는 “한국사회에서 부정부패를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있는 점은 희망적”이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의 부패가 심각한 문제이고 빨리 없애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어 이 공감대를 한데 모아 제도적인 개혁을 이뤄나간다면 언젠가는 청렴지수에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가 결연한 의지로 부패척결의 칼을 빼들었지만 과연 부정부패와의 전쟁에서 승리할지, 아니면 역대정권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층의 집요한 방해에 밀려 뒷걸음칠지에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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