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 전 영국수상은 “이 세상에 좋은 세금이란 없다”고 말했다. 세무공무원을 유달리 싫어했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세무공무원과 박제사의 차이는 박제사는 세무공무원과 달리 우리의 피부만 벗겨간다는 것이다”라는 말로 한번 걸리면 거덜을 내는 세무공무원을 비꼬았다.

세금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불공평한 세금이다. 최근 한 비공식 조사에 따르면 소득에 비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를 나타내는 소득대비 과세소득 현실화율은 근로자의 경우 90%, 사업자 60%, 전문직 40%로 조사됐다. 직종별로는 97년 소득신고자를 기준으로 은행부부장급의 납부세액이 788만원이었던 반면 치과의사와 한의사의 평균세액은 600만원에 불과했다.

같은 소득이라도 근로소득이 많은 가계일수록 세부담이 크고 사업소득이 많은 가계일수록 세부담이 적어지는 기형적인 형태인 것이다.



소득격차 더 벌려놓는 과세체계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겪으면서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중산층이 붕괴하자 불공정한 세제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은 폭발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다. 일부 재벌들은 국가적인 위기를 편법상속의 기회로 역이용했고 자영업자와 전문직 등 고소득층들은 고금리 등에 편승해 부가 늘어났다. 현행 과세체계가 소득격차를 줄이기는 커녕 확대시키는 역할만 한 셈이다.

정부는 빈부격차를 줄이고 공정과세의 원칙을 실현시키기 위해 올해 세제개혁을 단행, 부가가치세법 등 세법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심의과정에서 원안이 크게 손질된 채 통과돼 ‘절반의 개혁’에 머물고 말았다는 평가다. 정부와 국회측은 이 정도만 해도 큰 성과였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들과 대부분의 국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농어촌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상환을 연기해주는 등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 지원을 강화하고 있지만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행정이라는 정치적 비난 뿐만 아니라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참여연대 윤정훈 조세개혁팀장(공인회계사)은 “서민들의 세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소득에 비해 세금을 턱없이 적게 내는 전문직을 포함해 자영업자들의 세수관리를 제도적으로 보완해 세수를 늘린 다음 서민들의 세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세부담을 줄여주면 당장에는 좋겠지만 정부가 지출해야 할 돈의 규모가 확정된 상황에서 국가재정을 담보로 한 모험이라는 것이다.



자영업자 세원관리 강화필요

정부나 시민단체는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대표적인 세금탈루분야는 바로 자영업자들의 소득이다. 최근 국민연금 확대실시과정에서 드러난 자영업자들의 소득신고실태는 봉급생활자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도피처로 악용되고 있는 과세특례제및 간이과세제 대폭 정비를 골자로 한 부가세법 개정안과 재벌들의 편법 상속과 주식양도차익을 막기 위한 상속증여세법 개정안 등을 정기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부가세법 개정안은 국회가 정부의 원안에서 후퇴했고, 상속증여세법안도 크게 완화됐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부가세법 개정안은 과세특례제를 없애는 대신 연간 신고소득 2,400만원~4,800만원인 기존 과세특례 대상자들을 간이과세자로 전환해 세원관리를 철저히 하자는 것이었으나 국회재경위는 상한선을 4,800만원~6,240만원 범위에서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바꾸어 놓았다.

재경위 관계자들은 “갑작스러운 과세특례제 폐지와 세금인상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있다”고 법안수정 이유를 해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자영업자들의 과세자료 양성화와 세원관리 강화라는 당초 취지를 무색케 했을 뿐만 아니라 과세범위를 시행령으로 위임해 조세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비판하고 있다. 10개 시민단체들이 법안 수정을 주도한 국회재경위 법안심사소위 소속 의원 8명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하자 법안심사소위측은 보도자료를 내고“국회 고유권한인 입법권을 침해한 행위”라며 “관련자들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할 것을 검토중”이라고 반발하는 등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실시 앞당겨야

부의 재분배를 위한 기초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는 금융소득종합과세가 2001년으로 미뤄진 것도 정부와 정치권의 개혁의지를 의심케 만들고 있다. 정부안대로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2001년부터 시행되면 과세는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5월부터 부과돼 시행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IMF를 맞아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전면 보류됐지만 이제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재실시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무총리산하 정책평가위원회도 지난 7월 정책평가보고서에서 중산층의 붕괴를 막고 경제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체 세수의 53%에 육박하는 간접세 비중을 낮추고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실시하는 등 조세개혁이 절실하다고 제시했다.

한국조세연구원 현진권 연구위원도 “금융소득종합과세는 세수확보보다는 투명한 세원관리라는 측면에서 당장 실시해야 한다”며 “부가세법 개정안도 모처럼만에 정부와 시민단체등이 과세특례대상자를 점차 줄여나간다는 취지에 합의했으나 국회심의과정에서 크게 퇴색됐다”고 말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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