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이대로 좋은가] 민심 흉흉하면 사면횟수도 늘어

08/05(목) 10:58

사면(赦免)은 절대군주 시대에 군주만이 갖는 특권이었다. 왕실에 경사가 났을때 베푸는 시혜성 은총으로 시작됐으며 가뭄·홍수·지진등 자연재해로 민심이 흉흉할 때 군주가 자신의 부덕(不德)을 탓하며 실시하는 일종의 민심 수습책이었다.

우리의 사면의 역사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시작됐다. 당시 행정부가 제출한 최초의 법안이 바로 사면법이었다. 일제강점기간을 지나면서 심화한 반목과 불신을 떨쳐버리고 온 국민이 광복과 건국의 기쁨을 함께 누리자는 취지에서 그해 9월27일 살인 방화 강도 강간죄를 제외한 6,796명의 범법자를 풀어주는 대사면이 단행됐다. 이후 올해 2월 국민의 정부 출범 1주년을 기념한 특별 사면·복권조치에 이르기까지 51년간 83차례의 사면·감형·복권이 실시됐다. 횟수로 보면 가히 세계 신기록이 아닐수 없다.

역대 정권중 가장 빈번하게 사면권을 행사한 사람은 전두환 전대통령. 전 전대통령은 박정희 전대통령 사후 8년동안 무려 21차례에 걸쳐 사면을 실시했다. 다음이 박 전대통령으로 유신 이전까지 19번을 단행했다. 당시는 군사정권에 반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량 구속과 처벌이 반복되면서 그만큼 양심수 사면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사면의 횟수가 잦고 해당자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민심이 흉흉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역대 단일 사면중 최대 규모는 98년 3월13일 김대중대통령 취임기념 대사면 때로 일반사범을 포함해 모두 552만7,327명이 사면·복권의 혜택을 받았다.

근대사회 들어 대다수 국가들이 도입한 사면제도는 본래 이데올로기와 체제 갈등이 첨예했던 사회에서 사상과 이념의 차를 폭력이 아닌 관용과 대화로 풀어간다는 사회적 성숙성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런 의미의 사면은 단지 구색 맞추기 정도에 불과했다. 무자비한 탄압 뒤에 이어진 ‘폭정 은폐형’에서 ‘비리 봐주기’, ‘헌정 파괴형’에 이르기까지 초헌법으로 사면·복권이 남용됐다.

문제가 되고 있는 특별사면의 경우 크게 ‘잔형 집행면제’와 ‘형 선고실효’로 나눠진다. 잔형 집행면제는 가석방되거나 복역중인 피고인의 남은 형량 집행을 면제해주는 조치로 선거권이 회복돼 정당활동은 가능하지만 일정기간 공무담임권과 피선거권을 제한받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비리 사범들이 먼저 사면에 이어 곧바로 복권 조치가 따르는 것이 이런 이유다. 형선고실효는 집행유예로 석방됐거나 유예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사람에게 선고 자체를 없애주는 것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외에 징역이나 금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피고인을 주거지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풀어주는 가석방과 형량을 경감해주는 감형, 그리고 형선고로 정지 또는 상실된 자격을 회복시켜주는 복권 등이 있다.

지금까지 사면권이 정권의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에 따라 오용됨에 따라 학계와 사법계이서는 사면권 남용에 대한 제도적 규제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최근 재판을 진행중인 김현철씨가 사면을 염두에 둔 듯 대법원 재상고를 포기하자 서울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우리나라는 명절때마다 국왕이 선처를 베푸는 왕조국가가 아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학계에서도 “대통령이 실시하는 특별사면이 그때그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일관성없이 실시돼 사면 본질은 왜곡된 채 헌정 질서만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며 “하루 빨리 사면 남용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역대 주요 사면 일지

일자 인원(명) 취 지

48년9월27일 6,796 정부수립기념

60년10월1일 14,429 제2공화국수립기념

63년12월16일 62,014 박정희대통령취임

67년7월1일 1,476 제6대 대통령취임

71년7월1일 4,311 제7대 대통령취임

72년12월27일 6,220 유신헌법공포기념

78년12월27일 4,075 제9대 대통령취임

79년12월23일 592 제10대 대통령취임

80년9월1일 416 제11대 대통령취임

81년1월23일 12 김대중내란음모관련자

81년3월3일 3,239 전두환대통령취임

87년7월10일 2,325 6·29선언 기념

88년2월27일 6,375 노태우대통령취임

93년3월6일 41,886 김영삼대통령취임

97년12월23일 25 전두환·노태우사건

98년3월13일 5,527,327 김대중대통령취임

98년8월15일 7,007 건국50주년기념

99년2월25일 8,812 김대통령취임1주년

송영웅·주간한국부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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