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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불안하다] 최저가 '함정'에 빠진 소비자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물가가 불안해 질수록 재미를 보는 쪽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93년 신세계가 E마트를 출범시키면서 국내에 소개된 할인점 업체들이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계기로 공전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특히 할인점 업계의 성장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아래 사운을 건 ‘가격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할인점 업계는 IMF체제의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98년이후 급성장을 하고 있다. 93년 30억원의 매출에 그쳤던 E마트의 경우 99년에는 22개 점포에서 총 1조6,0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되고 있으며, 95년 매출액이 966억원이던 킴스클럽도 끊임없이 신규점을 개설한데 힘입어 6월말 현재 4,907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는 같은 기간중 백화점업계의 매출이 제자리 상태를 면치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팽창인 셈이다.

경쟁적 가격인하, 최고 30%까지 할인

할인점 업계의 폭발적 성장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유통업체와 비교할때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체인유통업체의 연합체인 ‘한국수퍼체인협회’가 주요 유통업체가 몰려있는 분당지역의 할인점, 슈퍼마켓의 가격을 비교한 결과 할인점의 물건값이 8%가량 싼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전문가들은 할인점 업계가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으로 업체의 사활을 건 ‘가격전쟁’을 들고 있다. 실제로 8월28일 막을 내린 할인점 업계의 ‘가격전쟁’은 제대로 된 자본주의의 경쟁이 소비자들에게는 얼마나 이익이 되는 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E마트가 기존 판매가보다 최고 40%까지 추가 할인하는 ‘E마트 대표상품 한국 초특가기획전’을 개시하고 킴스클럽과 한국까르푸등 국내외 할인점 업체들이 일제히 가격인하 대열에 가세하면서 시작된 가격경쟁으로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최고 30%이상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 할인점 업계도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8월26일까지 집계된 E마트의 매출액은 평소보다 18% 증가, 50억원의 추가 이익을 기록했다. 상반기 매출액 2위를 기록한 킴스클럽도 이번 행사 이틀만에 내점 고객수가 27% 늘어났으며, 매출액도 23% 증가했다고 밝혔다.

실체없는 시중가, 잣대없는 할인가

그러나 할인점의 가격대란으로 소비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즐거울 수만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할인점 가격전쟁에서 지적된 문제는 ‘시중가’ 논란. 시중가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지목된 백화점 업계에서는 “할인점에서 말하는 시중가로 판매하는 업체는 서울시내 전체를 뒤져봐도 한 군데도 없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업계에 따르면 가전제품의 경우 실제 판매가격은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대리점이나 백화점, 할인점등이 정할 수 있다. 결국 ‘시중에서 정해진 판매가’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더욱이 이번 할인점 가격전쟁의 무기로 선보인 ‘기획상품’은 기존제품과는 별도의 포장 디자인과 규격을 적용한 것으로, ‘시중가’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는 게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이와관련, K백화점 관계자는 “S할인점에서 시중가 75만원인 삼성 10㎏세탁기 SEW-KM107을 47만5,000원에 판매한다지만 우리 백화점에는 같은 모델이 없다”면서 “비슷한 모델로 삼성세탁기 DM107을 49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250g 메디안치약 3개입을 2,980원에 판매한다고 하지만 우리 백화점에서는 200g 4개입을 3,600원에 판매한다”면서 “단위가격으로 환산하면 100g당 10원 비싼 가격”이라고 전했다. 기획상품으로 제작된 250g 치약은 할인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품목이라는 것이다.

M유통 관계자도 “S유통의 초특가 공산품 50품목중 우리 업체가 취급하는 상품은 6품목 뿐”이라면서 “할인가의 비교기준이라는 시중가가 어떤 가격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또 “알루미늄 냄비세트는 전단에 가격의 기준이 되는 지름표시가 없어 정말 ‘국내 최저’초특가인지 알 수 없다”면서 “빙그레 매운콩라면 5개입의 경우 1,790원으로 아예 가격이 동일하다”고 밝혔다.

포장·규격 달라 비교에 애먹어

여기에다 할인점간의 ‘할인가’ 단순비교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E마트와의 중복상품에 대한 가격인하 행사를 마련했던 킴스클럽에서는 “중복되는 행사상품도 포장단위나 규격이 달라 가격 비교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E마트와 중복되는 상품을 어렵게 찾아낸 킴스클럽은 행사기간동안 이들 품목을 동일하게 또는 더 저렴하게 판매했다. 이에따라 E마트에서 47만5,000원에 판매하는 대우 10㎏세탁기 DWF 1038와 삼성 29인치TV 294DA는 킴스클럽에서 47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VTR SV-C533의 경우 E마트가 대량 구매를 통해 23만5,000원으로 납품가격을 낮춰놓은 반면,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킴스클럽에서는 25만8,000원에 판매할 수 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 할인점 가격대란은 ‘값싼 물건을 많이 구입한다’는 소비자의 알뜰 구매심리를 자극, 매출을 극대화한 전략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이른바 ‘시중가’로 매겨진 품목을 포장과 규격이 다른 할인가격 상품과 무조건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응당 가격할인의 수혜를 입어야 할 소비자가 이같은 내용을 꼼꼼하게 비교하지 않는다면, 가격대란의 패배자는 소비자 자신이 될 지도 모른다.

김지영·경제부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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