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불안하다] +279.3과-0.3의 차이는?

08/31(화) 14:41

‘279.2 대 -0.3’

얼핏 보면 줄거리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전위 예술작품의 제목같기도 하지만 이는 놀랍게도 일반 서민들의 경제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숫자이다. 279.2는 7월말 수해이후 한달만에 폭등해 버린 배추값의 인상률(7월말 1접에 3만8,500원이던 배추가 8월25일에는 14만6,000원으로 올랐다)이고, 마이너스 0.3이라는 숫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발표한 7월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물가(지수물가)와 가정주부나 일반 서민들이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피부물가(체감물가)의 괴리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물가가 사상 유례없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하는 바로 그 순간에 국민들은 사상 유례없이 비싼 배추를 사먹어야 했다.

실제로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이 8월25일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주요 농산물 가격동향’에 따르면 수해이후 벌어지고 있는 농산물 가격의 폭등은 가히 서민의 식탁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무(1접·4만8,000원→5만4,000원), 파(1㎏·400원→3,500원), 풋고추(10㎏·5,000원→1만8,000원), 쇠고기(1㎏·9,506원→1만566원) 등 서민들의 주요 먹거리인 신선식품의 가격이 11~260%까지 급등했다.

반면 8월23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중 소비자물가와 생산물가 동향자료는 그야말로 태평성대의 수치이다. 소비자물가가 6월에 비해 0.3%하락한 것은 물론이고 집세(-4.5%), 개인서비스(-0.9%), 농축산물(4.6%) 등이 모두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수해에 따른 ‘일시적 현상’ 주장

그렇다면 피부물가와 지수물가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차이는 왜 발생하는 걸까. 그리고 최근의 농산물 가격폭등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장대로 물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정부의 물가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 국민생활국은 “물가에 관한한 국민들은 안심해도 좋다”고 장담한다. 우선 요즘처럼 피부물가와 지수물가의 괴리가 급격히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수해에 따른 농산물 등 일부 품목의 폭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폭우 이전 농민들이 배추를 갈아엎기까지 할 정도로 채소류의 가격이 워낙 쌌던 탓에 폭우에 따른 과채류의 가격 상승이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느껴지고 있을 뿐이라는

국민생활국 이용희 국장은 “홍수가 난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우리나라의 여름날씨 특성상 매년 7~8월이면 작황이 나빠진 농산물 가격이 급등한다”며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물가는 연 2%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예 “체감물가는 심리적인 요인에 따라 좌우되므로 피부물가와 지수물가가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재경부는 피부물가와 지수물가의 차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항의성 문의가 쇄도해 설명료까지 준비하고 있다.

국민들 “말도 안되는 탁상수치”

재경부는 피부물가와 지수물가의 차이를 5가지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날씨론’. 즉 물가오름세를 느끼는 감각은 추운 겨울날 바깥 온도를 느끼는 체감온도와 같다는 기상대에서 영하 5도라고 발표해도 내의를 두툼하게 껴입고 코트를 걸친 사람은 영하 2도쯤으로, 내의를 입지 않은 사람은 영하 8도쯤으로 느끼는 등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논리이다.

예를 들어 수업료가 오르면 학생이 많은 가계는 가계지출에 큰 부담을 받으나 학생이 없는 가계에는 영향이 없으며, 목욕료가 오르면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가계는 욕탕비 지출이 늘어나지만 아파트에 사는 가정은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두번째로는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른 지출증가를 물가상승으로 혼돈하는 경우이다. 소형컬러 TV에서 대형으로 바꾼다던가, 대용량 전기세탁기나 냉장고를 사용함으로써 전기요금이 높아진다든가,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한다든가, 외식을 할 경우 소비지출이 자연히 늘어나게 되는데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은 이를 물가상승때문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세번째 논리는 ‘숫자의 착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의 가격이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랐다가 다시 5,000원에서 4,000원으로 떨어진 경우를 가정하자. 이 경우 오를 때는 25%가 오른 것이 되지만, 가격이 내릴 때는 20%만 하락한 것이 된다. 요컨대 똑같이 1,000원이 오르고 내렸는데도 숫자로 나타나는 것은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진다는

네번째로 ‘자기중심적 판단’때문에 괴리가 느껴진다는 것이 재경부의 주장이다. 지수물가는 가계지출과 관련도가 높은 상품만 조사하며 조사품목도 가중치의 크기만큼 전체물가에 영향을 미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자기와 관련있는 상품만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현행 소비자 물가지수를 계산할때 쌀가격의 가중치는 27.6%, 콩나물의 가중치는 1.1%로 쌀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3%나 오른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 콩나물이 10%오르면 0.01%밖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되는데 이는 가정주부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일’에 불과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요인은 ‘투기의 함정’이다. 주택, 아파트, 땅 등 부동산 가격은 일상적으로 소비자의 가계지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재산소득에 변동을 가져오므로 물가지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등으로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아지고, 계층간에 소득격차가 커지면 일반인들은 자연스레 피부물가를 높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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