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암울했던 시절 머리 하나로, 박치기 하나로 5대양 6대주를 주름잡았던 위대한 선수입니다.” 링 아나운서의 소개가 시작되자 돌연 우뢰같은 박수갈채가 장내를 가득 메운다. 박박머리에 떡 벌어진 어깨가 언뜻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왕년의 ‘박치기 왕’ 김일이다.

8월28일 오후 3시 인천 실내체육관. 3,000명은 돼 보이는 관객들은 메인 이벤트인 세계프로레슬링연맹(GWF) 챔피언 타이틀 매치 보다는 오히려 김일의 건재함에 더 흥분하고 있었다. 70대로 보이는 한 노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프로레슬링 시합 못본지가 20년이 넘었어. 요즘은 TV에서도 안하니 통 볼 수가 있어야지. 김일이 보니까 젊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야.”

살아있는 신화 김일, 향수에 젖은 관객들

김일선수(95년 은퇴했지만 여전히 ‘선수’로 불리고 있다)가 마이크를 잡았다. “레슬링 팬 여러분 잊지 않고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레슬링을 중흥시키는 것이 저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단체 초등학생,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아저씨 관람객들이 하나가 돼 “김일! 김일!”을 연호한다.

이날 인천 실내체육관에서는 타이틀 매치 등 8경기가 열렸다. 김일 선수는 비록 몸이 불편해 병원신세를 지고 있지만 매달 한두차례 경기를 관람한다.

링 아나운서의 소리가 떨어지면서 요란한 음악과 함께 선수가 입장한다. 거구들이 허공에서 내려 꽂힐 때 마다 링 바닥의 진동음이 귀를 때린다. 외국선수들과의 태그매치. 외국선수가 반칙을 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우-, 우-”야유가 나온다. 링 로프로 올라가 뛰어 내릴라 치면 관중들은 또다시 링 바닥에 넘어져 있는 한국선수에게 “아-”하며 경고음을 발한다.

초등학생인 아들 딸을 데리고 나온 한 부부는 “우리가 어릴 때는 레슬링과 복싱이 유일한 프로 스포츠였다. 마을에 한 대밖에 없는 TV앞에 몰려 앉아 김일 선수의 박치기를 보곤 했다. 애들한테 옛날 얘기도 해 줄겸 같이 왔다”고 말했다. 독일의 한 방송사팀도 찾아와 취재에 여념이 없다.

여자선수들의 앙칼진 기합이 귀를 찌른다. 스타TV에서 보는 외국선수들의 경기 모습에 조금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심판의 날렵한 동작과 제스처가 경기에 깨소금을 뿌린다. 한 선수가 매트위로 양어깨를 제압당하자 물찬 제비처럼 날아 엎드려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며 카운터를 한다.

TV중계 외면, 관중은 여전히 성황

4경기 심판를 본 뒤 라커룸에서 땀을 식히던 국제심판위원 안성기(42)씨는 이렇게 말한다. “프로야구 출범 후 매체의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지만 관중수는 옛날과 똑 같습니다. 김일 선수는 우리에게 신화적인 존재입니다. 살아 계신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에게 엄청난 힘이 됩니다.” 10년전 심판으로 전향했다는 안씨는 요즘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심판을 보려면 링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운동 않하면 못 배겨요. 선수들 틈에서 다치기 십상이죠.”

메인 게임. GWF 챔피언인 한국의 이왕표 선수와 미국의 제이슨 더 테그빌이 맞붙었다. 초반은 이 선수의 고전이다. 마스크를 쓴 테그빌 선수가 박치기를 해대자 김일 선수가 말한다. “저 선수가 쓴 마스크는 쇠로 만든 겁니다. 위험해요.” 아니나 다를까, 연속 박치기에 이 선수의 이마가 유혈로 낭자해진다. 관중들도 같이 흥분한다. 꼬마팬들은 아예 자리를 박차고 뛰어 오른다.

다시 반전. 이 선수의 매서운 가라데 촙 공격에 테그빌이 기우뚱 거린다. 이 선수의 공중 발차기가 연속으로 들어가자 테그빌이 링바닥으로 허물어 진다. 이 선수에 깔린 테그빌이 발버둥을 치지만 심판의 카운터는 에누리가 없다. “원…투…쓰리”손이 번쩍 치켜 들리면서 이왕표의 허리에는 다시 챔피언 밸트가 채워진다. 사인받을 종이를 든채 떼로 몰려드는 꼬마팬들에 둘러싸여 이 선수는 씩씩거리며 라커룸으로 사라졌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배연해·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