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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돕기'에서 '살리기' 그리고 '민주화'

세기 마지막의 광복절은 뜻이 깊었다. 서울대에서 벌어진 한총련의 ‘북으로 가자’는 반응이 적었다. 판문각의 ‘북으로 오라’는 호응이 없었다. 임진각 앞에 얼음벽 곡괭이로 깨기는 쇼 였다.

그러나 이런 ‘반응’, ‘호응’, ‘쇼’에 앞서거나 뒷서서 한때 극렬한 좌파였던, 자생적 주체주의자였던 이들의 전신은 큰 의미를 이번 광복절에 던져 주었다.

그 첫번째가 필자의 대학동기인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59학번 김정강씨(‘한국논단’ 편집위원)의 전향의 이유를 16일자 조선일보에서 알게 된 것이다.

김정강씨는 그때의 문리대에서는 꽤나 이론이 밝은 막시스트였고 ‘불꽃회’, ‘민비연’(민족주의 비교연구회)의 핵심이었다. 그런 그는 64년 학생데모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됐다가 66년 출감했다. 그리고 14년간 노동현장에 위장 취업했다. 그런 그는 80년대 정치의 봄이 오기까지 혼자 사는듯 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만난 숱한 미전향 간첩들로부터 북한의 실상을 알고 80년에 친북사회주의 노선과 결별했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를 “미제의 번견(番犬)”이라 했고 “조국의 북반부에서는 김일성동지를 수령으로 하는 위대한 조선공산당의 지휘하에 사회주의 조국건설에 성공하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광복 54주년을 맞아 그는 말한다. “나는 역사에 죄를 지은 사람이다. 세상을 마르크스 이론에 끼워 맞춰 도식화 하는데만 골몰한 나머지 현실감을 잃었었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물질적 토대를 만드는데 성공하고도 이를 ‘부정하는 좌익’과의 싸움에는 패배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 성공의 이념이 꼭 패배한 것 같지는 않다.

한총련에서 탈퇴해 전북지역 총학생회협의회를 구성한 양준화씨(26·전북대 농화학과 4년)는 광복절날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도외시한 재야단체의 통일논의를 비판했다. 그는 “북한 정권의 민주화없이 과연 통일이 가능 하겠느냐. 사실에 근거한 인식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문제제기만이 통일을 이뤄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고 했다.

‘전북총협’은 8월 10일 서울대 학생회관 부근 벽에 “주체사상은 전대미문의 1인 독재 이데올로기다. 북한 민주화야말로 동포의 생명을 구하기위한 유일한 길이다”는 주장을 붙였다. 어느 면에서 한총련내의 과격파에 속했던 전북·전남의 대학들은 92년부터 비폭력적 운동이 더 효과적이라는 방향에 선다. 그러나 96년 한총련의 연세대 점거는 이들을 이탈케 했다.

때마침 ‘좋은 벗들’의 이사장 법륜스님이 중국 연변을 돌아보고 탈북자를 통해 알아본 북한기근의 실태는 이들 좌파적 학생들에 북한의 현실에 의문을 던져주었다.

8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북한바로알기운동은 그때까지는 북한옹호론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주체사상에 대해 좀더 깊이있게 연구에 나서자 북한정권과 주체사상은 별개다는 논리가 제기됐고 황장엽 주체사상 담당비서의 망명은 결정적 계기를 주었다.

주체사상의 핵심은 수령론이었고 ‘당과수령의 무오류성’이며 “수령의 모든 판단은 최선이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남한의 변혁운동도 북의 수령과 노동당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이들 운동권 좌파에게는 수긍할 수 없는 독단론이었다.

북한의 현실이 보여준 기근, 망명 북한정치범들이 전하는 북한 정치수용소의 인권 불모현상은 ‘북한바로알기’를 ‘북한동포돕기’운동으로 변모시켰다. 또 ‘돕기’는 김정일정권돕기보다 북한의 동포돕기, 그보다 ‘북한동포 살리기’운동으로 변해야만 했다.

이런 ‘살리기’는 또한번 이번 광복절을 맞아 ‘북한 민주화’로 방향을 잡았다. 북한의 모든 것을 가진 북한노동당 정권이 민주화하지 않고서는 큰물피해는 영원히 북한에 계속되기 때문이다.

박용배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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