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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너무나 인간적인’

어느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김대중대통령은 언론이 자신의 정치를 올바르게 보도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쪽에 있다.

8월 19일 김 대통령 부처는 새로 한국일보 사장겸 발행인이 된 장명수씨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가졌다. “우리 언론들이 재벌개혁을 강력히 촉구하고도 막상 정부가 개혁을 하려고 하니 ‘재벌해체’로 몰아 비판하는 등 일관성을 잃고있다. 언론이 시비를 가려 비판하되 사안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의 청와대 출입, 이영성 기자는 이날 ‘기자의 눈’에서 김태동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재벌비호세력 청산론’, 자문교수인 황태연교수의 ‘반 재벌론’에 대한 소감을 썼다. 이기자는 대통령의 경축사 참여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두 교수에게 주문 하고있다.

“아무리 옳은 소신이라도 밀고 갈 때가 있고 담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두교수가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개혁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지금은 자신들의 생각을 담고 있을 때다”고 했다.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은 “일부 언론이 스스로 재벌해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가 정부가 이를 부인하자 오히려 정부가 말을 바꾸었다거나 혼선을 빚는 것으로 비난했다”며 일부언론사의 언론중재위 중재신청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기의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 김태동 교수의 세미나 논문에 ‘재벌해체’나 ‘혁명적 인적교체’등의 발언은 없었다. 다만 어느 신문의 사설과 해설기사에 ‘재벌해체’라는 제목이 나와 있을 뿐이다.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한 두마디로 결론지을수는 없다. 다만 공정보도의 잣대를 어느 것으로 사용하는가는 세계에서 대통령제를 가장 먼저 실시하고 오래 하고있는 미국의 잣대를 비교해 볼 수 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지난 3월 미국에서 나온 전 백악관 특별고문 조지 스테파노플러스의 회고록 ‘너무나 인간적인’(최규선옮김. 생각의 나무 출판) 책이다. 이 책에는 클린턴대통령과 그의 부인, 그를 선거에서 도운 보좌관들의 애(愛)와 증(憎)이 섞인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무엇보다 이제는 ‘거짓말의 고수’, ‘무결한 용어’의 선택으로 ‘구설수’를 ‘연설’로 막는 클린턴이 얼마나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히 고르는가를 보여주는 여러 예들이 있다.

1994년 4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닉슨은 사망했다. 닉슨의 캄보디아 폭격과 징병에 반대했던 클린턴은 그러나 닉슨의 죽음을 만나 현직 대통령으로 송덕문으로 조사를 끝내고 싶었다.

클린턴이 초안을 잡은 조사를 대변인 노릇을 했던 스테파노플러스는 이를 훑어보았다. 모두 괜찮았지만 한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리처드 닉슨대통령의 일생에서 한 부분만으로 그를 판단하던 날이 드디어 ‘끝나게 되었다’”는 문장이었다.

클린턴에게는 수사적이지만 닉슨을 용서하는 관대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진보, 자유주의자들은 닉슨을 용서하는 클린턴의 발언이 주제를 넘는 발언으로 생각한다고 조지는 생각했다. 조지는 클린턴이 그를 반대하는 우익을 무마하려는 몸짓으로 그를 지지했던 진보, 자유주의자는 본다고 분석했다.

클린턴을 혐오하는 보수주의자들을 닉슨의 용서를 클린턴 개인의 용서를 바라는 얄팍한 술수라고 의심할 수도 있었다.

‘여론조작박사, 백악관의 3인자’로 불렸던 조지는 역시 주군(主君)을 아끼는 충실한 인간적인 보좌관이었다. 그는 “리처드 닉슨을 그의 생의 한부분만으로 판단하는 날이 이제는 ‘끝났으면 합니다’”로 문장을 바꾸자고 했다.

클린턴은 즉시 무슨 말인지를 알아차렸다. 대통령의 직설적인 표현에서 개인적인 소망으로 바꾸면 좌우간의 말싸움은 불러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미국국민이, 특히 좌와 우가, 또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닉슨의 일생의 한부분을 판단하는 날이 ‘끝났다’와 ‘끝났으면 합니다’로 바뀐 차이를 알 것인가? ‘끝났다’고 했을 때는 비판이 있었을 것이다. ‘아’와 ‘어’는 차이가 있다. 대통령을 보좌·자문하는 이들은 이 차이를 캐는 언론에 긍정만 바라지말고 신중해야 한다. 인간적이어야 한다.

박용배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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