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재강타, 여.야 정면충돌

08/05(목) 12:45

정가에 세풍(稅風)이 다시 몰아쳤다.

검찰에서 재시동을 걸은 이번 세풍은 종전과는 충격의 파고가 다르다. 서상목의원 뿐 아니라 이회창 한나라당총재의 핵심 측근들이 리스트에 올라있다.

세풍의 본류인 대선자금 문제는 검찰 수사 대상에서 외관상 빠졌지만 대신 측근들의 세풍 자금 은닉여부가 도마위에 올라있다. 중추신경을 건들면 자각증상을 느낄 여유조차 없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면 통증의 체감도가 훨씬 심한 법. 한나라당은 극도의 위기감에 휩싸여 강력하게 저항하면서도 여권 핵심부와 검찰의 동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드러난 사건인 세풍사건이 정계개편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서 재점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여권의 주장처럼 검찰의 독자수사에 따른 당연한 진실규명일까, 아니면 ‘이회창 죽이기’차원에서 고도의 정치적 복선을 깔고 진행된 정권 상층부의 기획 사정일까.

한나라당 “DJ 자금도 공개” 맞불

7월30일 대전에서 휴가중이던 이회창총재는 오후1시쯤 이원창 특보로 부터 세풍자금 10억여원을 측근 10여명이 보관하고 있다는 모 신문의 보도내용을 보고 받고 “여권이 근거없는 정치공세를 또 편다”며 강력대응을 지시했다. 휴가를 중단하고 올라오려 했지만 공연히 오해만 키울까봐 휴가는 예정대로 마쳤다. 그러나 이총재의 ‘리모콘 지시’로 한나라당의 저항은 시간이 갈수록 강경해졌다. 안택수대변인은 즉각 이번 사태를 ‘한나라당 음해·파괴공작’으로 규정하고 “사정당국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고의로 언론에 흘렸다”고 주장했다. 그 배경으로 ▲신당창당 및 정계개편을 위한 한나라당의 분열책 ▲세풍수사에서 이총재의 직접 관련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데 따른 누명씌우기 ▲정권 도덕성 비판에 대한 물타기 ▲특검제 및 국정조사 맞불작전 등의 분석을 내놓았다. 급기야 1일에는 김대중대통령의 비자금과 측근들의 예금계좌를 공개해 DJ대선자금도 공개하자고 맞불을 놓았다.

세풍자금을 배분받아 은닉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거론된 의원들은 한결같이 부인하고 있다. “대선당시 수표로 2억원을 지원받아 친인척에게 부탁 현금으로 바꿔 썼다. 이들이 아직도 이 수표를 예금해 놓고 있는 것을 내가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뒤집어 씌우고 있다”(신경식 사무총장),“4억원을 유용했다고 거론됐으나 그런 일이 없다” (서상목의원), 등등.

그러나 한나라당은 대여 강경투쟁 방침을 거듭 밝히면서도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당내 강경파들은 206회 임시국회를 거부하고 장외투쟁에 나서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뒷심은 없어 보인다. 당장 한나라당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특별검사제 도입협상과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등이 예정돼 있어 임시국회를 거부할 명분도, 실익도 없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그간 목소리를 낮춰온 당내 비주류들은 이총재에게 화살을 겨누며 해명을 요구, 적전분열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들은 “부인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 당이 납득하도록 적극 해명하라”며 이총재를 몰아붙이고 있다.

여권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강경

국민회의는 임시국회에 미칠 파장을 의식,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선에서 공개 언급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론 “이번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칼을 갈고 있다. 여권의 강경 기조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손에 쥔 이상 야당에 밀릴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의 소산이다. 국민회의 핵심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어떤 이유로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서 “한나라당도 반발의 명분이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정면돌파 의중을 내비쳤다. 강경 기류 저변에서 눈여겨 볼 점은 세풍잔금의 용처와 관련자들의 도덕성 문제. 여권이 뭔가 단단히 한나라당의 약점을 잡은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세풍잔금 관련자가 3, 4명이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내용을 알아보니 자금을 유용한 사람들의 행태가 구여권의 행태를 답습하듯 정도를 넘어서 씁쓸했다”고 말했다. 국민회의 관계자는 “측근들이 이총재에게 돈을 받았다면 대선자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제3자라면 차원이 다른 문제”라면서 “조만간 계좌에 남아있는 돈이 누구에게서 받은 돈인지가 밝혀질 것”이라고 밝혀 세풍잔금 사건에 ‘+α’가 있음을 시사했다.

세풍 재점화 정치적 복선은

아직은 세풍잔금 사건이 왜 재점화된 것인지 정확한 배경을 속단할 수 는 없다. 그러나 그간 세풍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면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풍잔금 파문은 사실 검찰이 한나라당 김태원 재정국장을 7월12일 자택에서 검거하면서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검찰은 오랜 탐문수사와 추적끝에 올린 성과라면서 최근의 정국상황과 아무 관련이 없는 ‘우연한’ 검거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연의 상황은 검거까지에 국한된 것 같다. 한달전쯤만해도 검찰은 서상목의원에게 표적을 맞췄을 뿐 다른 의원들은 일단 사정권 밖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김국장의 검거전까지는 서의원의 계좌추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세청에서 모금한 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추적은 큰 진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국장의 검거후 검찰수사가 급변했다는 결론이다. 이와관련 사정포스트에 있는 관계자의 말은 되씹어 볼만하다. 그는 “김국장에 대한 조사는 잉여자금이 얼마나 있는냐, 또 그 돈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가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또 “만약 잉여자금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한나라당은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선거자금이 남았다면 당에서 관리해야지 개인이 딴 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단계에서 여권은 사정강화를 통한 기강확립과 개혁입법을 통한 민심잡기,정계개편을 통한 정국운영 주도권 확보 등 3개의 축을 중심으로 내년 선거를 대비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3축이 경쟁이라도 하듯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면서 한나라당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더라도 세풍잔금 파문은 야당의 가뜩이나 둔한 움직임에 족쇄를 채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여권은 고급옷 사건에 이어 잇따라 터진 검찰의 파업유도사건, 임창열 경기도지사 수뢰사건 등으로 도덕성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여권은 파업유도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의 독자수사와 임지사 부부의 구속이라는 고강도 처방을 내서 이를 수습했다. 이제는 야당의 차례가 온 것이라는 설이 정가에 파다하다. 그 첫 사례가 세풍잔금 수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된 사정이든 아니든 세풍잔금수사는 야권의 극단적 저항을 불러 자칫 정국파탄을 야기할 만큼 폭발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안이다.

여권은 그간 세풍카드로 이회창총재와 한나라당을 궁지에 몰아넣지만 반대로 이총재는 외환(外患)을 기화로 입지를 다져왔다. 과연 여권의 위험한 도박이 성공할 지, 이총재가 이번에도 전화위복의 기회로 반전시킬지 주목된다.

이태희·정치부 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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