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권력'으로 흐른다

08/10(화) 21:00

‘여부야빈’‘돈걱정없이 정치하려면 여당의원을 해라. 그렇지 않다면 돈줄이 든든한 노른자리 상임위라도 맡든지’

선관위가 이달 초 공개한 상반기중 중앙당과 국회의원의 후원금품 모금실적을 보면 정치현실에 민감한 돈의 흐름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이 기간 후원회 등 합법적으로 정치자금(후원금+모집금품)을 모은 의원은 후원회를 둔 262명중 151명으로 모두 101억5,800만원을 거뒀다. 1인당 평균 6,700만원이다.

정당, 상임위, 선수(選數) 등 경력에 따라 차이가 있긴하지만 가장 확실한 잣대는 이른바 여당프리미엄이었다. 국민회의는 55명이 48억9,000여만원을 거둬 1인당 평균 8,300만원씩 모았다. 자민련은 24명이 14억5,600만원을 거둬 평균 6,000만원이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71명이 38억여원을 모아 1인당 평균모금액이 5,300만원에 그쳤다. 물론 여야가 달랐던 97년말까지는 여당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금실적이 국민회의나 자민련보다 압도적으로 좋았다.

뒤바뀐 수혜자, 여당프리미엄 여전

권력이동을 그대로 좇는 ‘금력(金力)이동’은 모금순위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났다. 정권교체 이전이던 97년만 해도 후원금상위 30명중 18명이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소속의원이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각각 10명, 1명에 그쳤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돼 올 상반기의 경우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각각 17명, 4명을, 한나라당이 9명을 차지했다. 여당프리미엄은 여전했지만 그 수혜자는 정권교체와 함께 바뀐 셈이다.

정권교체 직후인 지난해는 올해보다 더 심해 상위 30명중 한나라당 의원은 3억7,968만원을 모은 김덕룡의원(13위)과 2억5,100만원을 거둔 노기태의원(30위) 등 단 2명뿐이었다. 이에 비해 국민회의는 30위안에 무려 24명이 포함됐다.

여야간 후원금 격차는 중앙당 모금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민회의는 지난 5월20일 대규모 중앙당 후원회를 열어 154억여원을 모금했다. 공동여당인 자민련도 이에앞서 4월 후원회를 통해 40억원 이상을 거뒀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중앙당 후원회를 열 생각도 못한 채 예금계좌 등으로 모은 8,100만원의 후원금에 만족해야했다.

의원별 후원금성적표는 더욱 심한 편차를 보여준다.

예상대로 재경위·산업자원위 등 경제관련 상임위 소속의원이나 여당실세·당직자들이 손쉽게 후원금을 모았다. 본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자리덕’이나 ‘이름값’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실제 모금액 상위 20명중 재경위와 산업자원위 소속의원이 각각 8명이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 영향인지 몇년전과 달리 건설교통위 소속의원들이 확 준 것은 특징적이다.

재계와의 ‘연’이 큰 돈줄

상반기중 최고액을 모은 국민회의 장재식의원만 해도 14대 이후 7년간 재경위에서 활동해왔다. 국세청 차장과 주택은행장을 거쳐 재계에 지인이 많은데다 여권내 경제통이란 이름값인지 4월초 단 한 번의 후원회로 5억2,450만원을 거뒀다. 2위를 차지한 한나라당 이상득의원은 얼마전까지 재경위원장을 지낸 재경위소속. ㈜코오롱 사장출신으로 한나라당이 여당이던 때 당정책위 의장까지 역임하면서 사귀어둔 경제계 인맥이 정권교체이후에도 힘을 발휘한 케이스다. 2억5,200만원을 모금한 국민회의 박상규의원은 대통령 직속 중소기업 특위위원장(장관급)이던 4월29일 후원회를 열었는데 기업들의 고액봉투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이들이 각각 중진으로 여야의 대표적인 경제통이라면 3위를 차지한 국민회의 김민석의원은 35세의 초선의원이다. 여당의 대표적인 30대주자란 점을 고려해도 짧은 의정활동을 대부분을 재경위와 금감위를 담당하는 정무위 등 실세상임위에서 보내며 맺은 재계와의 ‘연’이 큰 돈줄이 됐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노른자리 상임위를 차지한 경제통과 함께 여야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실세의원들도 비교적 쉽게 후원금을 모았다. 김대중대통령의 장남 김홍일의원은 좌고우면하다 6월23일 후원회를 열었는데 1억7,200만원을 모았다고 신고했다. 당시 후원회에는 700명 이상이 몰려 ‘보이지 않는 힘’을 실감케했는데 김의원 스스로 “법인한도액인 5,000만원을 내겠다는 기업인도 있었으나 거절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박정희대통령의 장녀로 산자위에 소속된 한나라당 박근혜의원도 1억9,740만원을 모아 눈길을 끌었다.

“후원금 순위는 정치성적표”주장도

국민회의 한화갑사무총장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후원회를 열지 않았음에도 2억원 이상이 후원회에 들어왔다고 선관위에 신고, 동교동 실세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국민회의 이영일 대변인은 1억9,400만원을 신고했는데 대변인 취임직후인 6월16일 출판기념회를 겸한 후원회가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고액순위에 오른 대다수 의원들은 선관위가 후원금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 마땅찮은 표정이다. 2억여원을 거둔 한 중진의원은 “공개적인 후원금모금을 통해 깨끗한 정치가 실현되고 있다는 실례”라며“후원금순위는 정치를 얼마나 잘했냐는 성적표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힘과 양지에 몰리는 후원금을 통해 새삼 현실정치의 매서움을 깨닫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동국·정치부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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