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 '딴죽'에 꼬이는 대우해결

08/05(목) 07:41

대우사태가 돌연 꼬이고 있다.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대우에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정부발표에 따라 급속히 안정을 찾아가던 대우사태가 외국계 은행들의 반발과 국내 은행들의 대우지원에 대해 미국이 통상문제를 제기하는 등 예상치 않던 돌발변수들이 터지면서 또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대우사태를 다시 한번 미로에 빠뜨리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76억8,000만달러(약 9조2,160억원)를 빌려준 외국계 은행들의 생떼에 가까운 반발이다. 씨티, 체이스맨해튼 등 외국계 은행들은 7월28일 오후 ‘주한 외국인은행협회(회장 켈러허 BOA지점장)’ 월례회의를 갖고 대우그룹 계열사에 대한 만기연장의 조건으로 대우그룹의 추가담보나 정부 혹은 국내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하고 나섰다.

그동안 외국 채권단은 대우와 개별적으로 여신에 대한 만기협상을 벌여왔는데 이들이 태도를 바꿔 집단적인 의사를 표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월례회의에 참석했던 한 외국은행 관계자는 “대우그룹의 비중을 감안할 때 대우관련 여신의 만기연장은 가능하지만 대우측이 충분한 담보를 제공하거나 한국계 은행의 지급보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채권단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해외부채, 정부가 해결” 조직적 반기

외국은행들의 반발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정부에 서한을 보내 대우사태 초기에 이헌재금융감독위원장이 ‘대우가 외국 현지법인을 통해 차입한 부채는 대우 스스로 현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발언한 진의를 묻고 정부가 해외부채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그동안 숨을 죽이던 외국은행들이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당사자인 대우그룹은 외국은행들의 반발에 크게 당황해 하고 있다. 모두 60조원에 육박하는 대우그룹의 부채중 외국은행(9조2,16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규모상으로는 6분의1에도 못미치지만 영향력은 그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대우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은 금융구조조정을 통해 사실상 정부가 대주주인 국영은행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됐다”며 “따라서 대우사태 처리과정에서 정부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외국은행뿐인데 이들이 반발할 경우 대우사태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감위 김석동 대우대책반 총괄기획반장도 외국은행의 반발과 관련, “대우는 지금까지 해외부채의 만기가 돌아오면 일부는 상환하고 나머지는 가산금리를 붙여 연장하는 식으로 대응해 왔으나 최근들어 해외 금융기관의 대출금 상환요구가 거세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 금융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해외부문을 도외시한 정부의 성급한 사태수습이 뜻밖의 반발을 일으켰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국 정부의 이중적 태도가 외국은행들을 화나게 만들었다(The government has angered foreign banks…)”고 꼬집었다. 파이낸셜 타임은 29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 정부는 한편으로는 ‘대우의 해외부채를 정부가 책임질 수 없다’고 하면서도 또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은행들은 한국 정부의 대우처리에 동의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그들을 화나게 했다”고 보도했다. 요컨대 외국은행들의 반발은 실제로 채권을 연장해주지 않겠다는 것보다는 대우사태 처리과정에서 자신들을 배제한 한국 정부에 대한 일종의 실력행사라는 것이다.

정부의 이중적 태도, 반발 불러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도 “대우그룹에 채권을 갖고 있는 외국계 은행이 한국정부가 개입한 대우그룹 처리과정에서 소외된데 불만을 갖고 있으며 대우채권의 만기연장 요구에 대해서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외국계은행들이 대우처리에 어떻게 대응할지 분명치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대우채권의 만기연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고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할 경우 안정기조를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금융센터 어윤대소장도 같은 입장이다. 어소장은 “외국에서는 대우사태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라고 전제한뒤 “대우가 부실기업인 것을 알면서도 돈을 빌려준 외국 채권기관에 대해 정부나 한국 금융기관의 새롭게 지급보증을 해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외국은행의 반발과 함께 통상문제도 대우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 무역대표부 관계자는 “한국정부가 나서 대우의 자금난을 해결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보조금 지급행위”라고 경고했다. 파이낸셜 타임즈 역시 “미국은 무역부문에서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철강, 반도체, 자동차 등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대우사태의 통상문제 비화가능성을 우려했다.

김우중회장이 ‘세계경영’을 내세웠던 것 만큼이나 대우사태의 해결도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chcho@hk.co.kr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뜻이다. 대우그룹이 퇴출위기에 몰리면서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은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구조조정때문에 아끼던 측근들이 떠나고 씀씀이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검소해졌다.

대우그룹에 따르면 김회장은 대우사태 이후 그전에는 좀처럼 찾지않던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김회장은 7월30일 대우센터 지하 간부식당인 피치가든에서 김태구 대우자동차사장과 함께 1,600원짜리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김회장은 이전까지만해도 외부 행사가 없을 때는 주로 힐튼호텔에서 식사를 해왔다.

대우 관계자는 “김회장이 힐튼호텔 해외매각 이후 2~3차례 피치가든을 이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회장의 식사장면을 본 대우의 한 직원은 “김회장이 최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 사장단 회의를 연데 이어 남의 소유가 된 호텔의 비싼 밥을 마다하고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것을 보니 위기극복을 위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우그룹 주변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보좌역으로 김회장을 보필해온 서재경 대우증권부사장이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떠난 것도 김회장에게는 큰 변화라고 밝히고 있다. 서부사장은 신문기자 출신으로 77년 대우에 들어와 그룹 비서실, ㈜대우에 근무하면서 김회장을 측근에서 보좌해왔으며 지난해부터 전경련에 파견돼 전경련과 대우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서부사장은 특히 지난해 종합상사맨의 애환과 한국경제의 현실을 다룬 ‘시장은 넓고 팔 물건은 없다’라는 책을 썼으며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 이후에는 한반도 정세를 다룬 ‘한반도 운명에 관한 보고서’를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대우는 서부사장이 개인적인 연구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사표를 낸 것으로 안다고 밝혔으나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대우 사장들이 대거 자리를 떠난 상황에서 회사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떠난 것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안팎으로 김우중회장에게는 99년 여름이 추운 여름임에 틀림없다.

조철환 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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