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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채권단, 왜 꼬리내렸나

‘결혼식과 금융제재…’

삼성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에게 8월10일은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이날 낮 12시 호텔신라 다이너스티홀에서 장녀 부진(30)씨가 삼성물산 도쿄 주재원인 임우재(31)씨와 결혼식을 올리는 바로 그 순간 한빛은행 등 삼성그룹 채권단은 이 회장에 대해 사실상 ‘실패한 경영자’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빛, 외환, 산업은행과 서울보증보험 등 삼성자동차 채권단 운영위원회 소속 5개 금융기관은 10일 삼성자동차에 대한 추가손실 보전에 대해 확약을 하지 않고 있는 삼성자동차에 대해 1개월동안 신규여신을 중단하는 등 금융제재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채권단은 또 금융제재와는 별도로 이 회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로 하고 소송의 제기시기 및 절차는 삼성계열 주요 채권단 협의회에 위임하기로 했다. 채권단은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로 인해 삼성계열사들이 총 1조9,041억원의 손실을 입어 그룹 전체 재무구조를 악화시킨 행위는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위반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삼성 굴복’ 보다는 다른 이유 있는 듯

문민정부 시절 ‘경제는 2류, 정치는 3류’라는 직언을 서슴지 않으며 ‘초일류 삼성’을 주장할만큼 자부심이 강했던 이 회장으로서는 애지중지하는 큰 딸의 결혼식날 벌어진 채권단의 압박은 뼈아픈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삼성불패’의 신화가 다시 한번 깨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삼성에 대해 서슬퍼렇던 정부와 채권단의 의지는 불과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잘못된 투자(삼성자동차)에 대한 경영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채권단이 갑자기 다른 말을 내놓기 시작했다. 금융제재를 결정한지 불과 3일만에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삼성이 내일(14일) 오전 타협안을 제출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타협안에 대해 검토하고 삼성과 협상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융제재 결의를 위한 채권단 협의회가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협상을 앞두고 채권단은 “삼성이 2조8,000억원을 전액 책임지되 이에 대해 확약서까지 받을 필요까지 있겠느냐”는 이야기까지 흘렸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삼성 역시 “추가 손실보전을 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채권단이 겉으로는 삼성과의 타협을 위해 금융제재의 시기를 연기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사실상 철회한 것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채권단은 왜 갑자기 말을 바꾼 걸까. 정말로 채권단의 주장처럼 금융제재라는 칼에 삼성이 굴복했고 따라서 추가 협상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채권단이 갑자기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는 까닭을 ‘삼성의 굴복’보다는 뭔가 다른 이유에서 찾고 있다.

효과없는 금융제제, 밀어부치기에 한계

사실 삼성에 대한 금융제재를 선언한 금융권에서 조차도 금융제재가 삼성그룹에게 별다른 압박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올들어 반도체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2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삼성에 금융제재를 가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돈이 넘쳐나고는 있지만 빌려줄 곳이 마땅치 않은 국내 은행들이 삼성과 거래를 끊는다면 이는 결국 외국은행의 배만 불리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과연 삼성에게 삼성자동차 부실 전체를 책임지라고 주장할만큼 채권단이 떳떳한가라는 반론도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삼성자동차 회사채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주면서 ‘삼성자동차는 위험이 높은 회사’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다른 그룹계열사보다 훨씬 높은 보증 수수료를 챙겼던 서울보증보험이 이제 와서 회사채의 대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말했다.

최근 채권단 일부에서도 삼성자동차의 총 부채 3조4,700억원(서울보증보험 2조1,100억원과 1·2금융권 1조3,600억원) 가운데 삼성이 2조8,000억원만 책임진다면 양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남은 부채 7,000억원 정도는 부산공장 매각을 통해 회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손실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채권단도 손실을 일부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일부에서는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데에 주목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31.88포인트가 급락하던 8월13일 신세계(9만3,000원→9만5,500원), 제일제당 (2우선주·5만200원→5만7,700원) 등 삼성생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주가가 급등했다. 다시말해 시장에서는 삼성과 정부의 빅딜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러 가지 상황전개를 고려할때, 앞으로 삼성과 채권단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든간에 정부와 채권단의 당초 주장대로 삼성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형국이 벌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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