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교실] 금융기능 정상화 갈길 멀다

08/05(목) 13:49

한국이 경제회생을 위한 또 하나의 큰 고비를 넘고 있다. 이른바 ‘대우쇼크’로 한 때나마 금융시장이 극심한 난조상태에 빠졌지만, 정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책에 의해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진정되면서 금리가 하향세를 띠고 주가는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에 더해 제조업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통계마저 발표되어 한국 경제가 또 다시 고속 순항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전의 상승세를 순조롭게 이어갈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현재로서는 매우 불명확하다. 왜냐하면 순간적인 주가 폭락과 금리 상승으로 국내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었던 이번의 금융시장 혼란 사태는, 우리 경제의 안정기반이 여전히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에는 아직도 곳곳에 부실 요인들이 존재하며, 경제에 가해지는 제반 충격을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도 미처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게다가 하반기 이후 한국 경제의 성장세에 걸림돌이 될 불안 요인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다. 한국 경제의 차질없는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국내 경제의 부실 요인을 제거하는 한편으로, 잠재된 불안 요인들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하반기 이후 한국 경제를 어렵게 할 불안요인으로는 첫째, 세계 경제 여건의 악화를 들 수 있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S&P가 중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위안화 절하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위안화의 평가 절하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에 따르는 물가상승 압력 증대에 의해 미국 금리도 인상될 조짐이다. 미국 금리의 상승은 국제 자금 조달 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세계 경제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원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원유가는 현재 20달러 선을 돌파하여 연초 수준에 비해 무려 70% 이상 올랐다. 이러한 세계 경제 여건의 악화는 우리 경제의 대외 경쟁력을 약화시켜 향후 수출 부진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수입 비용 부담을 가중시켜 경상수지 흑자 기조의 안정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

둘째,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 정책에 의해 겉으로는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금융시장 기능이 원활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선 신용경색 현상이 아직도 여전하다. 금융 기관들이 제2금융권이나 기업에 대한 자금 대출을 기피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금융구조조정이 완결되지 않았고, 연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금융기관들이 부실 부문의 자금 부담마저 떠 안게 된 까닭이다.

또한 시중자금의 단기 부동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금리와 주가의 움직임이 불안해지자 일단 단기 공사채형 수익증권과 시장금리 정기예금과 같은 단기 상품에 돈을 맡긴 뒤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풍조가 성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장기 공사채는 금리가 오르기 전에 팔자는 분위기로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결국 시중금리의 상승을 초래하게 되어 기업의 금융 비용 부담을 높이고 주식시장의 장세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셋째, 지표상 거시경제 성장률은 높게 나타나고 있으나 성장 내용이 건실치 못한 점도 향후 우리 경제의 잠재적 불안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마디로 ‘경제의 이중구조’심화로 표현된다. 먼저 산업경기의 양극화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전히 국내 경제는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일부 중화학 공업업종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역별 경기 양극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와 같은 수도권 지역의 경기는 급속히 살아나고 있는 반면에 그 밖의 지역들은 성장세가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계층간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부의 집중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의 이중 구조 심화는 경제 현상의 양지와 음지가 극명하게 대립하여 경제 정책 목표 설정과 정책 수단의 선택을 힘들게 한다. 또한 사회 갈등을 심화시켜 국가 경제력의 결집을 어렵게 한다. 더 나아가 일부 성장 부문의 물가상승 선도효과는 경제 전체의 경쟁력 향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게 된다. 또한 경기가 활성화될수록 자본재와 같은 수입수요가 늘어나 경상수지 흑자 기반이 취약해지는 완성 제품 위주의 산업 구조도 하반기 이후 국내 경제의 성장세를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같은 불안 요인들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가.

우선은 경제 정책의 목표를 확고히 해야 한다. 지금은 구조조정의 조기 완결과 경기 활성화 지속이라는 두가지 목표에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 원리에 의한 구조조정 추진 원칙을 새롭게 다지는 한편으로, 거시 지표의 등락에 얽매이지 말고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과 투자 심리 회복을 위한 저금리 경제 구조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이 하루속히 완결됨으로써 국내 금융기능이 정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일부 경기 호조 산업부문의 임금상승 등에 의해 경제 전반의 물가 상승 압력이 올라가고, 경제적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호황을 누리는 일부 서비스업 부문의 과도한 임금 인상이 억제되어야 하며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운동이 지속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국내 경제가 해외 여건 변화에 좌우되지 않도록 내수 부문을 키우면서 지금의 기업구조 조정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대기업을 키우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 특성에 맞는 산업육성 정책을 실시하는 한편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연구 개발 투자 활성화와 같은 미시적 대책들이 시급히 마련되어 구체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나 이번 대우사태를 통해 한가지 분명해진 사실은 경제정책의 성공 여부는 경제주체들간의 ‘신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외환 위기를 불러 왔다면, 금번 사태의 조기수습은 신뢰 회복에 근본 원인이 있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안 요인들을 해소하고 장기적 경제 성장 기반을 확고히 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통해 정부와 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유병규·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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