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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정책, 기준이 뭔가

“쿠오 바디스(Quo vadis), 재벌정책”

정부의 재벌정책이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오락가락 하면서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이제는 시장이 재벌체제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발언한 부분을 일부 언론들이 ‘재벌해체’로 보도하면서 시작된 재벌정책에 대한 세간의 논란이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8월18일 정부가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겠다’며 재벌계열 금융기관이 소속 그룹의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한뒤 불과 3시간만에 입장을 번복한 뒤부터는 재벌은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정부의 재벌정책이 적절한 정책입안과 평가를 통해 발표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시장원리 외면, 일관성도 결여

실제로 최근 삼성자동차와 대우그룹 처리, 그리고 ‘제2금융권 금융기관의 지배구조개선’ 등에 담겨있는 정부의 재벌정책은 시장원리를 외면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논리적 일관성도 결여됐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삼성자동차와 대우그룹의 경우 대우그룹 해체에 대해서는 ‘실패한 경영자는 퇴출되어야 한다’며 유난히 시장원리를 강조하면서도 삼성자동차 처리에 대해서는 엄밀히 따질 경우 시장원리상 채무변제의 의무가 전혀 없는 이건희 삼성회장에 대해 2조8,000억원의 채무를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정부를 등에 업은 채권단의 압력에 못이겨 삼성이 2조8,000억원을 완전히 책임지겠다고 선언했지만 대우와 삼성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180도 다른 것임에는 틀림없다.

삼성생명 상장과 재벌의 제2금융기관 소유에 대한 정부정책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삼성생명 상장과 관련해 정부의 당초 입장은 ‘100% 오케이’였다. 삼성이 “삼성생명을 상장시키고,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보유주식을 매각해 2조8,000억원의 삼성자동차 부채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의 첫반응은 “받아들이겠다”였다. 그러나 삼성생명 상장으로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이 얻게될 막대한 시세차익이 문제가 되면서 정부 입장은 갑자기 ‘당분간 상장유보’로 돌아섰다.

사실 삼성생명 상장은 이미 9년전인 1990년, 공청회 등 각종 절차를 거쳐 기본적인 원칙과 절차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마무리됐던 부분이다. 다만 주식시장에 대한 물량부담을 이유로 정부가 상장을 유보시켜 왔을 뿐이다. 따라서 삼성생명 상장에 따른 자본이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정부논리는 이미 소위 ‘흘러간 노래’에 불과하다는 것이 생명보험업계의 시각이다.

8월18일 정부가 내놓은 ‘제2금융권 금융기관의 지배구조개선 및 경영건전성 강화방안’도 불과 1년전의 금융정책과는 180도 다른 정책이다. 재경부가 이날 내놓은 방안은 제2금융권에도 은행처럼 동일인 소유한도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직후인 지난해 재경부가 역시 ‘금융발전심의위원회’에 제출한 안은 ‘은행의 주인을 찾아줘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벌의 은행소유가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장기 비전보다는 정치적 상황이 우선

98년 6월부터 99년 6월까지 불과 1년사이에 재벌의 금융지배력이 갑자기 강화된 것이 아닌 상황에서 이처럼 상이한 법안이 똑같은 부처에서 입안되고 있다는 것은 정부가 ‘재벌개혁’이라고 주장하는 정책이 장기적 비전에 따라 진행되기 보다는 그때 그때의 정치적 상황에 맞춰 이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책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재경부가 8월18일에 내놓은 방안은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얼마나 즉흥적이고 비논리적인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한편 이처럼 정부정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일부에서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고위층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특히 김태동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8월16일 국민회의 세미나에서 “재벌의 족벌경영 체제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고, 재벌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재벌비호 성향이 있는 관료와 금융계 상층부의 인적 물갈이가 필요하다”며 ‘인적 청산론’을 제기한뒤 부터는 기존의 경제관료와 김대통령 주변의 ‘막후 참모’간에 알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김위원장의 발언이후 이틀뒤인 18일 역시 김대통령의 ‘막후 참모’라고 할 수 있는 동국대 황태연 교수가 “DJ정부와 재벌체제는 상호 운명적 교체관계에 있다”며 “재벌의 무책임하고 자의적인 ‘황제 지배체제’를 해체해야 한다”고 발언한뒤에는 정부의 재벌정책이 여야간의 정쟁으로 까지 비화하고 있다. 때에 따라 틀리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정부의 재벌정책이 쏟아지면서 진정한 재벌개혁에 필요한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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