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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금융시장, 물러설 곳이 없다

금융시장이 벼랑위에 서 있다. 대우쇼크와 이에 따른 투신사 환매사태로 금융시장이 추락 직전까지 몰려 있는 상황이다. 1,000포인트 고지를 단숨에 점령, 고주가시대의 단꿈을 꾸던 주식시장은 대우쇼크라는 불의의 직격탄을 맞고 깊은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채권시장도 하루하루 살얼음판이다. 투신권의 공사채형 수익증권의 수탁고는 줄잡아 250조원대. 개인과 일반법인의 무더기 환매요구가 이어질 경우 채권시장은 언제 꺼질지 아무도 장담할수 없는 비상사태다. 투신권의 유동성 위기는 자금흐름의 역류현상과 인플레 압력 가중 등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일파만파의 악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주식시장,대우직격탄에 치명타

주식시장은 대우쇼크의 최대 희생물이 됐다. 대우쇼크가 터진 지난 7월23일 주식시장은 종합주가지수가 71.70포인트나 폭락하는 ‘검은 금요일’의 혼란을 연출했다. 이때부터 주식시장은 대우와 투병중이다.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의 향배에 따라 주가도 춤을 추고 있다. 주가가 급등락을 거듭하는 동안 주식시장의 기반은 크게 약해지고 있다. ‘무한질주’의 환상을 갖고 증시로 달려들던 뭉칫돈들이 불안과 환멸을 느끼며 짐을 싸고 있다.

이달들어 18일 현재까지 고객예탁금은 5,205억원이나 감소했다.

특히 외국인들의 주식투자자금 이탈은 주식시장의 침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식투자 차익실현과 대우사태에 따른 불안감 등으로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이달들어 지난 15일 현재까지 10억2,800만달러가 순유출(총유출분에서 유입분을 뺀 것)됐다. 대신증권 나민호투자정보팀장은 “대우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는 한 외국인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 같다”고 우려했다. 주식시장의 장기침체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금리 고공행진,불안한 채권시장

대우사태 여파로 채권시장의 불안기류가 심상치 않다. 대우채권의 부실문제로 촉발된 수익증권 환매사태가 비대우채권(일반채권)은 물론 은행 신탁상품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가 증폭되면서 시중실세금리가 9개월여만에 두자릿수에 재진입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급속한 경기회복에 따른 인플레 우려감이 번져가면서 IMF위기탈출의 견인차역할을 하고 있는 저금리기조가 크게 흔들리는 양상이다.

20일 자금시장에서는 3년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이 전날보다 0.31%포인트나 껑충 뛰어오른 연 10.27%를 기록했다. 회사채 수익률이 10%를 넘어선 것은 작년 10월31일 연 10.00%를 기록한 이후 9개월 20일만에 처음이다.

시중 금리는 지난달 중순 대우그룹 유동성 위기문제가 불거진 이래 오름세를 계속 이어가면서 연일 연중최고치를 경신해왔다.

저금리체제를 뒤흔들어놓은 주범은 뭐니뭐니해도 대우그룹 사태. 좌초위기에 몰린 대우그룹에 대해 채권금융기관들이 신규자금 4조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투신사들이 유동성마련을 위해 보유 회사채를 내다팔면서 채권시장에는 일대 파란을 예고했다. 채권시장은 사실상 개점휴업상태로 빠져들었다. 대우사태 이전에는 하루평균 5조∼6조원에 달했던 채권시장의 거래규모는 3분의 1수준인 1조∼2조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한국투신의 주원규 채권팀장은 “대우사태에 따른 충격으로 자금흐름이 뚝 끊겼다”며 “금리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터져나온 투신권의 수익증권 환매사태는 채권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시장 관계자들은 투신사들이 아직까지 대량 매물을 내놓지 않았지만 MMF환매허용에 이어 수익증권의 환매제한도 풀어지면 채권시장은 걷잡을수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자금 은행권으로 'u턴'

요즘 금융시장은 지각변동중이다. 대우쇼크가 자금흐름의 큰 물줄기를 돌려놓고 있는 것. 대우쇼크 이후 불과 20여일동안 수십조원에 이르는 자금들이 단기간에 대이동을 시작했다.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무서운 기세로 주식시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가운데 저금리를 피해 투신권과 증권에 몰렸던 자금들이 은행권으로 다시 ‘U턴’하고 있다.

올들어 자금시장은 투자처를 찾는 뭉칫돈들의 대규모 이동으로 내내 몸살을 앓고 있다. 1·4분기에만 투신사의 공사채형 수익증권에 36조2,923억원이나 몰렸던 뭉칫돈들은 2·4분기부터 집단이탈을 시작, 주식형수익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가 1,000포인트를 향해 질주하던 4~7월까지 공사채형 수익증권의 수탁고는 10조원 가까이 줄어든 반면 주식형 수익증권은 29조4,000억원이 나 급증하는 정반대길을 달렸다.

이번에는 은행권으로의 역류현상. 대우쇼크가 불거진 이후 뭉칫돈들은 투신 권이나 증권에서 서둘러 짐을 챙겨 은행권으로 ‘피난처’를 옮기고 있다. 이달들어 18일 현재까지 투신권의 공사채형 수익증권은 13조6,142억원이나 줄어들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은행권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다. 같은 기간 은행의 실세총예금은 8조9,076억원이나 폭증했다. 문제는 단기간에 걸친 이같은 게릴라식 자금이동이 자금시장의 위험도를 더욱 노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은행권으로 유입된 자금중 상당수가 수시로 돈을 뽑아쓸수 있는 MMDA나 1~3개월 만기의 정기예금 등 단기상품으로 집중되고 있다. 자금시장의 변화가 오면 언제든지 자리를 뜨겠다는 계산이 깔린 ‘떠돌이’ 자금들이다. 금융전문가들은 은행권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 또 한번 자금시장이 출렁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불안심리 해소,대우 조기해결이 관건

환매사태를 막는 것이 일단 발등의 불이다. 당장 만기가 돌아오는 상품들에 대한 환매요구가 거세다. 투신권 전체적으로 만기상품은 대략 18조원 정도 된다. 만기상품은 시간을 끌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을 감안하면 투신권의 환매사태를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우선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을 씻는 것이 절실하다. ‘금융계엄군’을 자처하는 정부의 창구지도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금융연구원 김세진박사는 “환매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심리를 해소시켜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원금확보를 위해 정부가 보증을 서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채권전문가들은 채권시장을 살리고 투신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채권수요 진작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비과세 근로자장기채권저축 도입, 채권형 뮤추얼펀드 활성화, 신규발행 채권에 대한 시가평가제 조기 실시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기를 해결하는 핵심이자 교과서적 방법은 금융시장 혼란의 진앙지인 대우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대우문제를 질질 끌면 끌수록 금융시장의 불신과 불안의 골은 깊어질수 밖에 없다. 금융연구원 최공필박사는 “정부가 자금시장 안정에만 급급하면서 단기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인상”이라며 “ 근본적인 원인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봉합수술만 하다가는 불안한 상황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병주·경제부 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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