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 전격구속 "하필 이런때에..."

08/10(화) 20:32

“왜 지금 이 시기에, 김형진인가.”

검찰이 5일 김형진 세종증권 회장을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로부터 회사채 1조7,000억원 어치를 불법 매매, 530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로 전격 구속했다.

일단 검찰이 밝힌 혐의를 보면 외환위기속에서 돈가뭄에 시달리는 기업들의 ‘등을 쳐 먹은’ 부도덕한 사채업자에 대한 공권력의 준엄한 징계로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여의도 증권업계에서는 김회장 구속을 단순한 경제사범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회사채 불법매매, 530억 부당이익 혐의

김회장의 구속과 관련, 색다른 해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무엇보다도 ‘김회장의 혐의가 수십년동안 이어져온 업계의 관행’이라는 점이다. 명동의 한 사채업자는 “검찰이 김회장에게 적용한 죄목을 똑같이 적용할 경우 명동에서 구속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실 김회장의 채권매매 수법은 명동 사채시장에서 과거 20여년 이상 면면히 내려온 전통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A기업이 표면금리 10%로 3년만기인 100만원짜리 채권을 발행했으나 회사의 신용상태가 좋지 않거나 시중 자금사정이 어려워 회사채를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김회장 같은 채권브로커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 틈이다. 이들은 회사채가 팔리지 않은 기업(따라서 자금난이 극심한 기업)으로부터 회사채를 큰 폭으로 할인해 매입한다. A기업의 100만원짜리 회사채를 15%할인해 85만원에 매입하는 것이다. 브로커들은 이 회사채를 평소 안면이 있는 투신사 채권담당자에게 이윤의 일정부분을 나눠 갖는다는 묵계아래 할인율을 10%로 낮춰 90만원에 되팔면 브로커는 단번에 5만원을 챙기게 된다. 만약 이런 수법으로 회사채 1조원을 거래하면 그 차액은 500억원을 넘게된다.

실제로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해에는 시중 실세금리가 연 30%까지 급등했는데, ‘회사채 발행회사→회사채 브로커→증권사·투신사·은행’등으로 이어지는 회사채의 발행·유통과정에서 증권사 고위 간부부터 말단 직원까지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A종금사의 한 채권담당 딜러는 “김회장이 사용한 수법말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회사채를 사고 팔면서 엄청난 리베이트가 오갔다”며 “이들을 모두 사법처리할 경우 한국 금융시장이 마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과의 유착 소문, 의문 증폭

그렇다면 검찰은 왜 채권시장의 수많은 잠재적 범죄자중에서 김회장만을 골라 혼을 낸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번져가는 정부·여당과 김회장과의 유착소문을 끊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크다는 것이 해석이 지배적이다.

사실 김회장이 구속되기 훨씬 전인 지난해말부터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채권시장을 독식하다시피하고 있는 세종증권과 관련, “김회장이 여권 실세와 가까우며 이들과의 관계를 지렛대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김회장이 거액의 연봉을 주고 스카웃한 임원은 목포상고출신이다”는 등 무수한 소문이 떠돌았다.

그리고 이같은 소문중 일부는 사실로 밝혀졌다. 김회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민회의 K의원의 친척중 한 명이 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홍승캐피탈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지 2개월이 넘도록 김회장의 수사결과 발표를 미룬 것에 대해서도 갖은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여권 실세가 수사를 막으려 하고 있다”, “이번에도 ‘김형진 리스트’가 공개되는 것 아니냐”등의 소문이 꼬리를 물었고 김회장의 구속사실이 알려진 8월6일에는 한나라당이 “수사도중 고위층으로부터 잘 봐달라는 전화가 담당 검사에게 빗발쳤다는 의혹이 있다”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K의원은 “지역구사람으로부터 김회장이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기에 대검 고위간부에게 어떤 일인지 물어보았는데 뇌물혐의가 있다는 말을 듣고 법대로 처리하라고 이야기했다. 김회장과 만난 기억은 없다”며 관련설을 부인하고 있다.

김회장 구속이 사채시장의 오랜 불법 관행에 쐐기를 박으려는 검찰의 충정인지, 아니면 선거를 앞두고 불거질지 모를 ‘비리의 뇌관’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것인지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지만 국민들의 의문이 높아가는 것은 명백하다.

조철환 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