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교실] 국내자동차 시장 RV붐

08/10(화) 20:50

정진우·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국내 RV(Recreational Vehicle)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니밴 등 인기있는 일부 모델은 심각한 출고 적체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금년 6월까지 미니밴과 오프로드(off-road:지프형차)의 판매 대수는 약 8만7,000대로 전년비 133%의 뚜렷한 판매 신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승용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미니밴과 오프로드의 비율도 무려 23%로 높아졌다. 90년대 초반에는 전체 RV(베스타와 같은 1박스, 스테이션웨건, 오프로드, 미니밴)가 승용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승용형 미니밴 폭발적 인기

특히 RV 중에서도 미니밴의 판매 신장세가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 기아의 카니발은 올해 들어 월 평균 5,000대 이상이 팔렸고, 카렌스는 발매 첫 달인 6월 한달동안에만 약 6,000대가 판매되었다. 미니밴의 폭발적인 인기는 6월 중 모델별 판매순위에서 카렌스가 3위, 카니발이 4위로 올라선 것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이처럼 승용형 미니밴을 중심으로 한 RV판매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도 선진국과 같은 ‘RV 붐’이 일어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승용형 미니밴이나 오프로드 등의 RV가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이에따라 이러한 시장 트렌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의 여부가 자동차업체의 명암을 갈라놓기도 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의 혼다는 ‘오딧세이’와 같은 RV 제품력을 인정받아 업체 규모의 열위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생존 가능한 이른바 ‘글로벌 6메이커’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일본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80년대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이른바 ‘RV붐’을 경험하였다. 일본의 자동차(수입차 및 경차 제외)판매에서 차지하는 RV 판매비율은 80년대까지는 10% 이하에 머물렀으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98년의 RV비율은 무려 51%로 늘어나, 수입차 및 경차를 제외하면 전체 자동차 두대에 한대 꼴로 RV가 판매되었다.

한편 일본의 90년대 RV 붐의 특징은 이러한 양적인 증가 외에 뚜렷한 질적인 변화가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80년대에는 1박스와 오프로드가 주력이었다면, 90년대에는 미니밴과 스테이션웨건이 주력 세그먼트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RV판매 중에서 미니밴과 스테이션웨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91년에 32%였으나, 98년에는 85%로 늘어났다. 이와 동시에 세단형 승용차에 버금가는 대량 판매 RV 모델이 다수 등장했다.

세단형 대체할 차종으로 부상

이러한 현상들은 RV가 단순히 세단형 승용차를 보완하는 틈새 시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단형 승용차를 대체해 나가는 대량 판매 시장으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80년대 RV의 주력 세그먼트였던 1박스와 오프로드는 그 속성상 세단형 승용차적 감각을 구현하기가 매우 어려운 세그먼트로서, 세단형 승용차에 결여된 요구(1박스의 공간 활용성, 오프로드의 험로 주파 능력 등)를 충족시키는 소규모 틈새 시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 세단형 승용차의 장점(승차감, 운전안정성, 쾌적성, 승차편의성 드)을 결합시킨 미니밴과 스테이션웨건 등 이른바 ‘승용형 RV’가 나타나면서, RV가 세단형 승용차를 대체하는 세그먼트로 부상한 것이다. 즉 ‘승용성과 RV적 기능성의 통합’이 본격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트랜드는 자동차 업체들의 전략도 밀접한 관련을 보이고 있다. 즉 80년대 RV시장은 전형적인 틈새시장이었기 때문에 자동차업체들도 새로운 제품개발에 소극적이었고, 이것이 다시 시장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일종의 악순환 구조를 보였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 일부 ‘승용형 RV’가 크게 히트를 치자 대형업체들도 새로운 제품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고, 이는 다시 시장규모의 확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최근 국내 RV시장에서도 일본이 90년대초에 경험한 것과 유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RV시장의 규모자체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다, 기존의 주력 세그먼트였던 1박스가 상대적으로 퇴조하는 대신 미니밴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또한 미니밴 등 일부 인기있는 RV모델은 세단형 승용차에 버금가는 대량판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향후 구매희망차종, RV가 1위

최근 자동차공업협회가 향후 구매를 희망하는 차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미니밴이 33.6%, 중형차 26.1%, 오프로드 15.4%로 RV구매의사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만 놓고 볼 때, 국내 RV시장은 일본 RV붐 시기에 돌입하던 90년대 초반 단계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국 RV시장의 발전단계는 수치만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차별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우선, 최근 국내 RV판매의 급증세는 유가, 세제 등 낮은 유지비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인기있는 RV판매의 절대다수가 LPG나 디젤모델이며, 대부분의 RV모델이 승용차로 분류되어 세금이 높아지는 내년 이전에 RV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에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공업협회의 최근 조사에서도 자동차구입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사항 1순위로 세금/유가 등 유지비부담(24.3%)이 꼽혔고, 자동차구매에 부정적인 형향을 미치는 요인 1,2순위로 휘발유값 인상(42%), 세금인상(16.9%)이 꼽혔다. 또한, 복수소유의 진전, 실용성을 중시하는 자동차관, 높은 소득수준과 여가중시형 생활패턴 등 선진국의 사회적 배경과는 일정한 격차를 두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RV시장의 성장세가 선진국형 ‘RV붐’으로 이어질 것인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는 향후 국내 RV시장의 발전단계를 규정할 몇가지 중요한 요소를 지적해 두고자 한다.

대형업체들 RV 시장 공략에 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 업체들의 적극적인 전략이다. 기존의 RV시장은 틈새시장을 노린 군소 업체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이제 대형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RV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현대는 미니밴 ‘트라젯’, 오프로드 ‘산타페’, 대우는 미니밴 ‘U-100’을 통해 RV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새로운 제품 컨셉을 제시한 대형 업체들의 시장진입이 ‘RV 붐’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점을 고려하면, 국내 대형 업체들의 RV시장 진입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승용차를 베이스로 개발된 미니밴이 RV시장의 주력 세그먼트로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승용성과 RV적 기능성의 통합’이 국내에서도 시작되었다는 것으로서, 일본 ‘RV 붐’의 핵심적 내용이 이러한 통합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통합에 성공했던 혼다 ‘오딧세이’ 등의 승용형 미니밴이 ‘RV 붐’을 선도해 나갔다. 특히 이러한 RV는 승용차와의 플랫폼 통합을 기초로 개발되기 때문에, 원가 절감이 가능해져 가격을 낮출 수도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승용성과 RV적 기능성의 성공적 통합’을 구현한 대형 업체들의 새로운 제품 출시, 플랫폼 공용화를 토대로 한 지속적인 원가 절감 등은 RV 시장의 향후 발전 방향을 규정할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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