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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게 죽을 권리, 과연 있나

김모(58)씨. 전직 정부고위관료였던 그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지 7년이 넘는다. 눈동자만 약간 움직일뿐 사지가 완전 마비된 상태다. 가족들도 포기했다. 치료비만 5억원이상 날려 재산이 거의 바닥났다.

네덜란드가 전세계에서 선도적으로 안락사합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김씨 가족들처럼 아무런 기약없이 병원에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환자가족들은 국내에서의 안락사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의료계에서 환자보호자들의 뜻에 따라 암암리에 해오던 관행마저 지난해 논란이 됐던 보라매병원 사건으로 얼어붙어 버렸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자가족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와 사람을 죽게할 수는 없다는 법과 도덕적 기준 사이에 끼여 한숨만 내쉬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뇌사를 인정하는 국내 첫 법률안인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국무회의를 통과, 이르면 내년초부터 시행될 예정이어서 이른바 식물인간에 대한 안락사, 즉 ‘품위있게 죽을 권리’가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가능성은 커졌다. 현행 형법상 죽음의 기준인 심장사외에 뇌사를 사실상 사망으로 인정한 이상, 안락사 허용 여부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의료계 법조계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뇌사입법, 안락사 허용여부 논란

시행을 눈앞에 둔 뇌사법의 핵심은 장기이식의 합법화다. 근거는 ‘뇌사자가 생전에 장기기증을 동의 또는 반대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을 때에는 가족 동의만으로 기증 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뇌사 판정 절차는 이렇다. 정부가 지정한 주요 의료기관 뇌사판정위원회에서 판정위원(전문의 3명이상을 포함한 7~10명) 3분의2 출석과 출석위원 전원 찬성으로 이루어진다. 판정기준은 치료 가능성이 없고, 깊은 혼수상태로 자발적호흡없이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는 등 다섯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또 두 눈동자가 확대·고정되고 기침반사 등 뇌간반사가 소실되며 뇌파검사에서 평탄뇌파가 30분이상 지속되는 등 아홉가지 기준에도 부합해야 한다.

뇌사는 뇌간기능이 남아있어 인공호흡으로 장기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식물인간과는 개념이 다르다. 뇌사에 빠지면 인공호흡기로 일시적 생명유지는 가능하지만 대사기능 저하로 보통 2주일 이내에 사망한다.

문제는 뇌사와 식물인간 모두 ‘회생불가 환자’라는 점. 뇌사 입법으로 안락사 허용여부가 불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안락사를 크게 두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적극적 안락사’는 염화칼륨이나 모르핀을 환자의 정맥에 주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의사판단에 맡기는 것은 무리라는 이유로 반대가 지배적이다.

반면 인위적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에는 수긍하는 의견이 상당하다. 현실적으로도 가족 동의로 극비 시행하는 병원들도 꽤 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뇌졸증, 말기암, 척추골절로 인한 사지마비, 교통사고로 인한 뇌출혈 환자 등 뇌기능 정지나 식물인간 상태에 있을 때 의사가 시술을 중단, 사망케 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소극적 안락사’다.

‘죽음방조’ ‘고통단축’ 찬반 엇갈려

서울대병원 A과장은 “환자를 ‘집으로 모셔야한다’면서 심장박동기 인공호흡장치 등을 제거하는 관행들이 대표적인 ‘소극적 안락사’ 케이스”라고 전했다. 실제 서울의 일부 병원은 1주일에 최소 3,4명의 환자를 ‘호프리스 디스차지’(Hopeless Discharge·가망없는 퇴원) 판정을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지난해 보라매병원 의사 2명이 뇌수술을 받은 중환자를 가정형편이 어려운 보호자의 요구로 퇴원시켰다가 환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살인죄로 기소돼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이후 의사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안락사 논의도 찬반이 첨예하게 갈려있다. 우선 소극적 안락사와 같은 ‘간접 안락사’를 법률적 보완을 통해 의료계의 뒤안에서 밝은 곳으로 끌어내 명문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주목하자. 이는 안락사 시술의사가 현행 법률하에서는 명백한 살인 방조 또는 살인혐의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면책을 위해 ‘회생불가’환자에게도 죽음을 연기해 오히려 고통을 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최진욱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품위있게 죽을 권리’가 사생활권에 포함되어 인정받고 있으며, 항암제 투여로 말기암 환자의 죽음을 연장시키는 행위는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짓”이라고 주장했다. 죽음이 임박한 불치병 환자가 본인과 보호자의 희망에 따라 전문의 시술로 편하게 눈감을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전제조건은 족쇄인 형법상 ‘자살관여죄’의 보완이라는게 법조계의 설명. 즉 자살관여죄의 적용을 의사에 대해서는 한정적 예외로 규정하고, 의료법에 특례규정을 둬 안락사에 관여한 의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수 식물인간 가족과 의료계에서는 안락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뇌사상태 환자 및 식물인간이 장기 입원할 경우 의료비 부담이 커 가족들에게 2중, 3중의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김태학 차장은 “뇌사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해 안락사법 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높다. 성균관대 이한구(철학)교수는 “안락사법을 제정하면 의사에게 환자를 죽이게 만드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줄 우려가 커 입법은 곤란하다”고 잘라 말했다. 반대론자들은 국내 병원들의 오진율이 선진국에 비해 최고 5배 가까이 높은 상황에서 생명을 중지시키는 일을 의사판단에 맡기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안락사를 인정할 경우 치매환자 등 불가항력 상황에 처한 환자의 장기를 매매목적으로 악용할 소지도 다분히 있다고 반대론자들은 지적한다.

‘논의’조차 아직은 멀고 험난

이런 점에서 한 법학교수의 진단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동아대 허일태(법학)교수는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제출한 ‘안락사에 대한 연구’에서 안락사를 크게 도태적 안락사, 존엄사, 협의의 안락사 등 3가지로 구분했다. 허교수는 “안락사는 생명의 종료에 대한 결정과 환자의 자결권 범위와 한계, 의사의 생명유지권, 안락사 개념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는 환자의 요청이 있어도 의사가 의도적으로 생명을 단축한다면 이는 안락사를 빙자한 살인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이 경우 환자가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 생명결정권을 받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명백히 표시하면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립의료원 도종웅(신경외과)제3진료부장은 “뇌사환자의 경우 엄격한 판정아래 안락사는 인정할 수 있지만 회복가능성이 있는 식물인간에 대해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역행할 수 없다”며 즉 뇌사이전 단계에 있는 식물인간에 적극적 시술이 베풀어져야 하며, 이에 소요되는 치료비를 정부가 일정비율 부담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는 논의조차 멀고도 험난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김진각·사회부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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