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장명수와 그레이엄

08/25(수) 22:41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이자 회장이었던 캐서린 그레이엄(82)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레이엄에 대한 이같은 평가는 그가 미국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발행인과 회장이자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6개 지방방송국을 운영하고 파리에 본사를 둔 세계적 신문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을 뉴욕타임스와 공동소유했다는 것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문이나 방송을 소유한 사실 자체가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평가받게 한 것은 아닙니다. 언론자유에 대한 그의 신념이 큰 바탕입니다. 워싱터포스트의 명성을 한층 높이는 계기중의 하나인 워터게이트사건 보도 과정에서 그가 발행인과 사주로서 보여준 판단과 추진력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보도할 경우 당시 추진중이던 3,500만달러 증자 계획에 악영향을 끼쳐 경영상 큰 어려움이 초래될 수 있는 처지였는데도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의 결단은 워싱턴포스트의 정신을 바꿔놓고 편집국을 비롯한 사내 분위기를 일거에 쇄신했다고 당시 편집국장이었던 브래들리는 회고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가져온 워터게이트사건은 단순 절도사건으로 묻힐 수도 있었으나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의 끈질긴 기자정신과 그레이엄의 결단으로 세상에 빛을 발했습니다. 고민 끝에 보도를 결정한 그는 워터게이트사건 내내 편집국에 들러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격려의 이면에는 정치권 등으로부터 오는 압력에 대항하는 힘을 편집국 구성원들과 함께 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요. 그같은 용기 때문에 그는 ‘불알 달린 여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의 자서전 ‘워싱턴포스트와 나의 80년’은 올해 퓰리처상 전기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자서전은 유태인 백만장자의 딸로 태어나 남편의 ‘횡포(부정과 정신이상)로 번민하던 평범한 가정주부, 남편이 63년 조울증으로 자살하면서 본의 아니게 91년까지 신문을 맡으면서 권력 등과 부딪쳐야 했던 경험 등을 진솔하게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3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의 유명세가 아니라 솔직한 기록에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종합일간지의 대표이사 발행인이 된 한국일보 장명수(57)사장에 대한 기사가 각 신문에 보도됐습니다. 이미 ‘장명수 칼럼’으로 널리 알려진 그에게 최초의 여성주필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어있습니다. 그같은 수식어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한시도 기자라는 본분을 잊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37년간 글쓰는 일로 초지일관했습니다. 그동안 글로 유명해진 그에게 ‘유혹’이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참신한 인물난에 시달리던 정권들으로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면, 또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에서 스스로가 떨쳐 일어나지 못했다면 이미 잊혀진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의 글은 날카롭게 정곡을 찌르면서도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장점과 여성의 장점을 한껏 살려 가진 자들의 불의와 부정을 매섭게 비판해왔습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장칼’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춥고 힘없는 사람을 항상 껴안아 왔습니다. 그가 여성들의 권익신장에 큰 몫을 했음은 한국일보 대표이사 발행인이라는 현재의 위치가 웅변하고 있습니다.

장사장과 그레이엄, 두 발행인은 시작부터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장사장이 37년전 기자로 출발해 현 위치에 도달했다면 그레이엄은 가정주부에서 어느날 발행인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장사장은 강산이 네번 가까이 바뀌는 세월을 선후배기자들과 동고동락한 것입니다. 그 세월에는 격동의 시간들이 더 많았습니다. 격동의 세월은 구성원들간의 응집력을 더 크게 하지요. 새 출발하는 그에게는 원군입니다. 외신기자인 남편, 그의 글을 사랑한 많은 독자들도 큰 원군입니다.

장사장의 취임을 두고 정치권이 ‘최초’로 논평을 내고, 여성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가 지켜보는 것은 그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많은 글을 쓰면서도 책한권 내지 않은 장사장이 성공한 기자를 넘어 성공한 경영자로서 자서전을 쓰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정재룡 주간한국부 부장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