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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어떤 공무원과 선량들의 코미디

중소기업을 하는 박모씨가 최근 신나는 경험을 했다며 널리 알릴 수 없냐는 전화를 해왔습니다. 박씨는 최근 부인이 직장을 그만두게 된뒤 크게 상심해 만사를 제쳐두고 제주도로 위로여행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신혼여행이후 부부 모두 일 때문에 가보지 못한 제주도를 목적지를 잡았으나 갑자기 결정한데다 휴가철이라 걱정이 됐습니다. 제주도청 관광과로 시외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하며 부탁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공무원은 ‘우리가 하는 일은 여관방 등을 소개하는 일이 아닙니다’며 웃었습니다. 그 공무원은 연락처를 받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던 박씨는 2시간여후 제주시택시협회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도청에서 전화를 받았다며 여관비와 1일 이용택시료 등을 알려주고 괜찮으냐고 물은뒤 좋다고 하자 예약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비행기 도착시간에 이름을 적은 피킷을 들고 공항에 서있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박씨의 여행이 ‘성공적’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박씨는 민선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공무원들이 바뀌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정말 놀랐다’며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한 시민의 달라지고 있는 공무원에 대한 평가입니다. 편견도 없고, 어떤 목적을 위한 얄팍한 수단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에게 ‘감동’을 준 이름도 모르는 공무원을 칭찬한 것입니다.

이와는 상반되는 정당들의 행태가 국회 옷로비 의혹사건 청문회가 한창이던 8월24, 25일 벌어졌습니다.

국민회의는 24일 ‘국민의 정부 1년 6개월의 5대업적’이라는 성명을 통해 ‘현 정부는 역대 정권과는 달리 어떤 로비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정경유착을 철폐함으로써 정권의 도덕성을 높였다’고 자체 평가했습니다. 옷로비, 경기은행 퇴출을 막기위한 대정부 로비, 대우그룹 부실은폐 및 구조조정 회피를 위한 로비 등이 모두 실패한 것이나 투명한 정치자금 조달, 재벌개혁 작업 등이 그 반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IMF 극복과정에서도 외환보유고 외국인투자 기업순이익 사상 최대규모, 물가·금리·환율 안정, 주가회복, 노사관계 안정 등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고 대북우위 안보체제 구축 등도 자랑했습니다.

이같은 국민회의 자랑에 대해 한나라당은 현정권의 국정난맥상을 일일이 적시한 ‘김대중정권 2년차 실정일지’를 배포했습니다. 한나라당은 일지에서 잇단 정책혼선, 재·보선과정의 불법 선거운동, 권력실세 비리, 야당후원회 계좌추적, 대북정책 혼선, 당정간 불협화음, 내각제 개헌 갈등, 재벌정책 등을 대표적인 실정으로 꼽았습니다. 일지는 ‘현정권이 정책혼선 등으로 헛발질로 날을 지새우다가 뒤늦게 정치개혁, 재벌개혁, 부패척결을 내세우고 있으나 목표와 지향점이 불분명해 국민은 혼란스럽고 불안할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날 국회 법사위와 의원회관 및 각 정당에는 옷로비 청문회 TV생중계를 지켜보던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시민들은 ‘정치공세를 하지 말고 진상을 제대로 밝혀라’, ‘진상을 밝히려는 것이냐, 방해하는 것이냐’고 비난했습니다. 특별검사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특히 많았습니다. 의혹만 재확인한 청문회, 무능하고 정쟁만 일삼은 의원들에 대한 분노입니다.

뒷날 속개된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은 실소했습니다. 전날 나오지 않은 핵심 증인이 나오고 대질신문까지 있다기에 혹시나 하고 지켜보았으나 역시나 였기 때문입니다. 의원들은 증인들의 ‘모른다’ ‘거짓말이다’ ‘그런 일 없다’는 일관된 답변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일부 의원들의 지나친 증인 감싸기나,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며 성실한 답변을 ‘애원’하는 모습은 측은하기 까지 했습니다. 선량들이 국민의 혈세로 벌인 ‘코미디’였습니다.

이같은 행태를 보면서 정치권의 자기비판 없는 자랑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상대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한 것은 없고 잘못한 것 밖에 없다는 식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과거를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바뀐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 진실로 국민이 원하는 정치에 접근하는 길입니다. 평가는 역사에 맡겨두어야 합니다. 정치인이 당장 해야 할 일은 국민을 신나게 하는 것입니다.

정재룡 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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