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성.한국무기수 등과 4번 결혼

08/31(화) 15:38

김희로는 59년 치바 형무소에서 출소한 뒤 일본여성인 가토 가즈코와 결혼했다. 65년에는 그녀와 가케가와에서 술집을 개업하기도 했으나 67년 이혼했다.

그는 가즈코와 지냈던 만 7년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고 술회했다. 가즈코는 한때 그를 위해 술집 접대부로 일하기도 했다. 그의 옥중수기에 따르면 가즈코와 헤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옥에 들어간 후에도 일본 사회를 뒤흔든 사건의 무게와 함께 그가 당시 외쳤던 명분으로 인해 김희로는 끊임없이 외부의 주목을 받았다. 외부 여성들이 그에게 관심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종신형으로 시즈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70년 편지와 함께 종종 면회를 오던 여대 3년생인 아야코(20)가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내와 화제가 됐다. 아야코의 편지의 한 대목. “…김희로씨가 외치는 소리에서 진실을 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절망에서 소생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사랑의 광기(狂氣)까지 생겼습니다.”

옥중결혼도 여러차례 있었다. 70년 2월25일, 김희로는 시즈오카 형무소에서 창살을 사이에 두고 23세의 일본여성 오바 후사양과 결혼해 혼인신고까지 했다. 후사양과는 인질사건 세달전 동거한 사이였다. 그러나 71년 김희로는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며 고생하는 아내를 보다 못해 이혼하고 말았다.

그가 그렇게 싫어했던 차별속에서도 일본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이야기. “나는 일본인 조직폭력배나 한국인을 차별하는 일본인은 싫어 하지만 그렇지 않는 일본인은 모두 존경하고 사랑한다.”

한국여성과의 옥중결혼도 있었다. 71년 11월, 200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은 김문자씨와 시즈오카 형무소에서 또다시 결혼했다. 당시 김문자씨는 “그분처럼 고국에 집념을 가진 분도 없다. 일본여자에게 뺏기기 싫었다”고 심경을 말했다. 김희로의 편지는 “조국이 그리워 조국의 아내를 택했다”는 것. 그러나 두사람은 74년 이혼했다.

한국의 무기수와도 옥중 서신결혼을 한 적이 있다. 구마모토 형무소에 복역중이던 83년 7월, 대전 교도소의 무기수 돈경숙(당시 36세)와 6년간 편지를 나눈 끝에 결혼을 약속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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