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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만의 귀국... '김의전쟁' 막내리다

폭 50㎞의 대한해협.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서울까지는 약 1시간 50분. 그에게 이 길은 너무 멀었다. 돌아오는데 71년이 걸렸다.

김희로(金嬉老). 그가 9월7일 귀국한다. 태어나서 만 40년간은 일본 사회속에서, 다시 31년간은 옥중에서 일본사회의 차별과 전쟁을 벌였던 그가 돌아온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어머니의 유골과 함께 돌아온다. 만년을 자식의 옥바라지로 보내던 어머니는 지난해 11월 타계했다. ‘김의 전쟁’은 이제 끝났는가.

김희로는 일본 시즈오카현 시즈미 시에서 1928년 11월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박덕숙씨. 고향은 부산 온천동이다. 박씨는 1923년 17세의 나이로 도일, 권명술씨와 결혼해 희로와 세 자녀를 낳았다. 김희로는 그래서 일본인들에게는 ‘조센징’이었다.

희로가 4세 때 부두 목재하역 인부로 일하던 아버지가 작업중 사고로 사망했다. 어머니는 3년 뒤 역시 한국인인 김종성씨와 재혼했다. 희로의 성이 김씨가 된 것은 이때 부터다. 그러나 희로는 생부를 좋아해 권희로를 고집했다고 한다. 희로씨는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절은 생부와 살았던 4세까지”라고 말했다.

중일전쟁을 향해 치닫던 시기. 일제의 공안통치는 일본 내에서도 극심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더했다. 전쟁분위기 속에서 조선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노동착취의 대상이자 차별과 놀림의 대상이었다. 희로도 무려 8번이나 이름을 바꿔가며 직장을 전전했으나 매번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

어린시절 희로에게도 사회적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일본사회에 편입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는 지 아니면 처음부터 포기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45년 소아이 소년보호원에서 일본 패전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의 감정이 참고가 될 수는 있겠다. “당시 천황은 울면서 말했고, 나도 울면서 방송을 들었다.”

그는 경찰, 감옥과 인연이 많았다. 1940년 절도죄로 시미즈 경찰서에 잡혀가 조센징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43년에는 절도죄로 잡혀 45년까지 소년보호원 신세를 졌고, 이듬해 다시 절도·횡령죄로 형무소에 들어가 49년 출소했다. 50년 사기, 협박, 총포불법소지로 들어가 52년 출소했으나 그해 다시 총포불법소지와 강도로 감옥에 들어갔다. 59년 출소해 결혼까지 했지만 61년 공갈죄로 쇠고랑을 찼다.

68년 야쿠자 2명 살해와 일본 4대 인질극으로 불리는 후지노미 여관점거로 무기형을 받기 전까지 소년원을 포함해 그가 감옥에 들어간 회수는 5번인 셈이다. 그가 감방의 단골손님이 된 이유는 어디를 가도 뿌리칠 수 없는 한국인 차별이 결정적 이유였다. 이것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교실에서 입은 동심의 상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이른바 ‘도시락 사건’이다.

“찌그러진 도시락에 들어 있는 보리밥을 본 일본 아이들의 심한 놀림에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다.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슬리퍼로 마구 때렸다. 맞은 사람은 나 뿐이었다.”‘돼지발 사건’도 있다. “가난한 탓에 먹을 수 있었던 유일한 단백질은 집에서 구워먹는 돼지발이 전부였다. 돼지발을 먹으며 다가가면 어른들까지도 ‘더러운 조센징, 저리 가’하며 물벼락을 때리던 일을 영영 잊을 수 없다.”

그는 옥중수기를 통해 집밖에서 유일하게 사람대접을 받았던 것은 15세때 처음 찾아간 사창가였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사창가 출입으로 붙들려 간 경찰서에서 한 한국인 청년을 만나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비로서 ‘민족’이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그 청년은 자신이 조선독립을 부르짖고 천황을 모욕했기 때문에 체포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68년 2월20일, 그의 나이 41세때. 마침내 사건은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클럽 밍크스에서 터졌다. 야쿠자는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며 그에게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갖고 있던 총으로 시즈오카현 야쿠자 두목과 그 부하 1명을 사살했다. 살해 후 그는 현장에서 45㎞ 떨어진 후지노미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주인과 가족,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였다.

그는 한국인에게 모욕적인 욕설을 한 경찰관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등 인질극 내내 재일동포들의 차별문제를 부각시키려고 했다. 경찰에 의해 현장으로 불려 나온 어머니는 한복 한벌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인에게 잡혀 더럽게 죽지 말고 깨끗이 자결해라.”

그러나 그의 전쟁은 나흘만에 기자로 위장한 수사관에 의해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그는 혀를 깨물어 자결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인질극을 벌였던 온천여관의 여주인은 자신이 31년간 보관하고 있던 김희로의 시계를 최근 일본을 방문한 박삼중 스님에게 기증했다. 체포당시 김희로가 여관비 대신 내놓았던 시계였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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