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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가 기가막혀"

“청문회 중계 그만하고 영화나 틀어라”“여인네들 불러모아서 얻어낸게 무언가”

옷로비의혹사건과 조폐공사파업유도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끝난뒤 언론사와 PC통신에는 청문회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TV를 지켜본 사람들 대부분은 이번 청문회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는 커녕 정치혐오증만 더하게 만들었다는 표정들이다.

증인들의 태도도 문제지만 국회의원들의 자질은 수준이하였다는 지적이다. PC통신에 오른 청문회 관련 글중에는 국민회의 한영애의원을 비롯한 여·야의원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민회의측만 “이번 청문회로 옷로비의혹은 모두 해소됐고 조폐공사파업유도사건은 검찰수사를 재확인했기 때문에 야당의 정치공세가 모두 허구로 드러났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민원실과 당직자방으로 시민들의 비난전화가 계속 걸려오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국정조사와 청문회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청문회는 미국의회의 모델을 따왔지만 ‘무늬만 청문회’일뿐 실질적인 운영형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엉터리 청문회”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정부기관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등 처음부터 국회가 망신을 당한데다 질문하는 국회의원이 증인에게 ‘혼나는’ 모습이 TV로 생중계되는 등 국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평가다.

또 옷로비의혹사건 청문회에서 사상처음으로 증인들에 대한 대질신문을 벌였지만 엇갈리는 답변만 들었고, 위증여부를 가리지 못한채 무력감만 확인한 꼴이 됐다.

현행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상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국가기밀을 제외하고는 증언및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위증자에 대한 처벌조항도 있지만 여당이 반대할 경우 고발이나 검찰수사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참여연대는 옷로비의혹사건 청문회후 성명을 내고 “온 국민의 관심속에 진행됐지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는 커녕 오히려 국민적인 불신과 의혹만 증폭시킨채 막을 내렸다”고 혹평했다.

우리국회에 청문회와 국정조사가 도입된 것은 88년11월. 당시 여소야대정국에서 국회주도권을 쥔 야3당이 민주화의 열기를 업고 미국식 청문회제도를 들여왔다. 국회 5공비리조사특위가 구성돼 일해재단 설립배경과 기금모집과정을 추궁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개최된 청문회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노무현의원 등 ‘청문회 스타’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같은해 12월에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광주-5공특위 연석회의서 증언하는 등 청문회는 국민들의 기대를 어느정도 충족시켜주었다. 그러나 옷로비의혹사건까지 11년동안 모두 7차례의 청문회가 진행됐지만 매번 낙제점을 받았고 고질적인 병폐들도 전혀 개선되지 않는 등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올초 열린 IMF환란조사특위 청문회는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공동여당의원들끼리 개최됐으며 옷로비의혹사건 청문회는 출석한 여성증인들이 경쟁적으로 눈물을 짜내는 등 한심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경실련 고계현 시민입법국장은 “청문회제 자체의 구조적인 한계와 운영상의 문제점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조사청문회는 예비조사제와 증인소환권 특별검사제 등이 보강되지 않으면 무용지물로 전락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운영상 인사청문회, 정책입법청문회, 조사청문회로 나뉘어 인사청문회와 정책입법청문회에서는 주로 증인들의 답변을 듣는 것에 치중하고 있지만 조사청문회의 경우 막강한 전문위원들이 포진하고 있고 특검제 발동 등 강력한 조사제도가 뒷받침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사청문회만 도입했을 뿐 아무런 조사권한이 없는 실정이다. 고국장은 “최소한 청문회전에 증인들에게 서면답변을 받아 정리한뒤 청문회를 여는 예비조사제만 도입하더라도 의원들의 중복질문 등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문회 개최가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후보시절부터 미국 의회를 예로 들면서 “국회 상임위에서 국정사안에 대해 언제라도 청문회를 열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옷로비의혹사건이나 조폐공사파업유도사건도 여·야간 극한대립끝에 겨우 3일간 청문회가 열리는데 그쳤다.

경희대 임성호교수(정치학)는 “미국 의회도 1800년대에는 청문회 과정에서 여·야의원끼리 주먹다짐을 벌이는 등 파란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운영상의 묘를 살리면서 제도화에 성공했다”며 “우리나라처럼 청문회 개최가 당리당략에 휘말려 자주 열리지 못할 경우 부작용만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또 “특검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국정조사나 청문회는 무용지물”이라며 “우리나라의 제도하에서는 아무리 경력있는 미의회 의원들이 와 청문회를 열더라도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보스중심의 우리나라 정치구조상 청문회나 국정조사는 실질적인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다.

야당시절 의혹사건이 제기될 때마다 청문회 개최를 강력히 요구했던 국민회의 의원들이 집권당이 되면서 증인보호에 급급하고 여당의원들은 충분한 자료준비도 없이 청와대와 관련의혹을 부각시키려 억지를 부리는 등 진상규명보다는 당총재의 눈치를 보거나 당방침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추방 시민연합 윤열중사무국장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당리당략에 앞장서는 한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청문회의 수준은 우리나라 정치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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