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반부패국민연대회장 김성수 주교

08/31(화) 15:46

옷로비의혹사건 국정조사가 TV로 생중계되면서 국민들의 허탈감이 더욱 깊어가던 8월24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는 843개 시민단체들이 모여 반부패국민연대를 발족시켰다. 우리사회에 뿌리박아 밑바닥부터 갉아먹고 있는 부정부패의 척결작업을 더이상 정부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국민들의 뜻이 반영돼 시민단체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대한성공회 전 서울교구장인 김성수(69)주교가 회장으로 추대됐다. 성직자로서 70년대이후 민주화운동과 소외된 이웃들 돕기에 앞장섰던 김주교가 은퇴후 오랫만에 사회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서울 중구 정동 도심 한복판에 한가롭게 자리잡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내 집무실에서 김주교를 만났다. 개량 한복 차림의 김주교는 일흔을 앞둔 나이였지만 정정한 모습이었다.

-건강해보이는데 운동을 하십니까. 교구장에서 퇴직하면 배낭여행이라도 가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배낭여행은 무슨 배낭여행. 요즘 나이가 느껴져요. 집(여의도)에서 이곳까지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면서 걷는 걸로 운동을 대신합니다.”

-교구장을 은퇴하신지 4년만에 다시 사회운동을 시작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오늘 아침에도 아는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일을 맡았다’는 전화를 받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는 몰랐어요. 개인적으로 우리사회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생각에 준비위원장을 맡았는데 회장까지 됐어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순환직 회장을 맡은 이후 두번째예요. 성직자로서 누구든지 용서해야 하는데 혹시 남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겁나고 난감합니다.”

-국민들의 관심도 높은데 앞으로 국민연대를 어떻게 끌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이제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이사회와 사무총장과 상의해서 방향을 잡을 겁니다. 요즘엔 무슨 행사가 있어도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는데 반부패국민연대 출범식에는 사람들이 꽉찼어요. 열기가 느껴지더군요. 국민들이 한마음이 된다면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는 없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부패가 없어져 국민연대가 하루 빨리 간판을 내리는 날이 올거라고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정부패를 체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이건 앞으로 국민연대의 활동방향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제가 지금 정신장애인 직업학교를 만들고 있어요.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20억원을 지원받았는데 공무원들한테 점심 한끼 대접한 적 없어요. 제 집사람도 딸이 중학교 다닐 때 선생님을 만나러 갔는데 촌지를 주기는 커녕 학교 근처 다방에서 선생님한테 커피를 얻어먹었다고 미안해 하더라고요. 우리사회가 부패되기는 했지만 많은 공무원들이 성실하고 건전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찾아내서 널리 알려야 합니다.”

-정부가 이달 중순 부패방지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직자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으니까 국민들이 믿지 않지요. 특히 고위층이나 정치인들이 문젠데요. 그많은 돈을 받고도 정치자금이라고 하면 처벌받지 않으니 국민들이 허탈해 하는 겁니다. TV로 중계되는 옷로비사건을 보면 부아가 치밀더라고요.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이나 국회의원들이나 비슷해요. 지금 IMF가 끝난게 아니잖아요. 대우사태로 나라가 흔들거리는데 그런 문제에 국력을 낭비한다는게 안타깝습니다.”

-서울교구장을 은퇴하신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정신지체아 학교인 베드로학교 명예교장을 지냈는데 졸업식날 아이들이 ‘집에 가기 싫다’고 칭얼거리는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직업학교를 짓기로 마음먹었어요. 정신지체아들은 졸업하면 할 일이 없습니다. 학교다닐 때 공예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정신지체아들이 만들었다고 하면 팔리지 않아요. 3년전부터 직업학교 설립작업을 시작해 올 연말이면 강화도에 학교가 완공됩니다.

정신지체아들도 농사는 지을 수 있으니까 상추도 심고 배추도 심을 겁니다. 그런데 농산물들도 판매가 될지 걱정이예요. 아마 교인들한테 사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아요.”

김주교는 서울교구장을 정년퇴직하면서 받은 얼마되지 않은 퇴직금은 재정난을 겪고 있는 성공회대학과 성공회 서울대성당 증축공사에 모두 희사하고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2,000여평을 내놓아 정신지체아 직업학교인 사회복지법인‘우리마을’을 설립했다.

-퇴직금과 유산까지 내놓으면 어떻게 생활하십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집사람이 이 곳 한켠에 조그마한 정신지체아 유아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 외아들이 연세대 체육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출가한 딸도 3년여만에 쌍둥이를 낳아 할아버지가 된 김주교는 우리사회의 부정부패와 정신지체아에 대한 편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행한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잘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국민이 어떤 국민입니까. IMF도 이겨냈지 않습니까”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김명원·사진부기자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