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분명 살아있는데 믿는 사람이 없어요"

08/05(목) 13:42

신출귀몰로 소문났던 신창원도 잡힌 마당에 아직도 수십년을 두고 거듭되는 미스터리가 있다. 있다 없다는 시비조차 지겹도록 되풀이되고 있다. 직접 봤다는 사람도 있고, 그게 허깨비라는 반대편의 반박도 만만찮다. 바로 한국 야생호랑이 문제. 정말 해마다 철새며 고유종들까지 떠나가는 이 공해천지에 아직 범이 살아있을까? 그러나 이런 질문은 국내 유일의 한국야생호랑이연구소 소장 임순남(43)씨 앞에선 참으로 답답한 우문에 불과하다.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 숱한 호랑이 발자국이며 구체적인 증거까지 제시해도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없다 소리만 하고 있으니 속이 터집니다. 오히려 러시아나 미국쪽에선 신빙성 있는 자료라며 하루라도 빨리 공동조사에 들어가자고 재촉하고 있는데, 국내에선 이제까지 현지조사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은 주장만 반복하니 말입니다. 하두 답답해서 언젠가 그런 학자들앞에 ‘당연히 없을거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있는 사무실에 앉아서 호랑이를 찾는 사람에겐 당연히 안 보일거다’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처음엔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도 해봤는데, 이젠 지쳤습니다. 그 대신 한 시간이라도 더 공부하고, 한 번이라도 더 현장을 다녀오는게 낫습니다. 늦어도 올 11월부턴 공동조사를 시작해야되는데, 이젠 이런 문제로 논쟁만 벌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호랑이 흔적 찾아 4,500시간, 찍은 테잎만 150개

한국야생호랑이에 관한 연구는 사실상 국내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는 분야. 그중에서도 국내학계나 관련 환경당국조차 반대입장에 선 현실에서 그는 어쨌든 홀홀단신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의지할 것이라곤 확실한 물증밖에 없다. 남들처럼 ‘고매한’ 박사학위증도 없는 고졸의 학력에다 카메라맨 생활 약 20년이 경력의 전부인 그는 실제로도 말보다는 현장자료를 먼저 앞세우는 ‘물증우선주의자’. 그동안 전국의 산을 뒤지며 호랑이 흔적을 추적해 찍은 테입만 150개 분량으로, 시간으로 따지면 4,500시간에 이르는 살아있는 자료다. 뉴스에도 심심찮게 보도되던 호랑이 발자국은 기본, 호랑이 발톱에 길게 찢겨진 나무 생채기의 흔적(위로부터 아래까지 연속적으로 나무 껍질이 벗겨지는 것은 체중 200kg이상의 육중한 동물, 호랑이에게만 가능한 것. 곰이나 표범도 나무에 오르긴 하지만 나무를 길게 타고 내려오는게 아니라 ‘탁 탁’ 건너뛰며 내려오기 때문에 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임씨는 말한다)도 다수, 심지어 현장취재중 직접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고 녹음해 놓은 것도 있다. 말그대로 포효의 순간. 여기에 직접 호랑이를 보았다는 목격자들의 증언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 2월 강원도 화천의 한 산속에서 호랑이와 마주쳤다는 주민 4명의 인터뷰는 일면 섬찍하기까지 하다. ‘오전 11시경, 넷이서 함께 산길을 오르다가 조금 앞에 어떤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앉아있는걸 보았다. 웬 노인인가 했는데 문득 고개를 드는걸 보니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였다. 너무도 선명한 모습이라 다들 호랑이라며 놀랐다’는 것.

해외전문가들로 부터 ‘확신’에 가까운 찬사

이러한 자료들을 무기로 그는 세계 유수의 호랑이 전문가들을 한 번에 자신의 응원군으로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유엔 주최 ‘제2차 두만강 환경포럼’을 통해서였다. 이 포럼은 러시아, 중국, 북한을 중심으로 두만강 유역 개발에 따른 환경영향문제를 논의한 자리. 각국의 권위있는 박사들과 전문가들이 모인 이 학회에서 주제발표의 자격까지 얻었다. 연단에 서자마자 거창한 인사도 생략, 그는 곧바로 연단옆에 있는 대형 모니터를 통해 호랑이 관련 자료화면부터 틀었고, 설명을 모두 마치자마자 외국학자들이 몰려들어 질문공세를 퍼붓는 등 그 반향이 대단했다. 동석했던 북한측 참석자들까지 다가와 격려를 보내기도. 행사후엔 러시아 극동지리학 연구소로부터 ‘당신이 제시한 자료는 틀림없는 호랑이의 발자국이며, 이것이 한국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다. 앞으로 공동으로 조사해 볼 것을 제의한다’는 요지의 일종의 ‘증명서’까지 받았다. 빈틈없는 자료준비 끝에 얻어낸 수확이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그처럼 확실한 성과를 얻어낸 비결은 그의 전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임씨는 원래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카메라맨 출신. 서울에서 출생, 73년 고양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81년 당시 문화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에 입사하면서 카메라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4년간 대한뉴스를 제작하다가 85년에 독립,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활동. KBS의 아시안게임 중계방송 기록영화를 시작으로 95년 KBS에서 방송한 화제작 ‘북한산 사계’등 특히 자연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호랑이와의 인연도 그렇게 찾아왔다. 북한산 사계를 보고 난 KBS측에서 ‘그렇게 끈기있는 사람이면 이것도 한 번 해보자’며 제의, 거의 백지 상태로 시베리아 호랑이를 찾아 러시아에서 촬영한 것이 ‘추적 한국호랑이’라는 타이틀로 특집방송됐다. 호랑이에 관해 전연 문외한이었던 그가 서서히 노하우를 축적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현지 호랑이 촬영을 위해 드나들던 러시아 극동지리학 연구소 드미트리 피크노프 박사팀과 야생호랑이 생포전문가 크로클러브 박사 등 당시에 만난 세계적 호랑이 전문가들과는 현재까지도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고 있다.

자신의 프로덕션 이름조차 ‘대호’로 붙였다. 특히 호랑이해였던 지난해엔 발걸음에 더 불이 붙었다. 특별한 외부의 의뢰없이도 자진해 국내 산들을 돌아다니며 실태를 조사해 호랑이 촬영전문 카메라맨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러시아산 호랑이 전문 사냥개까지 공수, 집에서 기르며 현장답사 때마다 데리고 다닐 정도.

“발자국 뿐 아니라 직접 본사람들도 많다”

그가 찾아낸 증거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난해 2월 강원도 화천군 풍산리 해산에서 발견된 ‘pawpad’(호랑이 발자국 중 두툼한 살부분이 있는 아랫부분. 호랑이 발자국 사이즈를 말할 때 통상 이 수치가 국제적으로 통용된다.) 9.5㎝, 보폭 95㎝의 흔적. 외국 전문가들도 확인해 준 호랑이 발자국이다. 그는 이것을 현지에서 직접 확인, VTR로 촬영하는 것은 물론, 몇장의 사진에다 석고본까지 떠왔다. “발자국만 아니라 직접 호랑이를 봤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침 11시쯤 산에 올라갔던 분들인데 한 번 마주쳤던 분들은 그 다음부터 절대 산에 안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만큼 자신이 본 것을 확신하는 거죠.”

조사중 고생도 숱했다. 전국에 몰아닥친 한파로 꽁꽁 얼어붙던 지난해 겨울, 11월부터 2월까지 석달동안 화천 현지의 산 속에 들어가 비닐막사를 짓고 살면서 힘겹게 얻어낸 것들. 닭털 침낭 하나로 영하 30도의 기온속에 버티며 살았다. 물이라곤 매일 근처 개울의 얼음을 깨뜨려 얻는 게 전부. 한번은 한밤중 잠을 자던중 인근 군부대에서 잘못 쏜 대포가 바로 옆에 떨어져 죽을 뻔한 적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를 힘빠지게 하는 건 이런 것들이 아니다. 그렇듯 많은 땀과 시간을 투자해 얻어온 성과들이 정작 국내 학계에선 이유없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 걸핏하면 “호랑이가 아니라 살쾡이거나 표범일 것”이란 엉뚱한 반론에 나중엔 고양이 발자국까지 보태 한꺼번에 나란히 모형을 떠 비교해 보여줬지만 여전히 무반응. 한때는 한국내 호랑이가 없다며 언론에 인터뷰한 두 교수가 알고보니 각각 생쥐전공, 박쥐전공의 학자들이란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고 혼자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싸우는 방법도 간단하다. 그냥 당사자에게 직접 조사방법을 물어보기만 하면 승부 끝. 일전엔 표범발자국과 관련 인터뷰 기사가 실린 교수에게 확인차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지명도 높은 교수답게 처음부터 목소리도 사뭇 무게감이 넘쳤다. 그러나 공손히 “조사를 어디서 어떤 식으로 하셨냐”고 물어보자 일순간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은 식물학이란 사실을 그제서야 털어놓았다. 그래서 다시 질문, 표범분야는 언제부터 연구하신거냐고 했더니 우물쭈물하며 내놓은 대답이 걸작이었다. “원래 우리쪽이 다 그렇지 않냐. 이쪽 하면 저쪽도 같이 하고, 다 그런거지요”라는 것. 그것이 우리 현실이었다. 그로부터 무안을 당한 또다른 ‘유명인사’도 있다. TV의 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면 빠짐없이 단골로 초청되는 이 동물학자는 두만강환경포럼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그의 현장자료도 보는 둥 마는 둥 여전히 호랑이가 없다고 주장하다가 구체적인 조사방법을 밝혀 달라는 임씨의 공개질문에 당황, 궁색한 답변으로 주위 참석자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결국 그날 준비된 참석자들간의 오찬도 거른채 황급히 퇴장했다. 이외에도 씁쓸하다 못해 우울한 갖가지 해프닝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모두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우리 주변엔 국내에 있는 족제비에서부터 저 아프리카 얼룩말에다 북극곰까지 그 많은 것들을 두루 다 전공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른 세계의 동물학자들을 보니 그들중엔 오히려 50년 가까이 평생 종달새 하나만 연구하면서도 “아직 난 종달새를 잘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젠 우리도 한가지씩 철저히 해야지요. 그저 남의 책 읽은 것만 가지고 말로만 연구를 하다간 결국 오래지 않아 세계로부터 멸시당할겁니다.”

“야생호랑이 만날때까지 쫓아다니겠다”

전업 카메라맨일때에 비해 이젠 수입이랄 것도 없는 수입으로 생활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즐겁고 떳떳하다. 내일에 대한 꿈이 있고 다부진 계획도 갖춰뒀기 때문이다. “우리호랑이는 앞으로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지 못하고 있는 통일의 물꼬를 아주 자연스럽게, 인도적으로 열어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우리가 꼭 이뤄야 할 숙제이고, 저는 평생 이 길을 가기로 마음이 서 있습니다. 한편으론 그렇게 호랑이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큰 뜻을 가지고 이 자리에 오게 만들어 줬으니까요. 무엇보다 우리의 사업이 어서 추진돼서 하루빨리 남북한 호랑이가 만나는 날을 기대합니다.”

앞으로도 평생 야생호랑이만 쫓아다닐 임씨지만, 정작 한국호랑이에 관한 한 그의 뒤의 따라잡을 사람은 당분간 아무도 없을 듯 보인다. 이 고집세고 발빠른 사람보다 더 뚝심있는 사람이 나타나기전에는 말이다.

임순남의 이색제안 세가지

지난 95년부터 5년간 세계적 호랑이 및 표범 전문가들과 공동조사, 강원도 및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호랑이 서식실태조사를 벌여온 임순남씨는 국내(남한)의 경우 약 10마리 이상이 현재 살고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강원도 화천군에서는 이미 암놈과 숫놈, 새끼 두 마리의 발자국이 발견되었고 올해 3월, 새끼호랑이들은 이미 중송아지를 잡아먹을 만큼 자란 것으로 추정한다. 주 분포예상지역은 경기도 적성일대와 구리, 강원도 화천, 고성, 설악산, 동해, 원주, 추풍령 황학산, 경상북도 영주, 문경의 태백산 지역을 들고 있으며 이 곳은 그들의 이동통로로 연결돼 있다. 최근에는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과 지리산에도 영역을 표시하고 다니는 것으로도 지적. 그러나 이같은 국내 호랑이들을 방치할 경우 근친번식으로 인해 50년이내 혈통이 끊어질 것을 임씨는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보호대책중 하나로 그는 DMZ(비무장지대)내 호랑이 이동통로를 설치, 남북한 호랑이를 서로 만나게 함으로써 좋은 혈통을 잇게 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이것은 특히 세계에 동시 위성중계하는 한반도의 대 이벤트로 구성, 우리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알리는 ‘통일의 작은 전야제’로도 만들 수 있다는것.

또 DMZ내 야생 사파리공원을 조성, 세계적인 희귀동식물의 보고로 알려진 이곳에 우리 민족의 표상 호랑이를 풀어놓음으로써 상징과 관광사업의 실리를 모두 얻을수 있다는 아이디어. 끝으로, 보이스카웃 잼버리대회와 같은 남북한 호랑이소년단 교류안도 있다. 이는 설악산과 금강산에서 남북한 소년들 약 1,000명이 각각 모이는 대규모 캠프를 개최, 이데올로기없는 ‘동질성 확인의 장’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따뜻한 민족애와 인간적 교감을 나눈 이들이 자라 통일세대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하나씩 준비하자는 임씨의 독특한 마스터플랜이다.

정영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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