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십시일반(十匙一飯)

08/10(화) 16:37

친구는 소리없이 울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서러움이 무엇인지, 죽음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50줄을 눈앞에 둔 나이에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휴대폰으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실직자여서 집에 있기도 거북해 일자리를 찾는답시고 길거리를 헤매는 그는 비상연락망으로 휴대폰을 마련했습니다. 연로하신 아버님이 계셔서 더욱 휴대폰이 필요했습니다.

그에게 휴대폰은 극과 극의 소식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일자리와 비보지요. 바라는 낭보가 아니라 비보가 먼저 온 것입니다. 건강만 있으면 두려울게 없다고 힘내라고 신신당부하던 누나였습니다. 누나는 남편의 병이 깊었는데도 실직한 동생의 마음을 아프게할까봐 숨겼던 것입니다. 동생이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와 할 것 같아서였지요. 그런 누나를 병원에서 만난 친구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원망도 안타까움도 무엇하나 말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연락은 했나.” “연락은 무슨 연락, 부담만 주는데 조용히 보낼란다.” “그래도 매형이 영원히 가는데 친구분들은 알아야 할 것 아이가.” “니 매형 사람만 좋아가지고 돈 떨어진 말년에는 친구들도 끊고 살았다. 돈좀 벌 때는 남주기가 바빴다.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버스비도 남기지 않고 모두 털어 주고는 걸어 집에 오다 통행금지에 걸려 팔뚝에 도장 몇개씩 받고 온 적이 한두번이면 말도 안한다. 그때는 친구들도 선후배도 많았다. 그런 매형이 돈 떨어지니까 사람들을 멀리하더라.

선배 두사람만 만나더라. 한사람이 암으로 입원하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을 찾더라. 갖다와서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한잔, 그렇게 혼자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갔다. 그런데 연락은 무슨 연락. 남한테 부담줄까봐 그렇게 산 사람인데 왜하니. 너도 술 좋아하지. 술좀 줄여라. 니 매형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더니 하는 말이 뭔지 아니. ‘술 한잔 먹고싶다’고 하더라. 기가 차더라. 그래도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숱가락으로 소주 몇목음을 흘러넣어 주었다. 그랬더니 또 말했다. ‘빨리 일어나 일을 해야 할 것인데’라고. 니 매형이 사람좋은 사람으로 잘 나갈 때 나는 독한 년 안됐나. 그래야 애들을 키울게 아니냐.” 누나는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애증이 교차한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누나한테는 조카들이 안있나. 매형이 이렇게 간 것은 누나가 조카들하고 세파를 헤쳐나가는 힘을 주고 갔다고 생각해라. ”

친구는 조카와 조카의 친구들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누나와 계속 말을 나누다가는 조카앞에서 눈물을 쏟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부모팔아 친구산다는 말이 있다. 자식과 함께 하는 시간이 친구와 사는 시간보다 짧기 때문에 부모는 스스로를 판다는 말을 용인하는 것이다. 친구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말이다. 서로 돕고 이해하고 의지하면서 살아야 한다.” 누나로부터 벗어나기위해 말이 많았던 친구는 자신의 처지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스스로 ‘사형선고’내리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발버둥치지만 참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로로 매형이 들어갈 때 누나는 관을 부둥켜 안고 처음으로 통곡했습니다. 질긴 인연의 끝이 서럽고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매형은 한줌의 뼈로 납골당에 앉았습니다. 누나는 지금 생활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친구는 직장에 몸닫고 있을 때 고향의 친구들이 화를 내곤 했다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시면 장례는 누가 치르냐.” 직장에만 매달려 자주 만나지 못하자 화가난 친구들이 농촌에 사람이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던진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남아도는데도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남 자체가 부담을 주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그런 친구를 예전보다 더 자주 찾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친구처럼 실직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의 집중호우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는 수재민들의 마음은 오죽 하겠습니까. 십시일반의 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입니다. 수재민들에게 작은 정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됩니다.

한국일보 수재의연금 안내전화는 (02)724-2233번입니다.

정재룡 주간한국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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