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있는곳에 해병전우회 있다"

08/10(화) 23:16

빨간명찰이 달린 위장복을 입은 채 거리순찰을 하고, 재난현장이면 빠지지 않고 달려와 극성스러울 정도로 나서는 사람들. 틀림없이 현역 군인은 아닌데 하는 행동은 현역 못지 않게 규율성을 보이는 사람들. 해병전우회다.

이번 경기북부 수해 현장에서도 해병전우회 회원들은 어김없이 나타나 인명구조와 구호·복구활동에 나섰다. 순수 친목·봉사활동 단체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관변·우익단체 같은 인상을 풍기기도 하는 해병전우회는 어떤 단체일까.

국내외 75만여명의 매머드급 단체

해병전우회는 해병대 예비역들이 모여 만든 친목단체. 과거 지역별 동우회 형태로 존재하다 88년 4월8일 현재의 해병전우회로 정식 창설됐다. 현재 총회원수가 국내 75만여명, 해외 7,000여명에 달하는 메머드급 단체다. 중앙회 산하에 특별시·광역시·도단위의 연합회 15개, 시·군·구의 지회 219개, 기동 및 환경봉사대 134개 등 총 342개 단체가 조직돼 있다.

내부 등록단체로도 기수별 67개, 병과별 15개, 대학연합 및 직장단체 36개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해외지회도 33개에 이른다. 해외지회는 미국(26개 지회·4,500여명), 캐나다(3개·500여명)를 비롯해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파라과이 등에 각각 1개씩 조직돼 있다. 해외 동포가 있는 곳에는 거의 해병전우회가 있다고 보면 된다. 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 당시 코리아 타운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채 자체방어에 나섰던 해병 전역자 60여명도 역시 미 서부지구 해병전우회 회원들이다.

해병대를 제대했다고 무조건 전우회에 소속되는 것은 아니다. 제대후 거주지에서 등록을 해야만 회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총재(회장)는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성은 전 해병대 사령관(75)이 맡고 있다.

해병전우회가 방범순찰과 재난구호 등 자원봉사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전우회의 장상규 기획실장(해사17기·예비역 대령·61)은 ‘범죄와 무질서를 추방하며 민주시민 정신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힘껏 기여한다’는 전우회 헌장에 따른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장 실장은 “이번 경기북부 수해 지역에도 문산, 파주, 동두천, 연천, 철원, 의정부 지회에서 회원들이 거의 총동원됐다”고 밝혔다. 각 지회에서 보유하고 있는 고무보트와 스쿠버 장비 등을 동원해 인명구조와 환자 및 구호품 수송, 재해복구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투철한 위계질서와 단결심으로 뭉쳐

해병전우회의 활동영역도 다양하다. 장 실장이 소개하는 활동분야는 대체로 다섯가지. ▲행정기관, 검찰, 경찰 등 지역 유관기관과 협조하에 벌이는 방범기동순찰 ▲교통정리 및 질서유지 ▲국가재난시 인명구조와 재해복구 ▲자연환경 보호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이 그것이다. 중소도시 교통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해병전우회 부스는 대체로 방범기동순찰대 사무실이라고 한다.

중앙회의 이춘옥 조직국장(병 14기·예비역 준위·66)은 전우회와 지역 경찰의 손발이 무척 잘 맞는다고 말했다. 인력이 모자라는 경찰이 협조요청을 해오고 지역 전우회도 적극적으로 이에 응한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같은 휴가철 전우회의 활동은 더욱 바빠진다고 한다. 해변 휴양지등에서는 전우회 회원들이 교대로 거의 상주하면서 인명구조와 치안의 한몫을 담당한다는 것.

장상규 기획실장은 해병 전우회가 이같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해병정신으로 무장한 해병대 고유의 응집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병정신으로 상관을 존중하고 부하를 사랑하는 투철한 위계질서, 가족정신, 희생정신, 단결심을 들었다. ‘한번 해병대면 영원한 해병대’라는 구호는 전역자에게도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머리가 희끗한 회원들간에도 해병대 특유의 기수(期數)별 질서가 확실히 통한다고 한다. 먼저 입대한 사람이 선배로서 깍듯이 대접받는다. 구호활동 현장에서 나타나는 규율성도 기수별 질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정부기관과 협력, “관변단체는 아니다”

해병전우회의 방대한 규모나 튼튼한 조직력 등 때문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나 선거 때 등에는 정치권, 특히 여권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출범 이듬해인 89년 전우회의 치안활동을 놓고 우익행동대로 변질될 것을 우려한 적법성 시비가 있었다. 93년에는 당시 민자당 국회의원이었던 박구일 전 해병대사령관이 국민당으로 당적을 옮기자 중앙회 차원에서 “의원직 사퇴”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전국구 금배지를 달아준 민자당을 배신한 것은 해병대의 신의정신을 저버린 행위라는 비난이었다. 당시 민자당은 집권당이었다. 94년에는 김일성 사망 후 ‘조문파동’당시 전우회는 “조문발언으로 국민의식을 오도하는 일부 정치인을 이적죄로 단죄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장 실장은 “전우회의 활동 성격상 유관 정부기관과 협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변단체라는 것은 전적으로 오해”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전우회의 운영자금이 전적으로 내부에서 조달되고 있다며 독립성을 강조했다.

전우회의 재원은 기금과 회비, 성금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장 실장의 설명이다. 중앙회의 운영자금은 이미 조성돼 있는 기금의 이자(기금의 조성경위와 성격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상임위원(70명) 및 정책위원(500명)이 내는 회비와 성금으로 충당된다. 연합회와 지회는 회원들이 매월 1만5,000원씩 내는 회비와 성금으로 운영된다. 연합회와 지회의 행사와 발대식 때는 중앙에서 약간의 격려금이 내려간다고 한다.

그러나 전우회도 반공및 우익성향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장 실장은 “해병 전우회가 국방의 최일선에 섰던 해병대 전역자들이 모인 단체인 만큼 누가봐도 우(右)지 좌(左)는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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