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움직이는 '베이다이허 정치'

08/10(화) 22:02

중국 지도부가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예년 처럼 당정군(黨政軍) 고위 지도자들이 발해만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 모였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도 7월말 “모든 지도력은 베이다이허에 있다”면서 현지로 떠났다.

하지만 이들이 피서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지도부는 약 3주간의 휴양기간을 이용해 주요 정책에 대한 사전 조율작업을 벌인다. 건국 50주년을 맞는 올해의 베이다이허는 중대 현안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 같다. 사회문제로 비화한 파룬궁(法輪功)문제에서 부터 디플레이션 심화로 인한 개혁·개방정책의 문제점, 대미관계 조정, 양안(兩岸)갈등 등 난제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현안마다 보수-개혁 세력간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회생책 강구

중국 경제의 당면목표는 디플레극복으로 요약된다. 중국은 소비자 물가가 21개월째 하락, 전형적인 디플레에 빠져있다. 6월에 예금금리를 0.75% 내렸지만 소비는 전년동기 대비 5.4% 늘어난 반면, 개인저축률은 무려 18.5%나 증가했다. 체제변화의 불확실성에다 체감경기 악화로 국민들이 돈을 묻어 두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도 도시지역은 10%, 오지는 30%에 이른다.

서방 경제학자들은 이대로 가면 지난해 7.8%였던 경제성장률이 올해 4%대로 낮아지고 중국경제가 장기적 내리막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78년 덩샤오핑(登小平)이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한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경제 사령탑인 주룽지(朱鎔基)총리는 이번 회의에서 금리 추가인하, 이자소득세(20%) 신설, 대규모 국채 발행, 국영기업 개혁안 등 경기부양책을 추인받을 전망이다.

특히 우리에게도 민감한 런민삐(人民弊)의 평가절하 여부도 논의된다.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 평가절하돼 있어 중국산 수출품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아시아 국가들로 부터 저가의 수입품 유입이 늘어나면서 국내적으로 공급과잉과 가격인하를 유발, 디플레를 심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국이 금리인하 등을 통한 내수진작에 골몰하고 있는데다 최근 일본 엔화 강세가 이어져 위엔화 평가절하는 당분간 유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미(對美)관계 복원

점점 험악해지고 있는 대미관계 회복이 외교부문의 최대 쟁점이다. 한동안 밀월을 유지해 왔던 미·중 관계는 ▲5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공군기의 유고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사건 ▲미국의 핵기술 절취 의혹제기 등으로 급격히 악화한 이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지연 ▲중국 신용도 강등 ▲대만의 독립주장 등 악재가 이어졌다. 더구나 국민들의 민족감정에 편승, 지도부내에서 점점 보수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지도부는 미국과의 마찰로 인한 피해를 더이상 방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지난달 30일 대사관 오폭사건의 배상문제가 타결된 것이 그 신호탄”이라면서 “장쩌민 주석은 보수파로부터 대미관계 개선을 위한 합의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다음달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WTO가입 문제가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장경제개혁을 지향하는 장쩌민의 지도력도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양안(兩岸) 문제

마오쩌둥(毛澤東)이 공산혁명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과 홍콩반환을 성공시켰다면 장쩌민에게는 대만문제 해결이 역사적 과제다. 하지만 50년 숙제였던 이 문제는 중국과 대만 모두에게 민감한 국내문제일 뿐 아니라 미국 등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힌 국제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풀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국 지도부는 이번 회의에서 리덩후이(李登輝) 대만총통의 양국론(兩國論)으로 촉발된 양안갈등 해소를 위해 무력충돌 등 과격한 결정을 내놓기 보다는 ‘하나의 중국’원칙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머물 전망이다. 즉 정·경분리를 통한 강온양면 정책을 강화한다는 것. 중국은 최근 양안 접경지역 공군에 선제 공격권을 부여하고 대만해협에서 무력시위를 벌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만 업계의 대륙투자를 권장하고 투자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이 양안을 긴장시키는 것은 내부 단속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동준·국제부 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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