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메이저 챔피언 '무럭무럭'

08/31(화) 15:34

`한국에는 남자 골프도 있다.’

99US아마골프선수권서 준우승을 차지한 고교생 김성윤(17·안양 신성고2)의 쾌거가 ‘고사(枯死)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 남자 골프에 새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97년말 IMF 한파 이후 한국 남자골프는 그야말로 역대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스폰서를 맡고 있던 대기업들이 경영난으로 하나둘씩 손을 떼는 바람에 예정됐던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는 사태를 빚었다. 간신히 대회 취소는 면했다 하더라도 총 상금액을 대폭 삭감, 프로 골프계는 위축될대로 위축됐다.

다행히 여자는 지난해 ‘박세리 특수’, 그리고 올해는 ‘슈퍼땅콩’ 김미현의 선전에 힘입어 전성기에 버금가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는 올해들어 국내에서 벌어진 대회만 비교해봐도 남녀간의 ‘빈부격차’가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상반기 여자대회는 총 5개가 열려 총상금 규모가 5억5,000만원에 달했다. 반면 남자대회는 이달말 끝난 부경오픈을 포함해 단 3개대회(총상금 6억원)에 불과했다. 올해 하반기에 예정된 대회도 여자는 8개 대회이나 남자는 절반에 불과한 단 4개 뿐이다. IMF 이전 국내 남자골프투어가 여자투어 규모의 약 3배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형편없이 줄어든 것이다. 이로인해 상당수 프로 골퍼들이 대회 출전이라는 본연의 일은 못한 채 당장의 생계 마련을 위해 개인 레슨 코치로 나서야 하는 서글픈 현상이 빚어졌다. 이것은 자연히 국내 남자골프의 전반적인 경기력 저하를 가져오는 악순환의 단초를 제공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상당수 남자 프로들은 척박한 국내 무대를 털고 해외 무대로 나가는 엑소더스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절박한 현실에서 ‘샛별’ 김성윤의 등장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 남자골프 가능성 세계에 알려

이제 남자도 당당히 세계 무대에서 톱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 골프의 기량이 향상했다는 인식을 팬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올해 들어 국내 경기가 살아나는데도 대기업 스폰서들이 남자 대회는 외면하고 여자쪽으로만 몰리는 것도 바로 이런 경기력의 수준차가 주 원인이었다.

특히 김성윤이 출전했던 제99회 US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는 타이거 우즈(24·미국)가 일약 세계적 ‘월드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전통과 권위의 대회여서 더욱 의미가 컸다. 우즈는 이 대회를 최연소(당시 18세)로 우승한데 이어 대회 3연패까지 차지하면서 ‘골프 천재’로 주목을 받았다. 김성윤이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17세로 우즈의 최연소 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으나 결승에서 데이비드 고셋에 져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김성윤은 17세의 고교생답지 않은 침착함과 발군의 기량을 과시해 한국 골프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한국 골프가 김성윤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으로 다진 탄탄한 기초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김성윤은 프로 골퍼인 아버지 김진영(52)씨와 골프 연습장을 운영하는 어머니 최종순(49)씨 사이 3형제중 막내. 그 덕에 연습장은 자연히 그의 놀이터가 됐고 골프채는 그의 장남감이 됐다. 3형제중 한명을 자신을 잇는 골퍼로 키우고자 했던 아버지는 김성윤에게서 그런 재능을 발견, 초등학교 4년때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를 사사하기 시작했다.

골프에만 매달리는 반쪽선수 되지 말아야

골프 로열 패밀리속에서 자란 김성윤은 서원중 3년때 각종 전국대회를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고 그해말 역대 최연소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때부터 김성윤은 한국프로골프협회 부회장인 김승학프로가 운영하는 전문적인 골프 매니지먼트사인 KGM 사단에 입문, 김영일 프로로부터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며 ‘미래의 메이저 챔피언’으로 수업을 쌓아왔다. 지난해 고교 1년때에는 98매경오픈과 98슈페리어오픈에서 아마추어 1위를 차지, 조만간 프로를 넘 볼 ‘무서운 아이’로 주목받기도 했다.

김성윤의 특징은 ‘아기 코끼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인 176㎝ 90㎏의 든든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300야드의 드라이버샷. 또 큰 체격에도 불구하고 스윙이 부드러워 샷의 기복이 적다. 여기에 이번 대회에서 극찬을 받았듯 고교생답지 않은 차분한 경기 운영도 큰 장점이다.

지난 6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김성윤은 우선 미국 대학 진학을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2002년께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김성윤은 이번 대회 준우승으로 국내선수로는 70년 한장상프로 이후 두번째로 내년 미국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벌어지는 US마스터스대회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다.

그러나 김성윤의 앞날에 장밋빛 탄탄대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마지막 목표가 세계 최정상인 만큼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한국대학골프협회 회장인 박영민 고려대교수는 “김성윤은 지금까지 성적이 말해주듯 기술적인 부문에서는 당장 프로로 전향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한가지 변수는 이런 기량을 뒷받침해 줄 정신적인 부분이 아직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국내 어린 선수들은 대부분 공부는 등한시하고 골프 기술 연마에만 집중해 주니어까지는 서양과 대등하게 나간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세계 무대에 서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지적인 면을 채워나가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지난해부터 프로 넘볼 ‘무서울 아이’로 주목

사실 국내 아마골프계는 4~5년전부터 소리없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 현재 국내에서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프로 골퍼 지망생이 200~300명에 불과했던 10년전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난 3,000여명에 이른다. 예전 한때 일부 부유층의 대학 진학 도구로 활용됐던 골프는 이제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보편화했다. 특히 예전과 같은 주먹구구식이 아닌 해외 유학이나 전문 스쿨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훈련을 쌓아 기량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 도달해 있다.

그러나 박교수가 지적했듯 이들 대부분이 정규 학교 수업은 제쳐 놓고 골프에만 매달리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박지은이나 타이거 우즈같은 대선수들도 학교 공부를 게을리하면 당장 대회 출전을 제한할 정도로 학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대다수 선수들은 특기자로 진학해 공부는 제쳐두고 단순히 기술 연마에만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골퍼로서 장기적으로 대성하기 위해선 학업도 함께 병행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한국 프로골프의 질을 한단계 더 끌어올리는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모처럼 나온 ‘될성 부른 꿈나무’ 김성윤이 ‘남자 박세리’로 대성하기 위해선 바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마나 만큼 배양할 수 있는냐에 달려 있다고 할수 있다.

송영웅·주간한국부기자 herosong@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