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에 가면 삶의 원류를 만난다

08/05(목) 16:59

태백으로 가는 길은 즐겁다. 서울서 5시간안팎의 긴 여정이지만 길 양옆으로 펼쳐지는 짙은 녹색의 아름다운 경관은 한눈 팔 여유를 주지 않는다. 특히 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영월에 이르는 88번 지방도로, 석항에서 상동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변은 백두대간 골짜기의 운치를 과시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을 끼고 돌면 깎아지른 고개가 나타나고, 꼬불꼬불 숨을 몰아 언덕에 올라서면 구름 머금은 연봉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주천강, 선돌, 장릉, 동강, 수라리재, 옥동천, 솔고개, 백운계곡 등 감추어져 있던 명소들이 계속 이어진다. 태백선 철길이 도로와 나란히 뻗어있다. 기차라도 만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린다면 더 행복하다.

그 즐거움의 정점에 해발 800여㎙의 고원도시 태백이 있다. 잘 나갔던 탄광도시로 흥청망청 질펀했던 과거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강원도의 어느 청정지역 못지않은 단아함을 되찾았다.

‘민족의 영산’ 태백산(1,567㎙)은 태백시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굽어보며 우뚝 솟아있다. 산 아래에는 민족의 시조 단군 왕검의 영정을 모신 단군성전이 있고 꼭대기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다. 정상에 하얀 바위가 모여있어 태백(太白)이라는 이름을 낳게 했다는 문수봉도 보통 봉우리가 아니다. 사람들이 돌을 쌓아 커다란 탑을 만들어 놓았다. 신비롭고 엄숙한 분위기가 산 전체를 감싼다.

1,500㎙가 넘는 높은 산이지만 오르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이미 800여㎙를 주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곳은 영험하기로 손꼽히는 기도터여서 정성을 드리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긴 행렬을 이루며 산을 탄다. 허리가 휠 정도로 나이 든 할머니도 쉬엄쉬엄 정상의 천제단까지 기어코 오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샘물이라는 용정, 조선조 비운의 왕인 단종의 넋을 달래는 단종비각, 전국에서 풍채가 가장 좋다는 주목의 군락이 발길을 멈추게 하는 태백산의 명물들이다.

태백산의 계곡물은 대부분 바위 밑을 흐른다.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물줄기는 눈으로 볼 수 없다. 유일하게 물을 볼 수 있는 계곡이 당골계곡이다. 그래서 당골계곡은 태백산의 베이스캠프가 됐다. 단군성전, 기도터는 물론 식당, 숙박시설이 이 곳에 밀집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올 여름 피서지로 추천한 곳이지만 사실 물 속에 들어가 강수욕을 즐길만큼 넓은 계곡은 아니다. 아이들을 유혹할만한 곳은 석탄박물관. 탄광의 역사와 광원들이 흘린 땀을 한 곳에 집약시켜 놓았다.

태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검용소와 황지이다. 검용소는 한강,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우리 민족의 풍요는 이 곳에서 시작한다. 태백은 민족의 정신은 물론 우리 삶의 원류인 셈이다.

태백에 가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 인근 고원지역에서 기른 소와 돼지는 태백의 도축장을 거친다. 육질이 연하고 부드러워 인근 사북이나 삼척 지역에서 고기를 먹기 위해 일부러 태백을 찾기도 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모두 맛있고 어느 식당을 찾아도 상관없다.

권오현 생활과학부 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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