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나는 아줌마, 마음은 아직 청춘

08/10(화) 23:11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어가는 두 대들보 정은순(29·삼성생명)과 전주원(28·현대산업개발).

포지션은 센터와 가드로 다르지만 항상 포지션앞에‘아시아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아줌마’선수들이다. 연봉에서도 두 선수는 국내최고액인 7,000만원씩을 받고있다.

그리고 “기량이 아무래도 떨어질텐데”하고 우려하는 팬들의 인식을 비웃기라고 하듯 이들은 결혼후 한층 농익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한빛은행배 99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에서 정은순은 3일 여자프로 사상 첫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다. 트리플더블(Triple Double)은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를 모두 2자리수 이상 기록하는 것으로 남자선수중에서도 손으로 꼽을 정도. 특히 센터로서 한게임에서 어시스트 10개를 넘기기란 극히 힘들다.

다음날 전주원은 첫 기록을 내준데 대해 자존심이 상한 듯, 한빛은행과의 경기서 15득점 11어시스트 8리바운드를 기록, 트리플 더블에는 실패했지만 언제나 기록달성이 가능하다는 인상을 팬들에게 심어줬다.

정은순은 지난해 3월 세살 연상의 회사원 장재호씨(32)와 화촉을 밝히고 서울인근에 조촐한 신방을 차렸다. 하지만 엄연한 국가대표 신분이라 일반 신혼부부보다는 훨씬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정은순이 남편과 함께 잠에서 깨는 시간은 한참 단꿈에 젖어있어야 할 새벽 4시40분. 함께 아침운동을 한뒤 남편이 모는 차를 타고 강남합숙소에 도착, 훈련을 마치면 오후 7시30분쯤 다시 남편이 모시러(?) 온다.

정은순은 “남편이 너무 가정적이고 나만을 위해준다”고 자랑한다. 시합이 있어 보름쯤 집을 비우면 매일 2,3차례 전화를 걸어와 컨디션은 좋은지, 식사는 잘하는지를 묻는다. 잠들기 전에 사랑을 확인하는 전화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정은순이 사랑스럽다고 밝힌 장씨는 국가대표 상비군출신 유도선수로키는 정선수보다 3㎝가 큰 188㎝, 몸무게는 90㎏가 넘는 거구다.

올초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정은순이 훈련도중 근육경련을 일으켜 코트에 쓰러졌다. 후배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어떻게 정은순을 업고 병원까지 데려가나 난감해 하고 있을 때 평소보다 일찍 나타난 장씨가 아내를 가볍게 둘러매고 총총히 사라졌다. 후배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거구를 가볍게 다루는 장씨를 보고 감탄했다. “남편은 정말 잘 구했네”라는 멘트와 함께.

정은순은 “결혼전에는 아무요리도 하지 못했지만 책을 보고 친정에 물어보고 해서 지금은 오징어볶음과 찌개요리를 잘한다”면서 “개인사정으로 운동을 그만둔 남편이 ‘그렇게 농구할려면 때려치라’고 독려해 요즘은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말한다.

1년 후배로 라이벌팀에 몸담고 있는 전주원도 지난해 12월 결혼했다.

과감한 레이업, 필요할 때 터지는 3점포 등 남자농구선수 허재를 연상시키는 전주원은 그러나 알고보면 무늬만 주부인셈.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오자 마자 미국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중인 남편 정영열(29)씨는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전주원은 살림집도 없이 여전히 서울 종로구 청운동 현대농구단 숙소에서 후배들과 침식을 해결하고 있다.

전주원은 “남편과 함께 보낸 시간이 신혼여행후 시댁에서 보낸 이틀이 전부여서 평소 익혔놨던 김치볶음밥 제조실력도 발휘하지 못했다”고 억울해하고 있다. 전주원은 “사실상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 않아 실력이나 플레이스타일이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 “그러나 엄연한 주부여서 미혼선수들과 달리 다른데 신경을 안쓰다보니 집중력은 향상된 것 같다”고 말했다.

2년전 선배의 소개로 만나게 된 남편 정씨는 당시 전주원이 농구선수인지도 몰랐을 만큼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었다. 선수출신도 아니지만 전공은 공교롭게도 체육교육학이어서 현역선수에 대한 이해가 높아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와 졌다.

전주원은 “국제전화를 많이 하다보니 매달 전화료가 만만치 않게 나와 걱정”이라고 주부티를 내면서도 “시합때는 오로지 시합만 생각하려고 애쓴다”고 프로다운 면모도 나타냈다.

그러나 이들 두선수는 조만간 은퇴할 예정이어서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정은순은 내년 8월 시드니올림픽을 끝으로 코트를 떠날 계획이고 전주원은 아직 정확한 은퇴시기를 못잡고 있지만 올림픽때까지 농구를 계속할 생각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정은순은 “딸을 낳고 싶고 재능이 있다면 딸에게도 농구를 시키겠다”고 말하면서 전주원에 대해서는 “머리가 좋다. 현역시절 가드로서 선배들을 리드하기 힘든데도 이 역할을 훌륭히 해낸 재능있는 선수”라고 추켜세웠다.

정은순에 대해 “몸관리를 잘해 후배의 귀감이 되고 있다. 누가뭐래도 국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센터로 진정한 프로답다”고 화답하는 전주원은 장래계획에 대해서는“공부를 다시해 지도자로서의 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농구에서 가드와 센터는 눈짓만으로도 다음 동작을 읽어내야 할 만큼 가까와야 하는 사이. 둘은 평소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경기에서 맞붙게 되면 한치도 양보않고 불꽃접전을 벌일 만큼 냉정한 프로의 길을 걷고 있다.

결혼만 하면 몸관리를 포기, 뒷전으로 물러서는 여자농구계의 관행을 깨고 결혼은 전혀 장애가 안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두 선수는 그것만으로도 최고대접을 받을만 하다.

이범구·체육부 기자 lbk1216@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