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가톨릭 교단의 숨겨진 역사

08/05(목) 13:43

‘셀라 스테르코라리아’

유럽의 암흑시기인 중세때 교황을 선출하는 시험중에는 새로 선임될 교황이 정말로 남성임을 확인하는 시험이 있었다. 즉, 교황으로 선출된 사제는 요즘의 변기와 비슷한 ‘셀라 스테르코라리아’로 불리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성기를 보여줘 남성임을 확인받아야 했다.

‘여교황 조안(A Novel Pope Joan)’은 이같은 ‘의자시험’이 나오게 된 숨겨진 역사의 한 단면을 파헤친 소설이다. 가톨릭 신앙의 핵인 교황. 그 지존의 자리를 조안이라는 일개 시골 여성이 차지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 ‘여교황 조안’이다. 저자인 도나 울포크 크로스(Donnsa Woolfolk Cross)는 그 자신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여교황의 존재를 굳이 소설로 표현한 이유에 대해 “남성중심의 가톨릭 교단이 여교황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조직적으로 파기해 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주인공 조안은 완고한 하급 성직자인 아버지로부터 온갖 비인간적 대우를 받는다. 그녀가 종래의 여성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남성의 영역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채우지 못한 조안은 공부의 길을 찾아낸다. 죽은 둘째 오빠 존의 신분으로 가장, 남성들의 영역인 풀다의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수도원에서 마음껏 공부하며 이름을 떨치던 그녀는 정체가 발각될 위험에 직면하자 목숨을 걸고 로마로 탈출, 로마의 안글로름 스콜라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조안은 수도원에서 통달해놓은 의술 덕분에 교황의 주치의로 발탁돼 교황청에 입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그녀는 권력욕은 전혀 없었다. 다만 ‘남자든 여자든 인간은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합리적이고 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일 뿐이었다. 교황직을 두고 귀족세력간에 물밑 암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초연하게 자신의 임무만을 수행하던 그녀의 헌신적인 활동에 감명받은 서민들의 추천으로 새 교황에 지명된다. 교황이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야심을 펼쳐나가고 그 과정에서 귀족세력들과 빈번하게 마찰한다. 여성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권위의 상징인 교회 재건사업을 제쳐두고 로마백성과 안보를 위한 사업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여교황 조안의 운명은 소녀시절에 사랑에 빠진 제롤드 백작과의 하룻밤 잠자리로 순식간에 변하게 된다. 홍수에 잠긴 가난한 백성을 구하기 위해 구조작업에 나선 길에 갖게 된 일생의 단 한번뿐인 우연한 잠자리에서 임신을 하게 되고 그녀는 산통중에 사망하게 된다.

저자는 ‘여교황 조안’을 소설로 형상화하기 위해 7년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저자는 또 단순히 상상력을 동원해 호소하지 않았다. 한 편의 긴 드라마와 같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들이 실제 사실이고 관습, 정서, 생활면모들도 철저히 고증되어 있다.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의 나열이 될 수도 있었지만 테마 자체가 워낙 극적이고 저자의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과 구성력으로 글읽기의 재미가 만만치 않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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