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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스타일과 개성에 대한 경배와 우상

“기초가 튼튼해야…”

어린이 학습지나, 영양제를 광고할 때 단골로 쓰는 ‘밥 먹으면 배 부르다’같은 지극히 당연한 말. 부실 건축으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내려앉았을 때, 화려한 외양보다 이 말의 소중함을 새삼 강조해야 했다. IMF로 경제가 휘청거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는‘빨리’와 ‘큰 것’과 ‘빛 좋은 개살구’의 우상과 경배가 있다. 영화가 조금만 색다르거나 기발하면 단번에 뛰어난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그렇게 한번 우상이 되면 그는 영원히 추앙받는다. 그런 스타일리스트를 비판하면 문화를 모른다. 그를 경배하는 자만이 진정 문화를 알고, 예술을 알며, 그것을 즐길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 우상의 무게에 짓눌려 우리가 허상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비판하지 못할 때, 아니면 기본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할 때 문화 역시 어느날 성수대교처럼 내려앉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떠든다. ‘축복’이란

말까지 나왔다. ‘위대한 작가주의의 승리’라고 추켜 세운다. ‘왜 지금까지 그가 이런 액션물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환호한다.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개가’‘한국 SF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칭찬도 마다하지 않는다. 올 여름 한국영화는 이런 미사여구를 들었고, 그것을 만든 감독은 위대한 승리자로 추앙 받았다.

‘이재수의 난’은 흥행참패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새로운 스타일로 해석한 ‘명작’으로 박광수 감독은 상업성에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큼 뛰어난 ‘작가 감독’이 됐다. ‘용가리’역시 한국영화 수출의 역사를 의 새로운 장을 연, 이제는 우리도 당당한 SF물을 갖게 해준 ‘대작’으로 심형래는 21세기 한국영상산업을 이끌어갈 ‘신지식인 1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또 어떤가. 시(詩)보다 상징적이고 그림보다 아름답고 정밀한 벌써 ‘올해 최고의 영화’로 결정됐고, 이명세 감독은 이 땅의 영화가 예술임을 증명해준 ‘스타일리스트’가 됐다. 시각적 화려함에 빠진 이같은 환호는 다분히 선동적이다. 그것은 관객의 냉정한 눈을 흐리게 하고, 영화를 한곳으로만 몰아가게 하며, 감독을 오만과 자아도취에 빠지게 만든다. 만약 우리의 평가대로 영화가 축복이고 완벽이라면 외국인들의 눈에도 그렇게 비춰질 것이다. 영화만큼 세계 공통의 문화언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위대한 작가의 영화 ‘이재수의 난’은 칸에 이어 베니스영화제에서도 거절당했다. 대신 주로 신인들이 참가하는 로카르노영화제 경쟁에 얼굴을 내미는 초라한 모습이다. 빼어난 영상화가, 완벽한 스타일리스트의 작품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역시 베니스는 거절했다. 겨우 비경쟁인 벤쿠버영화제에 나간 것을 자랑한다. 그 비경쟁 영화제란게 뭔가. 부산이나 부천영화제가 보여주듯 이 영화 저 영화 마구 불러들여 한번씩 상영하는 영화 슈퍼마켓에 불과하다.

해외영화제가 우리영화를 볼줄 몰라서가 아닐 것이다. 가장 일차적인 ‘기본의 문제’일 것이다. 만약 그들이 우리가 외면한 허술한 기초를 발견했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이재수의 난’을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가. 영화는 커지고 시각효과는 할리우드를 따라잡는데 정신을 쏟거나, 뭔가 색다른 스타일만을 추구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여전히 시나리오는 엉성하고 구성과 연기는 설득력이 없다. 정작 ‘이재수의 난’에 먼저 필요했던 것은 역사를 영화란 새로운 언어로 표현할 때의 기본 틀이었고, ‘인정사정 볼것 없다’는 최소한 기본이 갖춰진 플롯인지 모른다.

대중적 환호속에 우리영화는 기본을 무시하며 달린다. 당당하다. 마치 쇼를 보듯 산만하고 감정의 연결이 안되는 구성의 ‘자귀모’도 옛날 같으면 엄두도 못낼 컴퓨터그래픽과 특수효과를 내세우며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시각효과도 영화의 기본이 갖춰지지 않으면 예술이 아닌 그야말로 ‘기술’에 불과하다. 스타일, 멋, 테크놀로지에 앞서 다시 기본을 생각할 때다.

이대현·문화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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