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가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의 쇼에 참석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스트리트매거진 ‘Paper’ 에 실린 뉴욕컬렉션 관련 기사의 첫 문장이다. 오스카 드 라 렌타가 누구인지 미국에서는 설명이 필요없는 정상의 디자이너지만 이 기사 한 줄만큼 그의 명성과 패션계에서의 위치를 확인해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사실 퍼스트레이디는 패션디자이너들이 가장 탐내는 모델인지도 모른다. 여성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퍼스트레이디가 누구 옷을 입었다는 것만큼 큰 선전이 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우아함과 자기연출력을 겸비한 재클린 케네디가 대표적인 경우. 힐러리는 그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패션으로 미국인의 이목을 끄는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그동안 나이가 많은 퍼스트레이디들이 옷입기에 보수적이어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면 50대로 창창한 힐러리는 단호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아름다움으로 패션리더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것.

힐러리는 얼마전 ‘보그’ 지의 표지에도 등장했다. 그의 등장에 대해 편집장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다. 그녀는 패션지 표지모델에 합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고 말하기도 했다. 중년여성의 기품을 보여주는 단아한 모습의 표지사진은 섹스스캔들로 시끄러운 남편에 대한 조용한 항의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고전적 양식의 소파에 깃을 편 드레스는 바로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작품. 힐러리는 97년 취임식 파티 때도 그의 옷을 입었다. 실용성과 일상성을 지향하다 보니 오프타임패션(Off-time Fashion, 직장 밖 패션)에서는 유럽쪽에 늘 열세였던 미국 패션계가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바로 오스카 드 라 렌타 덕분이다.

도미니카 출신인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 디자이너로 대성하는 데는 상류층과의 교분이 큰 작용을 했다. 마드리드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발렌시아가, 카스티요 밑에서 일을 하던 그가 62년 미국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화장품계의 거물인 엘리자베스 아덴. 그 밑에서 디자인을 하면서 미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옷은 단정한 실루엣에 정교한 장식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몸에 꼭 끼는 상의에 보석을 곁들이거나 상의와는 대조적인 색채의 넓은 스커트로 연결한 이브닝드레스는 상류사회를 매혹시킬 만 했다. 그가 특히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것은 발렌티노 지방시 등 유럽의 디자이너를 선호하던 재클린 케네디가 그의 옷을 입으면서부터이다. 올레그 카시니(Oleg Cassini) 빌 브래스(Bill Blass) 조프리 빈(Jeofrey Beene) 등 당대 미국의 디자이너들이 유럽의 디자이너와 같은 정도의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도 미국인의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로 자리잡은 재클린 덕분이었다. 국내에서도 퍼스트레이디는 최고디자이너의 옷을 입는다. 이희호 여사의 경우 양장은 파리 오뜨 꾸띄르에서 활동하는 신혜정씨과 앙드레 김의 옷을, 한복은 김예진씨의 옷을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보수적인 한국풍토에서는 퍼스트레이디와 디자이너의 친분은 기대할 형편이 못 된다. 다만 그가 11월초 한국패션협회 주최로 열렸던 서울패션위크 개막식에 참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패션계는 힘을 얻고 있는 것같다.

김동선 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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