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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으로 보는 조상들의 지혜] 서울 정동 회화나무

궁궐에서 즐겨 심었던 궁중나무 가운데 괴목(槐木)이라는 것이 있다.

이 괴목은 다른 이름으로 회화나무, 홰나무, 호야나무라도 불렸다. 중국 고대의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서술한 ‘주례(周禮)’라는 책에 따르면, 궁궐의 바깥 문을 들어서서 바로 만나는 조정 곧 외조(外朝)가운데 회화나무 3그루를 심게하였는데 그 아래가 곧 최고 벼슬아치인 삼공(三公)이 앉는 자리이다. 이런 까닭에 회화나무는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뜻하게 되었고, 괴신(槐宸)하면 궁정, 괴정(槐定)하면 조정하는 식으로 조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창덕궁(昌德宮)의 돈화문(敦化門)을 들어서자 마자 왼쪽에 그 회화나무 세 그루가 역사의 모진 풍상을 이고 서 있다. 덕수궁이나 다른 궁 같은 데서도 가끔 눈에 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회화나무는 나무 가운데 가장 출세한 나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나무 가운데서도 정승목이라고 할 수 있는 회화나무가 서울에 있는 궁궐내도 아닌, 더구나 공원도 아닌 곳에 서 있어 눈길이 간다.

서울시청에서 서소문(소의문:昭義門)으로 나가다가 중앙일보사 조금 못미쳐 고가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오른쪽 좁은 길로 접어드는 고삿길 같은 길이 나 있다.

고삿길 같은 외진 그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정동제일감리교회 뒷편, 지금 체이스 맨해튼은행이 들어선, 예전의 배재고등학교(배재학당)터가 나온다. 거기 공간에 작은 배재공원이 조성돼, 재법 도심 가운데서 푸르름을 맛 볼 수 있어 점심 시간에 샐러리맨들이 삼삼모모 모여 머리를 식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곳 체이스 맨해튼은행 땅을 경계짓는 시멘트블록 담장 안에 수령 500여년은 족히 됨직한 회화나무 1그루가 주위에 높은 축대로 떠받친 채 서 있다. 나무 몸통 속은 썩어 들어가 시멘트로 큰 수술을 받았고, 세월의 모진 풍상에 지친 나무 몸통과 가지는 버팀목으로 부축을 받으며 서 있다.

궁중에 있어야 할 나무가 왜 이 곳에서 유배(?)돼 있을까.

흔히들 아카시아 나무로 착각할 정도지만, 아카시아와는 달이 가시가 없고 크기도 훨씬 더 커서 한결 기품이 있다. 한데 나무 주위가 지면보다 2~3m가 넘게 축대로 빙 둘러 싸인 위에 솟아 있다.

옛날 여기까지 경문궁(덕수궁) 궁역이었고, 그 옆으로 소의문(서소문)에서 돈의문(敦義門:서대문)으로 이어지는 도성이 지났던 것.

그 자리에 서양문물이 밀려 들어 오면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자리잡게 되었다. 때문에 궁역내에 있었던 이 회화나무는 지금 재상은 커녕, 동네 아이들도 찾지 않는 후미진 곳에 ‘배재공원’에서 조차 배제된 채 늙고 고달픈 몸으로 지나간 옛 영화를 되씹고 있다. ‘배제공원’을 탓하랴! 세월은 가도 한 왕조의 풍상을 이 회화나무는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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